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장마다. 지루하다. 폭우 같은 비에 이어, 흐린 하늘과 안개가 연달아 머리 위를 뒤덮는다. 해무인지 안개인지 모를 막연함 속에서 이슬 같은 습기가 땅을 적시고 머리칼을 적신다. 어떤 날은 한라산을 넘은 남풍이 덥고 세찬 바람이 되어 모든 것을 날릴 듯 불더니, 다시 흐린 날이 찾아와 잠깐 비를 뿌렸다. 흐리고 습하다는 것 말고는 비가 오거나 개는 현상의 어떤 패턴도 느껴지지 않는다. 날씨는 예보가 아닌 중계가 되었고, 하루를 몇 시간 단위로 쪼개어 날씨를 직접 가늠하고 움직이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니면, 어떨지 모를 날씨를 무시하고 하려 했던 일을 무작정 시작했다.
햇볕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텃밭은 장마를 맞아 가장 신이 난 공간이었다. 비가 쏟아지고 나면 텃밭 어딘가가 눈에 띄게 변했다. 바람이 동반되면 덤불이 안타까운 모습으로 제쳐지기도 했지만, 주로 무성해지는 형태로 변했다. 비를 맞고 호박과 오이가 덩치를 키웠고, 물외와 수박이 잔디 어딘가에서 럭비공 크기로 커졌다. 가지는 자줏빛 열매를 늘어뜨리며 땅을 향해 커졌다. 고추는 수없이 열렸고, 바질은 본격적으로 잎이 무성해지더니 꽃대를 보이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이미 손대기 버거운 덤불이 되었고, 덤불 속에서 빨갛게 익은 것들을 사람보다 풍뎅이가 먼저 맛을 보고 있었다.
장마에 신이 난 것들은 작물들만이 아니다. 잡초들도 신나게 땅을 뒤덮고 키를 키웠다. 해마다 이맘 때면 습관처럼 착각을 반복한다. 비가 오니 몸을 좀 쉬어도 되겠지. 초여름 비가 오면, 작물만 좋은 게 아니라 잡초들도 좋다는 사실을 어리석게 까먹는다. 올해같이 긴 장마에 작업하기 애매한 날씨가 자주 반복되면, 쉬어도 되겠지 하며 게을러진 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움직이기를 자주 미룬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올해도 같은 착각을 반복했구나 뒤늦게 깨닫는다. 올해의 긴 장마 중간에 깨달은 그 사실 뒤엔, 어느 해보다도 무성한 풀숲이 되어버린 텃밭의 풍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포기할 게 아니라면 별 수 없이 몸을 놀려야 한다. 서둘러 긴 바지를 입고 장화를 신고, 장갑을 착용하고 호미를 들고 성큼성큼 텃밭으로 들어갔다. 날은 흐리고 비가 올 지 모를 분위기지만, 김매기는 비를 핑계로 미룰 수 없는 작업이 되어버렸다. 텃밭 뒤켠 공터 딸기밭을 주변으로 무성해진 잡초부터 거두었다. 허브들이 점점 지워가는 진입로를 확보하듯 줄기들을 쳐내고, 땅에 박힌 뿌리 굵은 잡초들을 캐내며 딸기밭으로 진입했다. 모기떼들은 아침부터 신이 나서 땀냄새 풍기는 나에게 덤벼들었다. 모기떼들을 털어내며 주저앉아 호미를 놀렸다. 습하고 더운 날, 나는 잠깐 사이에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모기떼들을 털어내며 날린 흙들이 내 얼굴과 팔에 묻었다. 서둘러 구석까지 작업하고, 뽑은 잡초들을 한 곳으로 모아둔 다음 일을 마쳤다. 오전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나는 땀과 흙과 엉덩이에 수없이 생긴 모기 물린 자국들에 엉망이 된 채로 집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오전 두 시간 안쪽으로 텃밭에 들어가 잡초를 거두었다. 다행히 날은 흐리기만 하고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땀과 흙과 모기 자국으로 매번 범벅이 되었고, 더위에 탈진한 것 같이 헉헉 숨을 몰아댔다. 반려견은 마당에 앉아 내가 텃밭으로 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랑 놀아주기나 하지, 대체 왜 저러는 것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오이와 토마토 지주대 사이를 오가며, 호박과 수박 덩굴 사이를 조심스레 다니며 잡초를 뽑았다. 이랑과 이랑 사이 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잰걸음으로 덤불같은 잡초들을 뿌리째 걷어냈다. 마당 몇 군데에 잡초 덤불이 쌓였고, 며칠을 그렇게 작업하고 나니 그나마 정리되고 깔끔해진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뿌듯해져서 동네 지인에게 텃밭 사진을 보냈다. 텃밭이 조금 깔끔해진 것 같지 않냐는 내 질문에 지인은 망설임 없이 바로 답문자를 보내왔다. ‘전혀 모르겠어요.’
집 전체를 통틀어 여름 잡초관리 작업을 말하자면, 이제 반 정도 진행한 듯하다. 요즘엔 평일 오전 시간이 조금 여유롭고, 주말엔 온전히 놀자는 생각이다 보니, 평일 오전에 조금씩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일주일의 작업 결과는 집 곳곳에 넉넉하게 쌓인 잡초 덤불들이 말해준다. 지인의 대답처럼 티 하나 나지 않는 작업이지만, 내가 거두어 쌓은 잡초 덤불은 내가 이제껏 무슨 작업을 했는가에 대한 좋은 증거다. 집 주변을 한 바퀴 돌듯, 반 정도 남은 작업을 이어가면 마지막에는 좀 쉴 수 있겠다 싶은 착각이 다시 생긴다. 현실은 열심히 호미를 들고 앉은걸음으로 첫 시작점에 도착하면, 그 사이 눈에 띄게 자란 새로운 잡초들이 보일 것이다. 게다가 모아 둔 잡초들이 시간이 지나 마르면, 일부는 거름통에 넣어 썩히고 나머지는 태워야 한다. 한 가족 사는 아담한 집이지만, 일은 언제나 끝이 없다. 이 섬의 사계를 따라 마당과 텃밭은 나의 몸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주말이면, 마당에 그늘막을 치고 그릴에 불을 붙인 다음, 텃밭에서 싱싱한 것들을 가져다 바로 먹을 계획을 세운다. 물론 비나 바람이 없어야 한다. 가지와 호박을 따다가 엷게 잘라 그릴에 굽고, 오이를 씻어 껍질을 벗기고 고추는 따서 바로 먹을 것이다. 토마토와 바질을 가져다 씻은 다음 적당한 간에 발사믹 오일을 뿌리고 샐러드처럼 먹을 것이다. 처음으로 심은 공심채는 긴 장마에 스스럼없이 키를 키우고 있다. 그릴 위에 팬을 놓고 방금 잘라 온 공심채를 볶아서 먹어 볼 것이다. 고기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잠깐 사이에 엉망이 되어가면서 텃밭과 마당에 발을 들여 잡초를 거두는 요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