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9.

오름은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이다.

by 전영웅

제주 입도를 결정하고 근무할 병원 미팅 후 하루 묵을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었다. 그러다 펼쳐진 제주의 위성지도엔 하얗게 눈이 덮인 한라산과, 그 주변으로 숭숭 뚫린 듯한 작은 구멍들이 보였다. 두세 번의 여행 말고는 제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 때, 그 이미지는 기묘했다. 대체 뭘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제껏 내가 살던 지역의 지형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는 점뿐이었다.

그것은 오름이었다. 나에겐 화산섬 제주라는 이미지는 한라산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다 제주에 입도하여 오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한라산 화산 주변으로 곳곳에서 용암이 분출되며 섬 전체가 펄펄 끓는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이 섬의 생성은 거칠고 웅장하며 가열찼다.

입도 후 오름을 만난 건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바다낚시를 포함한 제주생활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며 일상의 분주함을 그칠 수가 없을 때, 오름은 가야지 염두에 두면서도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다 입도 1년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육지에서 여행 온 지인 가족이 오름을 오를 예정이라 하기에 우리도 동행하게 되었다. 등반할 오름은 다랑쉬오름이었다. 지인 가족들 그리고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다랑쉬오름 초입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름 산행이야 동네 뒷산 산책하듯 별다른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사실 당시의 나는 오름 산행에 대해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초입의 계단을 올라 90도로 꺾어지는 오르막 계단에서 아들이 멈춰 섰다. ‘아빠, 다리 아파.’ 순간 난감했다. 다시 내려가기도 그렇고, 동행도 있는데 아이를 붙잡고 달래기도 애매했다. 나는 그냥 아이를 내 어깨에 올려 목마를 태웠다. 그러고는 정상까지 한 달음에 올랐다. 당시 만 4살 아들의 몸무게는 30킬로에 육박했고, 나는 비교적 높은 오름이라는 다랑쉬오름에서 첫 오름 산행을 아주 강렬하게 각인하였다.

이후 시간이 하락할 때마다 오름에 올랐다. 여유를 가지고 오르자면 반나절에 적당히 높은 오름 하나 오르내리기도 했고, 조금 빨리 움직여 오르자면 나지막하거나 오르기 쉬운 오름 서너 개를 한꺼번에 오르기도 했다. 바리메오름에선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올라 정상 벤치에 앉아있다 내려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노꼬메오름에서는 약간의 거친 능선을 버겁게 올라 커튼같이 펼쳐진 숲의 벌판 뒤로 한라산을 감상하다 내려왔다. 어느 날엔가는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아부오름과 체오름을 올랐다. 그런 다음 바로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까지 올랐다. 동검은이오름과 백약이오름에서 보는 오름군락의 풍경은 제주에 살고 있음을 행복하게 했다. 작은 분화구에 물이 있는 물찻오름을 개방한다는 소식에 사려니숲길을 걸어 다시 오름 정상까지 올라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감상하기도 했고, 가파른 계단의 물영아리 오름에 올라 분화구 안의 생태를 감상하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는 날씨에 따른 오름의 표정이 궁금해서 태풍이 제주에 접근 중이라 비바람이 몰아치는 새별오름에 올랐다.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빗방울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과 그 아래 흐린 풍경을 바라보았다. 오름 정상에서의 바람은 다리에 중심을 잘 주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이 거세었다. 가슴이 무거운 무언가로 짓눌린 듯, 답답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태풍을 마주한 날에 사람 하나 없이 홀로였던 새별오름 정상에서 몸의 정적은, 경계 없는 자유를 갈망하던 광기에 가까운 가슴속 덥고 묵직한 기운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시간이었다.

상상 속 생성의 거칠고 강렬한 이미지와는 달리, 오름은 여성의 이미지이다. 오랜 시간 깎이고 정돈되어 부드러워진 곡선의 분화구 능선도 남성보다는 여성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깊고 완연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새별오름이나 다랑쉬오름의 옆 능선, 그리고 용눈이오름의 한가운데 서너 개의 분화구가 겹치며 형성된 얕고 오목한 능선의 중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째서 오름은 여성의 이미지이고 이 섬에는 설문대 할망이라는 여성신이 살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에서 마을 정찰을 끝낸 주민들이 한 밤의 오름을 능선을 따라 뛰어 올라가는 장면에서 오름과 여성의 몸을 오버랩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나의 성정 때문인지 아니면 취향 때문인지, 사실 오름은 자주 가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의 표정을 살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오름은 가까이 다가가 있는 동경의 존재이다. 생각이 나면 어렵지 않게 올라가 잠시 생각을 내려두고 있었던 풍경과 내 존재의 위치를 깨닫는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너무 통상적이다. 차분하고 관능적인 오름의 능선을 조금 거리를 둔 자리에서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품 안으로 파고든다. 오랜 시간 동안 거칠되 부드럽게 다져진, 포근하게 감산 손처럼 오목한 화구 안에서 난동하던 바람이 잠시 힘을 잃고 느릿해짐을 느낀다. 그 안에서 노루와 새들과 온갖 풀벌레들이 모여 쉬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인간은 해 있는 잠시의 시간만을 스쳐가며 공존의 배려를 실천한다. 오름은 이 섬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있어왔듯, 원래 있던 것들의 둥지이다. 그리고, 뒤이어 이 섬에 들어선 인간들이 시간을 겪으며 새겼을 정체성이다. 나는, 제주에 산다는 것의 정체성을 서서히 몸에 새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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