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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an 21. 2020

[독후감] 책임에 대하여.

다카하시 데쓰야, 서경식 대담집.  한승동 옮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로 시작된 양국의 무역전쟁 이후로, 갈등은 광범위한 불매운동을 거쳐 전면적 양상을 보인다.  시작은 아베 정권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경화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응은 정부 자체의 신속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국민들이 나서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신선한 현상을 보였다.  한반도 갈등과 미국의 지원을 토대로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우경화 세력과, 남북관계 해소와 이를 통해 대륙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확장을 도모하는 남한의 정권은 이해관계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다.  동시대라는 수평관계에서 바라보자면 그렇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역사성이라는 수직관계에서 현상을 바라보자면, 무역 전쟁은 일본 우경화 세력이 반발하며 벌인 치졸한 반응이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의 반일 불매운동은 감정의 면에서 이 부분에 많은 뿌리를 두고 있다.  현상은 조금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불매운동만을 놓고 보면, 수직의 관계에 깊은 뿌리를 두고 내재한 감정의 문제가 수평의 관계에서 폭발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감정의 문제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불매운동의 전개과정과 모습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불매운동은 이성과 양심에 기인한 개인의 판단과 참여의 문제이다.  그러나, 운동은 집단적 강요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본산 신차에 대한 테러라던가, 한국에 진출한 일본 브랜드의 마녀사냥 등등은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얻거나 국민이 아니’라는 식의 강요가 내재해 있음을 드러낸다.  사실 현대의 시대에서 불매운동은 상징성을 떠나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자본은 국경을 자유로이 넘어 다니고, 계급은 자유로운 자본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형성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은 상징성을 넘어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인해 일본 기업과 경제가 받은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다만, 한국 내 일본 기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어려움이나 일본 제품을 구매했다가 피해를 본 사례만 넘쳐났다.  시간이 흐르고, 자본의 흐름 위에서 편리나 자유를 느끼던 사람들은 점점 불매운동의 어떤 강박과 강요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양상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반일 불매운동을 벌이는 걸까 생각해보면, 결국 이성보다는 감정의 문제에 더 집착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보면, 우리는 감정의 문제를 떠나 이성을 의식했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을 의식하면서 당장 대립관계에 있는 ‘일본을 잘 알고 있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점점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사회와, 일본 사회 속의 국민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그리고, 생각들을 직조하고 틀을 세우는 일본 지식인들의 생각과 말들은 어떠한지 우리는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지피지기’라는 의미에서 불매운동은 전략 자체가 허술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 피해자나, 징용공, 위안부 문제들, 그리고 현재의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나 후쿠시마 피해자들 등등, 이런 문제들이 일본 내에서 어떤 논리에 부유하고 있는지, 어째서 그들은 전범 책임의 사과나 보상에서 뻔뻔하기만 한지, 현재의 시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경화되어가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위안부와 징용공 문제, 독도 문제, 그리고 무역전쟁과 군사적 도발 등을 노골적으로 표면화시키는데도, 어째서 사회 내부의 비판적 관점은 적은 지 살펴야 한다.  일본 좌파와 리버럴들의 전도된 논리와 소소한 침묵이, 이런 문제들과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덮어두고 있는지를 이 책은 깊게 설명한다.  


  ‘제국의 위안부’ 논쟁은 일본을 이해하려는 한국 내 지적 노력이 자칫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는데 은근히 일조하는 일본 리버럴들의 논리에 지지하거나 휘말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이 부분에서도 상세히 언급한다.  다카하시 데쓰야의 지적대로 일본에는 소거해야 할 ‘일독’이 있듯, 우리에게는 정제되지 못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보았다.  분명 일본은 전범의 책임자이자, 동아시아 갈등으로 입지를 구축하려는 반평화적 문제아이다.  그런 일본을 상대함에 있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앞선다는 것 역시 분명한 문제가 있다.  이번 반일 불매운동을 비롯하여, 독도문제나, 정대협을 위시한 위안부 해결 문제들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돌아본다.  감정의 문제가 이성의 판단을 압도하면, 상대를 알려고 노력하는 여러 노력들은 수많은 논리의 수 안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본 내부를 직시하고 비판하는 좌파적 입장에서 이루어진 대담이다.  일본의 솔직하고 객관적인 다양한 이야기를 더 들어야 일본을 좀 더 알 수 있을 거라 말할 수 있겠지만, 엮인 책으로서는 가장 최근의 일본을 말한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아주 돋보인다.  일본 내부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한반도의 독자로서 비판의 이면에 깔린 ‘우리를 돌아봄’이라는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민한다.  한국과 일본의 인민 간의 연대와 공감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미 많은 연대의 형식이 존재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소거되지 않은 일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민의 연대는 상황에 쉽게 흔들린다.  인민의 힘은 불매운동이나 반성에의 무감에 부역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에 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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