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36. 20190517

by 전영웅

교토의 하늘은 구름이 많고 청명하다. 시야가 점점 뿌옇게 변하는 걸 보니, 이 곳은 무더운 여름이 시작된 듯하다. 그래도 아직은 바람이 있어서, 반팔 차림에 바깥을 다니기 버겁지 않다. 네가 있는 그곳보다는 아직 덜 덥지만, 여기도 곧 그곳 못지않은 무더위가 다가올 것이다. 지금은 금요일 아침이고, 엄마 아빠는 난젠지 부근의 블루보틀이라는 유명한 커피집에 왔다. 전 세계적으로 분점이 생기고 있는 유명한 브랜드인데, 커피가 맛있다. 유명한 만큼 사람들이 많다. 자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네가 없는 여행은 처음이다. 네가 우리와 함께 한 이후로 처음 경험하는, 엄마와 단 둘의 여행이다. 생각이 좀 많아진다. 좀 더 가볍게 다닐 수 있다는 기대와, 네가 함께하지 않음에 이따금씩 몰려오는 허전함이 공존한다. 아빠는 교토라는 도시를 많이 좋아해서,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너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생각한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볍게 다니며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도시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강렬하다. 사실 너는, 오래 걷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니. 엄마와 아빠는 어제는 신사와 그 안의 정원을 감상한다고 2만 보 이상을 걸었고, 오늘은 어제보다 덜하겠지만 철학자의 길과 산조 거리 곳곳을 걸을 예정이다. 함께 했다면 너의 절망했을 표정을 상상하게 된다.


너를 떼어놓는다는 것,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좀 이를지 모른다. 엄마 아빠의 입장에서, 너를 떼어놓는다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너를 홀로 거기에 남겨둔다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 이번 학기만 지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와 엄마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 할 운명이다. 그것은, 엄마와 아빠 사이의 운명이기도 하다. 인간의 수명과 세대 간 나이 차이가 만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네가 삶을 어떻게 어디서 꾸려갈 것인가에 따라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그런 운명은 네 나이 또래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힘들지만, 서로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관계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직은 이런 말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 아빠는 생각한다. 너와 엄마 아빠가 떨어진다는 것, 이미 충분히 훈련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훈련의 반복은 너를 강하고 독립적으로 단련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너는 이미 충분한 지원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그런 충분한 환경 안에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형제 없이 홀로 자라는 너에게는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떨어진다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적당한 거리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올 것이다. 너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엄마 아빠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거나 단절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엄마 아빠는 평생 너를 도와주고 지원해 줄 것이다. 가능한 수준에서 말이다. 필요한 것은 유대감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항상 생각하고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엄마 아빠가 교토를 돌아다니면서도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고, 이 시간에는 네가 무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런 사실을 네가 항상 의식하고, 그 의식에 조금이라도 의지가 되는 마음이 생긴다면 우리는 서로 유대를 나누는 관계이다.


그래도, 네가 없어 허전함은 어쩔 수 없구나. 가벼운 마음 곳곳에 웅덩이가 많이 파여서, 네가 채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이번 여행에서 엄마 아빠가 감당해야만 하는 아쉬움이다. 아쉬움을 안고 이 도시의 곳곳을 다닐 것이다. 네가 싫어하는 걷기로, 천천히 다니며 감상할 것이다. 너에게 해 줄 많은 이야기들을 쌓아두고, 그것을 글로 써서 보여주고 싶다. 카페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시간은 좀 더 흘러 있구나. 편지를 마무리하고 길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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