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너무 극심한 변화 안에 있다.
입도 후 1-2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아졌다. 선주민들과 이주민들이 뒤섞여 관계를 맺어가고 있었고, 특히 이주민들의 숫자는 증가속도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제주섬에 발을 들인 많은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제주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주민들의 모습이나 이유도 다양했다. 가족단위의 귀농 귀촌부터 혈혈단신까지의 모습까지 그리고, 정착하거나 잠시 살아보거나 또는 아무런 일정 없이 자유로이 돌아다니고자 하는 이유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모습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본의 구속을 덜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입도하던 때만 해도 제주는 그러했다. 제주는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섬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제주로 내려온 젊은 부부는 하귀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적당한 공간을 빌려 작은 선술집을 겸한 게스트하우스를 열었었다. 그곳은 여행자들과 사는 사람들이 모여 술 한잔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거기서 마주한 나와 비슷하게 입도한 젊은 사람은 연세 100만 원이 안 되는 작은 돌담집을 얻어 개조해 살고 있었다. 생활비는 귤 밭일이 있을 때마다 나가서 일하고 받은 일당 4-5만 원으로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했다. 크게 돈 드는 일이 없으니, 원하는 활동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게스트는 주변에 수소문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가서 일하고 받은 일당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살림의 안정이나 지속성을 떠나 그러한 삶들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 자유나 여유의 의미에서 노마드를 꿈꿀 수 있었던 섬이었다. 살고 있던 선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변변한 산업 없이 관광에 의존하며 낮은 물가와 비좁은 경제활동영역에 답답했을지는 모르지만, 머리와 마음이 뒤엉켜 복잡해진 채로 제주에 발을 들인 이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사실 나는 의사라는 분명한 직업을 가지고 들어와 비교적 명확한 생활패턴과 고정된 수입으로 안정과 지속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기에 머리와 마음 복잡한 이들의 심정이나 노마드의 삶을 자세히 말하는 데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섬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러한 삶을 소소히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마무리되는 문장은, 현재의 모습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정신이 없을 만큼 제주섬에는 어떤 광풍이 불어닥쳤고, 광풍이 지나간 자리의 풍경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대략 가늠하면 5년 정도.. 그 기간 동안에 불어닥친 광풍의 중심엔 자본과 이를 둘러싼 인간의 욕심이 들어 있었다. 사람이 들지 않아 관리가 안 되던 농가주택이나 돌담집들에 그저 사람만 들어와줘도 고마워하던 시절은 사라졌고, 건물과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매물이 나오는 순간 사라지곤 했다. 그것도, 구매자가 와서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위성지도로 위치와 대략의 모양만 보고는 인터넷으로 거래를 해 버리는 것이었다. 육지의 투기자본과 중국자본이 들어오면서 부동산은 이 섬의 주요 이익사업이 되어버렸다. 자본의 유입은 인구의 유입효과도 불러와서, 60만을 넘지 못하던 인구가 지금은 65만을 넘어섰다. 인구의 증가, 관광객의 폭증은 물가상승을 불러와서 내가 체감하는 돼지고기와 고기국수의 가격은 입도당시와 비교해서 거의 2.5배 정도 올랐다. 더불어 곳곳에 불어오는 개발광풍은 스카이라인과 바다전망을 망가뜨리고 있으며, 자동차의 급증으로 제주시내에서는 이제 도로정체를 어렵지 않게 겪을 수 있게 되었다.
좋던 싫던, 변화는 생성과 소멸을 불러온다면, 소멸당한 건 소소함과 노마드이다. 100만원이 채 안되던 연세는 이제 찾아볼 수 없고, 게스트하우스와 선술집 등등으로 소소한 삶을 꿈꿀 수 있는 기회역시 사라졌다. 하루 일당으로 자신이 원하는 여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었던 시간도 사라졌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좀 더 분명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않으면, 제주섬 안에서의 삶은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게다가 물가는 크게 상승했지만 인건비는 별로 상승하지 않아서, 노동의 만족은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들고 있다. 도시의 개발은 공동화 된 중심의 가난한 주민들을 대책없이 몰아내며 진행되고, 하와이 섬의 관광개발은 원주민들을 노숙자로 몰아버렸다. 자본력을 앞세워 뒤늦게 몰아닥친 투기개발세력은, 이전에 살던 주민들과 노마드를 꿈꾸던 이들을 삶의 위기로 또는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도정은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미명하에 그런 변화를 주도하고 지지하고 있지만, 사실 변화는 이미 살고 있거나 원하는 삶을 위해 이 섬을 찾아온 사람들에 전혀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 제주섬에 산다는 일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일말의 불편과 위기를 겪어야 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소소함이나 노마드를 무조건 긍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기엔, 나의 삶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연속적이어서 조심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 섬에서 최근의 시간들을 함께 느낀 이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공감할 변화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 변화는 누군가에겐 긍정의 기회일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누군가에겐 아쉬움과 버거움이 쌓이는 변화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점점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주섬 안에서의 삶은 이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말의 불편과 위기는 이 섬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당연히 안아야 할 부담이 되어야 할까? 거대하고 투기성 짙은 자본이 이미 발을 들여 휘젓고 있고, 이 섬의 행정은 살고 있는 대다수의 주민들에 초점이 없어보인다. 이전의 여유와 소소함을 그리워하기엔 너무 많이 와 버린 현재의 제주에 사는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은 많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