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는 때론 막연한 장벽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바람 부는 바다는 탁 트인 자유였다. 모든 것이 답답하고 감정의 통제가 어려워지면, 나는 어떻게든 가장 가까운 바다로 향했다. 잠깐의 여행을 다니더라도, 바다는 항상 여정의 일부였다. 날이 맑던 흐리던 잔잔하거나 하얀 포말을 머금은 파도 위로 넓게 펼쳐진 시야,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담는 단 한 번의 깊은숨만으로 내 안의 복잡함 들은 빠르게 가라앉고 고요해졌다.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어서 빨리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때마침 출산 후 답답해하는 아내와 2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나는 완연한 가을의 시화방조제 공원에 서서 아이에게 바다를 보여주었고 바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4개월이 되었을 때엔 깊고 넓은 동해바다를 보여주었고, 6개월이 되었을 때엔 따스하고 포근한 남도의 잔잔한 바다를 보여주었다.
입도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는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지만, 막연한 장벽이기도 했다. 제주바다는 거칠지만 맑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가끔씩 심하게 거칠어지기 시작하면 이 섬의 모든 것을 고립시켰다. 특히 태풍이 올라오는 여름 가을이 되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하늘과 바다의 모습을 주시하며 긴장해야만 했다. 바람과 파도에 비행기와 배가 운행을 멈추고 나면, 사람들은 꼼짝없이 이 섬 안에 갇혔다. 그럴 때면,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형체 없이 막연하고 거대한 장벽을 마주하는 기분이 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에서 산다는 것, 그것도 육지와의 최단거리가 60여 킬로미터인 망망한 바다에 둘러싸여 사는 기분을 입도한 지 얼마 안 되는 내가 말하는 건 조금 무리이다. 평생을 그리고 대를 이어 이 섬에 사는 이들에게 바다는 어떤 존재인지 감각의 깊이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영권 선생님의 조선시대 해양 유민의 사회사를 읽어보면, 제주민들이 척박함과 수탈에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바다였다. 동시에 바다는 탈출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바다는 이들을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동해 일본 그리고 저 멀리 북단의 해랑도까지 가서 일을 해도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물질이었다. 육지에 나와 일을 해도 바다의 물길을 보며 배를 안내하는 물 위의 일이었다. 막무가내로 작은 목선 하나에 가족을 싣고 섬을 탈출해도, 육지에는 오를 수 없으니 남해안 작은 섬이나 육지 해안가에 배를 묶어둔 채 배 위에서 죽은 듯 조용히 살아야 했다. 4.3 이후에 Red Island라는 두려운 덧칠을 벗겨내려 젊은 청년들이 자원해서 입대한 군대는 해병대였다. 이쯤 되면 섬의 사람들에게 바다는 형체 없는 장벽이자, 뛰어 들어가면 움직일수록 다리가 빠져드는 지독한 늪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젠 그런 시절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좀 더 자유로워졌다. 바다를 건너는 일은 웬만한 파도에도 거침없이 달리는 배를 건조하는 선박 기술과, 하늘로 올라가 우습게 바다를 건너뛰는 항공기술의 발달로 너무 쉬워졌다.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도 그때와 같아서 매섭게 바람이 불고 무서운 파도가 방파제를 덮치는 날에는 발달한 기술이 무색하게 섬사람들은 그대로 고립되고 만다. 자연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가만히 바람을 주시하고 파도를 바라본다. 몰려드는 고립감, 육지에서 거센 바람과 파도를 보았다면 되려 웅장한 자유감을 느꼈을 텐데, 이 섬에서는 정 반대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늘과 바다의 표정을 예민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삶, 육지를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아무 때나 의지대로 운전대를 잡던 때와는 다르게 시간과 좌석을 고민하며 고르고 예약해야 하는 입장.. 이런 것들이 일상이 되면, 섬의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멀리서의 동경이나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감흥과는 전혀 다르게 진지해진다.
시선의 변화만큼, 육지를 오가며 느끼는 것들도 많이 변했다. 이전엔 밀리는 도로 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 차에 들끓는 짜증을 참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비행기의 지연과 연착과 수속과정의 자잘한 짜증을 일상으로 여기며 산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이륙까지의 지루함과 높다란 하늘 위에서 소소한 기압차에 귀가 먹먹해지는 증상을 견딘다. 파도 높이에 따라 둔중하게 흔들리는 여객선의 어지러움을 참아내고 육지의 항구에 도착하면 황토색의 논밭 색깔이 이제는 새롭게 보이는 나의 달라진 감각을 신기해한다. 학회, 여행, 잡다한 용무 등으로 그렇게 육지를 오가면서 기상으로 인해 연착이나 결항이 되지 않을까, 혹시 시간을 못 맞춰서 배나 비행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긴장하는 일 역시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장벽은 이제 막연하지 않다. 장벽이라 생각하는 바다를 건너뛰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장벽이 되어버린 바다를 바라보는 일, 장벽을 넘나드는 일을 일상으로 살아야 하는 삶은 나의 감각과 시야를 크게 변화시켰다. 좀 더 자연을 감각적으로 느껴야 하는 삶이 되었고, 예민한 일상과 번거로운 대상이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사실, 바다가 장벽처럼 보이는 때는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제주바다는 아름다우며, 나의 훌륭한 놀이터이자 바다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와 저 멀리 떠 있는 배들이 거의 날마다의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 게다가 변화한 감각과 시야는 나를 크게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고립된 지역에서의 유기체들이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진화하듯, 그것들은 내가 이 섬에 맞게 적응하기 위한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때로는 일부러 거센 바람을 맞고, 방파제를 넘는 파도 옆에 서서 두려움을 느껴보기도 하는 건 적응이 너무 과한 탓인지 모른다. 내가 환경에 잘 적응하는 건지, 아니면 이 섬이 내가 적응하기 좋은 환경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과 시야의 변화와 그 안의 장단점들을 나는 오롯하고 담담하게, 때로는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