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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17. 2020

[독후감] 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

  코뮤니즘(communism)을 공산주의로 해석하자면, 자본가 계급이 소멸되고,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어 생산수단을 공공 소유하는 무계급 사회조직을 의미한다.  하위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분파들을 따지자면 복잡하겠지만, 큰 틀로서의 의미는 이러하다.  반면 사회주의(Socialism)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나 소수 관리를 반대하고,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자원의 효율적이고 정당한 배분을 추구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코뮤니즘은 의미상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사회체라는 점에서 이해가 다르다.  


  다시 코뮤니즘으로 돌아오자.  ‘communis’는 ‘함께하는’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이고, 소문자로 시작되는 ‘communism’은 공산주의 체제 국가의 정경체제,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의미하고, 대문자로 시작되는 ‘Communism’은 공산주의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에 나와 있듯이, 코뮤니즘은 인류역사에서 실현된 적이 없다고 보면, communism은 인간 역사에서 실패하거나 실패 중인 사회체제이며, Communism은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선 이론 또는 이상적 종점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비판에서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구조적이며 어쩔 수 없이 내재한 문제들로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을 개선해 나감으로 코뮤니즘의 이상에 가까이 다가서려 노력한다.  물론, 자본주의의 악을 완벽히 없애는 일은 쉽지 않다.  하나하나 개선해나가면서 발견되고 경험하는 또 다른 문제들에 좌절하거나 후퇴한다.  그 과정은 아직 우리가 가 닿지 못한 Communism에의 막연한 동경이 아니다.  communis라는 의미 자체에 무게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 행동하면서 발견하는 고민들, 그것은 사실 우리가 산업혁명 이후의 인간의 역사 안에서 발견했던 모습들이다.  


  인간의 근현대사에서 보아왔던 원칙적 고민들을 간결하게 확인하고 나면,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우리는 어째서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로 인한 분배 균형의 악화와 몇 번의 대몰락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마치 책 속의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면서 이게 옳은 것인가 고민하듯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알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많이 있음을 자각하고 그것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인식만 공감할 뿐이다.  공감하는 인식을 출발점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걸음을 시작한다.  책 속의 사람들이 코뮤니즘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그중 하나의 걸음일 뿐이다.  공감된 인식 외에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은, 좀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는 상상력이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역사 안에서 보아왔던 더 나은 세상으로의 노력과 실패를 아주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담아 표현했다.  따라서, 큰 틀이나 뼈대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른들에게도 유용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악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코뮤니즘의 실패 원인 중의 하나, 인간의 필요욕구를 효율적으로 자극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역사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인가?’라는 물음이 빠진 자본주의의 향유는 인간을 어리석게 만든다.  이 책은 이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 들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결론이 공산주의냐는 질문은 사양한다.  책 속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우리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런 우매한 질문을 하지 않을 정도의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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