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2.

구럼비 너럭바위는 가슴 아픈 추억이 되어버렸다.

by 전영웅

라일락보다 더 짙고 달콤한 향기가 밤공기에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그 향기가 귤꽃 향기라는 사실을 강정에서 깨달았다. 어둠이 완연해진 밤, 다리 아래로는 강정천 물 맑은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돌담 안으로는 밤에도 하얀색을 발산하는 귤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2011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강정은 들썩이고 있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구럼비와 모래언덕은 이미 공사 가림막으로 도로와 분리되었다. 구럼비 해안으로 들어가는 중덕 삼거리 소로만 남아서, 어찌 될지 모를 운명의 거대한 너럭바위와 사람들을 잇고 있었다. 곳곳엔 해군기지와 구럼비 파괴를 반대하는 깃발과 천막들이 들어섰고, 평화를 염원하는 조형물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이 섬 안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가장 조용했던 거대한 너럭바위는, 이제 가장 시끄럽고 불안한 공간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구럼비 바위를 찾았다. 구럼비를 지키려는 저항의 어떤 역할을 맡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일종의 부채의식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이제까지 마음만 움직였지 몸이 움직이지 못했던 일종의 미안함이었다. 주말이면 가족들을 데리고 강정으로 향했다. 주중이라도, 중대한 사건이나 고비가 있을 때마다 잠깐이라도 강정에 들렀다. 나는 그렇게,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구럼비 그 넓은 너럭바위를 시선과 마음에 새겨 넣었다. 5살 아이를 데리고 바다와 만나는 구럼비 바위 끝까지 걸어가,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과 부서지는 포말을 맞으며 발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바위의 온기와 부드러움을 각인했다. 시내에선 좀처럼 맡기 힘든 귤꽃 향기를 시공업체 직원들과 강정마을 사람들이 충돌했다는 어느 날의 밤에 달려가 긴장 속에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중덕삼거리마저도 공사 가림막에 막혀버렸다. 이제 구럼비 너럭바위는 더 이상 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구럼비는 곳곳에 뚫린 구멍 안으로 화약이 설치되었고, 폭파되었다. 그날 새벽, 무장한 전경들의 두터운 무리 앞에서 생명평화라는 깃발을 붙잡고 길바닥에 엎드려 웅크린 채 눈물을 흘리던 어느 활동가의 모습이 선연하다. 한없이 평범하고 당연한, 삶의 일부였던 너럭바위를 이제 추억으로만 남겨야 하는 마을 사람들도 기정사실이 된 격변 앞에서 눈물을 머금었다. 새벽 어스름이 걷힌 서늘한 공기 안으로 강정천은 여일 하게 맑은 물소리를 퍼뜨렸다. 구럼비는 서서히 콘크리트 덩어리 안으로 파묻혀 사라졌다.

강정포구 방파제 끝에 서서 사라져 버린 구럼비를 추억했다. 중덕삼거리 앞에 높게 선 망루 위에 올라, 흙먼지 풀풀 날리며 변해가는 구럼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풍경도 점점 달라졌다. 저항이 중심이 된 마을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모여든 사람들은 매일 저항을 이어나갔다. 마을 중심 사거리엔 평화센터가 생겼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서 날마다의 저항을 준비하고 정리했다. 중장비가 드나드는 공사장 정문에서는 매일 미사와 작은 저항들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지만, 아파하고 다치며 슬퍼했다. 저항의 중심에 있던 마을 이장은 극심한 피로 속에 몸을 다쳐가며 싸우다 결국엔 공권력에 연행되었다. 문정현 신부님은 강정포구 테트라포트 아래로 떨어져 허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손가락을 다쳐 수술을 받기도 했다. 저항에 적극 동참하던 마을의 여성 주민은 공권력에 밀리다 강정천 강둑 아래로 떨어져 부상을 당했다. 나는 그 과정들을 계속 관찰하고 기록했다. 기록은, 나를 아프게 했다.

평화는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생을 다하기까지 그러하도록 두는 것이다. 구럼비에 아직 우리의 발길이 닿았던 때, 재일조선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리츠메이칸대 서 승 교수님이 구럼비 너럭바위에 발을 딛고 서서 들려주었던 평화의 정의이다. 구럼비를 파괴하고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내세운 태제가 생명평화였다. 폭력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국가의 의지와, 그런 국가 안에서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모두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폭력 자체가 평화적이지 않다는 점과, 폭력 안에서 보호된 채 평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처지가 그러하다. 딜레마는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얼마 전, 트럼프를 앞세운 미국의 몇 마디에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불안을 느껴야만 했다. 북한을 중심으로 한 중미일의 역학 속에서 남한은 그리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힘으로써 평화를 지킨다는 국가 공권력의 논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얼마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가진 힘이라는 폭력은 정말 우리를 평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강대국들의 역학 속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운명은 예상이나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폭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틀린 답에 가깝다. 평화는 그 자체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경험되지 않은 논리로서 설득력을 유지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평화의 섬이라 자처하는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일은 우리의 삶을 생각할 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걸까?

시간은 꾸준하게 흘렀고, 흐른 시간만큼 강정마을의 풍경도 변했으며, 저항도 나름의 모습을 잇고 있다. 해군기지는 완공되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군용 차량들이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멀고 널찍하게 뻗은 기지 방파제 안으로 크고 작은 군함들이 드나들고 있다. 공교롭게도 나는, 해군기지와 가까운 시내의 의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나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진료하고, 마을에서 기지 반대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진료하며, 그 외 강정을 터전으로 이제껏 살아온 사람들을 진료한다. 현상을 바라보며 느끼고 판단하는 나의 사상은 진료실 안에서 잠시 침잠한다. 내 앞에 마주 앉은 사람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살피며 적정한 처치와 처방을 이어나갈 뿐이다. 어느 누가 되든 간에, 상처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조금씩 묻혀 있었다. 그것의 이유가 강정에서의 오랜 시간이든, 조직 논리의 피로 안에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스트레스든, 또는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와 땅의 변화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지 못해서든.. 나는 담담하고 진지하게 몸과 목소리가 내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다.

우산을 펴서 그늘을 만들고 드러누우면 등으로 따뜻한 열기를 전해오던 너럭바위 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신발을 벗고 맨발바닥으로 바위 위를 사뿐히 걸어 바람에 날려오는 포말을 아들과 함께 얼굴로 시원하게 받아들이던 구럼비를 나는 여전히 그리워한다. 나는 이제 먼발치에서 군함이 드나드는 기다란 방파제를 바라본다. 살면서 나의 처방이 필요한 과거의 그들과 새로이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를 만들어간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점점 변해가는 강정마을과 내가 근무하는 병원 주변의 풍경에서 새로움과 아쉬움을 흐르는 시간 위에 분명한 흔적으로 새겨 넣고 있다. 나의 사상과 생각은 앞으로도 큰 틀에서 견고함을 유지할 것이다. 생각의 견고함은, 내 앞에 앉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아픔과 목소리에 지치지 않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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