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42, 20200703

by 전영웅

요즘에는 주말마다 마당에 그늘막을 설치한다. 장마철이지만, 고맙게도 주말을 피해 비가 온다. 주말 한나절의 시간은 그늘막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온전한 휴식이다. 비와 비 사이의 해 뜨는 날은 덥다. 그늘막을 설치하다 보면, 잠깐의 시간인데도 온 몸이 땀에 젖는다. 그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는, 잠깐의 번거로움 뒤에 즐기는 한나절의 여유의 달콤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설치된 그늘막 아래 접이식 의자들을 놓고, 캠핑용 테이블을 펼친다. 웨버그릴을 가까이 가져다 놓고 차콜을 넣은 뒤 불을 붙인다. 아이스박스에는 미리 준비해 둔 맥주와 고기를 넣어둔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나무에 건 뒤, 스마트폰 앱으로 라디오를 연결한다. 의자에 잠시 앉았다. 이제 시간을 즐길 일만 남았다.


장맛비를 맞은 텃밭은 순식간에 무성해졌다. 땅을 뒤덮은 덩굴줄기들이 발에 밟힐까 걸음을 조심한다. 토마토에 초록 방울들이 줄지어 맺힌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대부분이 너무 익어 터지거나 풍뎅이들의 먹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소쿠리를 들고 조심스럽게 텃밭에 발을 들였다. 땅을 뒤덮은 호박잎을 젖히고 먹을 만큼 자란 호박이 있나 찾았다. 다행히 몇 개 눈에 들어와서 그중 하나를 걷었다. 오이도 먹을만한 것 하나를 따고, 토마토도 아직 멀쩡한 익은 것들을 거두었다. 고추도 먹을만한 것들을 거두었다. 그릴에 굽거나 그대로 장에 찍어 먹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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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에 가서 꽃대를 한껏 높인 루꼴라 덤불을 뒤졌다. 막바지라는 마음으로 샐러드로 먹을 만한 이파리들을 꺾었다. 텃밭에 이제 막 이파리를 넓게 피우며 자라는 바질 몇 줄기를 꺾었다. 마당 호스를 틀어 물로 잘 씻은 다음 물기를 빼고 소금, 후추, 발사믹 식초,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잘 섞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간이 샐러드다. 그릴 안의 차콜은 불이 잘 붙었다. 석쇠를 올리고 불을 피해 제주돼지 목살과 오겹살을 올렸다. 열을 이용해 간접으로 시간을 두고 익힐 생각이다. 그 사이 아내가 주방에서 준비해 온 식기도구와 간단한 먹거리들을 테이블에 펼쳤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내가 앉은 우측으로 멀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시원함과 약간의 바다내음이 섞여 있었다. 그 바람을 느끼며 마시는 라거 맥주의 청량감은 마음을 들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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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 안에서 다 익은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낸 뒤, 호박을 얇게 잘라 직화로 구웠다. 어느 날엔가는 로즈마리 닭꼬치구이를 만들어 직화로 구워냈다. 닭가슴살을 작게 잘라 마당에서 따 온 로즈마리와 타임, 레몬 껍질과 레몬즙, 소금, 후추에 잠시 마리네이드 했다. 마당에 무성한 로즈마리 줄기를 스무 개 정도 잘라 잎을 훑어낸 뒤에, 끝을 비스듬히 잘라 꼬치로 만들었다. 텃밭에서 가져온 호박과 양파, 파프리카를 작게 자른 뒤, 로즈마리 꼬치에 닭고기, 양파, 닭고기, 파프리카, 닭고기, 호박 순으로 꽂았다. 그것을 직화로 구웠는데, 꽤 맛있었다. 재료의 많은 부분을 마당과 텃밭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계절의 나를 보람차게 만든다.


라디오 디제이가 시간에 따라 바뀐다. 나는 그에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점점 더해가는 아쉬움도 함께 느낀다. 그러다 보면, 흐르는 시간을 더욱 즐겨야 한다는 강박마저 생긴다.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네 가족이 잠시 들러 그늘막 아래 앉아 함께 맥주를 마셨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아이들에게 텃밭을 구경시켜주고 싶다며 잠시 들렀다. 그 친구에게는 커다란 호박과, 고추와 남은 토마토를 따서 품에 안겼다. 허브향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로즈마리 줄기 다발과 애플민트 줄기를 선물했다. 그늘막 아래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고, 서울 친구도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은 완연해지고, 석양이 시작된 마당에는 그늘이 짙어졌다. 나는 창고에서 파티전구를 꺼내어 그늘막 옆으로 길게 설치했다. 배는 부르고, 취기는 적당하고, 그릴 안의 차콜도 온기를 다했다. 이제는 아쉬움이 더 짙어진 막바지 여유를 즐겨야 한다. 목줄을 푼 채 마당에서 사람들과 어울린 반려견 녀석도 피곤했는지, 목줄을 채우지도 않았는데 마당 한편에 모로 누운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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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하는 번거로움이 기대라면, 정리하는 번거로움은 의무이다. 여름이지만 아직은 서늘한 밤공기에 마당을 정리한다. 주말 하루의 온전한 여유, 움직임 속에 마음의 회복을 느낀다. 일상에 매몰되어 마음의 숨이 벅차고 가빠질 때, 내가 이제껏 돌보아 온 마당과 텃밭은 하루라는 온전한 시간 안에서 내게 안정과 위안을 선사했다. 계절의 빠른 변화 안에서 이렇게 즐길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그 시기는, 관광객들로 섬이 북적여서 밖에 나가 온전한 여유를 즐기기 어려운 때와 겹치기도 하다. 나는, 적어도 올해만큼은, 이렇게 마당과 텃밭에서 온전한 쉼의 시간을 즐기기로 다짐했다. 그 시간은 완벽에 가깝고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