아들에게 27. 20190221

by 전영웅

날이 밝으니 하늘이 흐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다가 너에게 영상통화를 해서 잠을 깨우고, 아빠는 읽던 책을 좀 더 읽다가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쓰는 편지를 조금 일찍 쓴다. 엄마와 아빠는 멀리 있어 직접 보지는 못해도, 항상 너를 생각하고 너를 읽어내려 애쓴다. 아빠보다 좀 더 적극적인 엄마는 너의 속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어 무척 답답해하고 있다.


지난번 이야기 한 자존감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존감은 당당하다거나 자신감을 가지는 것 보다도 더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너의 권리, 너의 마음이 부당한 이유로 상처 받지 않을 권리이다. 너의 모습이 네가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우울해지지 않을 권리이다. 네 스스로가 남을 피해 주거나 남에게 피해당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권리이다. 자존감은 중요하다. 네가 무얼 배우고 무슨 일을 하든, 자존감은 너를 자신 있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든든하게 생각하며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자존감은 성격의 문제를 떠나 네가 당연하게 챙기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 뭔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너의 자존감에 상처가 생겼거나, 만들어지는 자존감의 모양이 이상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왜 그러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원인이 되는 대상이나 상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너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라던지, ‘이 일은 저에게 많이 불리해 보입니다. 도움을 주시거나 공평하게 다시 배분을 해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고, 가능하다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좀 더 커진다면, 그땐 어른들에게 말해야 한다. 너는 아직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때이고, 어른들이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아빠는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네가 지금 하는 공부나 경험들은 나중에 필요할 거라 생각해서 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완벽이나 완성을 추구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힘든 것과 너의 자존감이 상처 받는 일은 다르다. 네가 힘들게 공부하는 것은 해 볼 수 있는 경험이지만, 네가 뭔가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절대 겪어서는 안 되거나 빠른 시간 내에 옳은 방향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엄마와 아빠는 네가 지금 힘든 것과 부당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면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것이 힘들다면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고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솔직해야 한다. 네가 너의 일을 엄마 아빠나 어른들에게 말을 하고 안 하고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너의 어려움을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는 것은 너의 공부나 상황을 더욱 어렵게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너는 그런 어려움들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엄마가 귀찮을 정도로 너에게 자주 묻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속 시원하게 말을 하는 편이 너에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줄 것이다. 아빠가 편지를 조금 빨리, 그리고 이렇게 간곡하게 알아들을지 말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 건, 그간 네가 보여준 표정과 들려온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주길 바란다.


이미 식상한 말이겠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운 사실은, 엄마 아빠는 항상 너를 생각하고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분명하게 말하지만, 어른들이란, 네가 어렵고 도움이 필요할 때 쓰라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제 몸이 부쩍 자라기 시작하고, 다양하고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한 너는 아직 미숙할 수밖에 없다. 미숙하다는 건, 앞으로 시간을 들여 너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은 쉽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일을 뒤섞어 이상한 모양으로 너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빠가 줄줄이 써 내려간 이 편지를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정말 별다른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엄마 아빠는 조금 걱정이 되고 있다. 그리고, 엄마가 너 있는 곳으로 조금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아주 많이 빨라지는 건 아니지만, 네가 홀로 있는 시간은 조금 줄어들 것이다.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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