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43, 20200710

by 전영웅

잠깐의 외출을 마친 일요일 오후, 나는 마당 한자리에 의자와 캠핑 테이블, 그리고 화로를 놓았다. 그리고, 두 주 전 지인에게서 구입한 20킬로 마늘 한 망을 꺼냈다. 장마철이지만, 해가 나는 대로 열심히 펼쳐 말린 마늘이었다. 알이 작고, 마늘값이 폭락한 해라 20킬로 무거운 한 망이 겨우 3만 원이었다. 마늘을 재배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었을까 쉽게 짐작할 수 없지만, 손바닥 만한 텃밭에 드는 품을 생각하면 그 저렴함이 마음까지 가볍게 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칼을 들고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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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이 되어 나는 화로에 차콜을 넣고 불을 지폈다. 벌겋게 오른 화롯불에 팬을 올리고 미리 사 둔 고기를 올렸다. 아내는 텃밭에 들어가 같이 먹을 만한 고추, 오이, 가지, 호박을 거두어 왔다. 마당 호스로 흙을 씻어낸 뒤에, 호박과 가지를 잘라 익어가는 고기 옆으로 올렸다. 마늘을 까며, 고기와 익은 야채를 먹으며, 맥주를 마시며 어둑해지는 저녁을 맞았다. 라디오에서는 늦은 밤 시간에 들을 수 있는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 끼니와 함께 설렁설렁 이어간 마늘 까기 작업은 반 정도에서 마무리되었다. 사그라드는 화롯불에 까고 남은 마늘 껍질을 넣어 태워 모깃불을 대신했다. 풀어놓은 반려견 녀석도 돼지기름을 머금은 사료와 남은 고기에 포식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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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다가 비가 오기를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오후부터 비가 다시 온다는 어느 날 오전에, 나는 잠깐 잡초를 맬 요량으로 반바지에 장화만 신고 호미를 들고 뒤뜰로 들어섰다. 뒤뜰의 3분의 일은 루꼴라가 덤불이 되어 뒤덮고 있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온갖 잡초들이 무릎 높이로 자라 수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평소 하던 대로, 장갑 낀 손과 호미로 잡초들을 뿌리부터 뽑아나갔다. 잠깐 할 요량이었지만, 잠깐으로는 안 될 상황이었다. 준비 없이 덤벼들어 노출된 다리와 얇은 옷차림은, 그대로 풀모기떼의 표적이 되었다. 모기떼를 쫓으며 서둘러 잡초를 매어나갔다. 공기는 후텁지근해서, 코 안으로 옅은 물기가 빨려드는 기분이었고, 몸은 금세 땀으로 젖어버렸다. 뒤뜰의 절반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동안, 아내는 텃밭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거두었다. 비 때문에 단지 며칠을 들어가지 않은 텃밭이었지만, 그 사이 오이는 너무 길쭉해서 줄기를 끌어내릴 정도였다. 애호박은 너무 커져서 중호박이 되었고, 가지, 고추들도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아내는 남미 또는 아프리카 풍이 반반 섞인 디자인의 소쿠리에 무게가 상당할 정도의 먹거리들을 거두어 텃밭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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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군데의 살갗에 모기 물린 자국을 남기고 온 몸이 땀으로 젖어버린 채, 나는 정리한 잡초들을 모아 집 경계석 위로 걷어 올렸다. 마당에는 며칠 전 작업해서 부려놓은 잡초 덤불이 반은 물에 삭고 반은 마른 채로 쌓여 있었다. 덤불을 뒤뜰로 옮겨 함께 걷어 올려두었다. 장마철이 지나고 마른 시기가 오면 잘 마른 덤불을 모아 태울 생각이다. 눈에 흘러드는 땀을 닦으며 쌓인 덤불을 보고, 아내가 거두어 온 먹거리들을 보고 있자니, 땅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직접 텃밭에 들어가 몸을 부리지 않아도, 그간 텃밭에서 팔아 온 품과, 내게 주어진 공간에의 노동 때문에 가능한 결실이었다. 그리고, 장마를 한껏 즐기는 중인 텃밭을 둘러보니, 이른 시간 안에 텃밭에 직접 들어가 몸을 부려야 할 일들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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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잠식해버린 펜넬의 줄기들을 쳐냈다. 여름이면 무섭게 자라 집 입구를 가려 마당을 아늑하게 해 준다. 그러나, 주차공간마저 가려버리고, 굵은 뿌리를 깊게 박으며 주변으로 무섭게 퍼지는 녀석을 가만 둘 수는 없었다. 공간은 넉넉하고 시원해졌다. 쳐낸 줄기에는 특유의 향과 수분이 가득했다. 쳐낸 줄기를 모으니 한아름이었다. 덥지만 습한 한여름에 이것들이 마르려면 한참 걸리겠다 생각하며 뒤뜰로 옮겨 잡초더미 위로 올렸다. 땀으로 범벅된 몸은 잠깐의 작업에 살짝 지쳤다. 이제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예보가 아닌 중계에 가까운 날씨를 보며, 이른 아침부터의 일과를 가늠하는 일상은, 적응의 단계를 거쳐 소소해졌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과 우울함을 떨치려 발버둥치는 일의 하나가 텃밭과 마당일이다. 발버둥 역시 일상이 되면서 평범함과 소소함으로 수렴 중이다. 그와 반비례해서, 버티는 삶에의 의식은 점점 짙어진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전도유망하던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 목숨과 맞바꾸며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고 소소함으로 살며, 버티어 나가는 내 삶은, 목숨까지 내걸며 지켜야 하는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그렇다면 내 일상에의 우울은 정말 볼품없어지고 비루해진다. 많은 생각을 주었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마다, 스스로와 내 주변을 둘러싼 세상에의 불안과 환멸을 느낀다. 그러다보면, 내 일상의 발버둥과 노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많은 생각의 연결고리를 거쳐 닿게 된다. 답에 닿기가 쉽지 않은 그 고민 안에서 결국. 산 자는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에나 가 닿는다. 살아있기에 거두어 먹을 것이 보이고, 거두어 돌볼 것이 옆에 서고, 거두어 버릴 것들이 내 뒤에서 자람을 느낀다. 그뿐임은 그냥 그런 것인지, 다행인 것인지, 아니면 이제까지 쌓아 온 삶이 겨우 이 정도로 얄팍함을 스스로 탓해야 하는지, 역시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