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4.

완연한 가을의 제주에서 고등어를 만났다.

by 전영웅

낚시를 하다 보면, 떼로 몰려와 귀찮게 하는 녀석들 중 하나가 고등어다. 떼로 몰려드는 것들은 잡자니 작거나 좀 더 크더라도 가져다 먹기 애매한 크기라 낚시꾼의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훼방꾼인 것이다. 물론 입질이나 손맛이 아쉬운 초짜 낚시꾼에겐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거침없이 달려들어 힘차게 파닥거리며 줄을 당기는 녀석들에 신이 절로 난다. 잡았는데 가져가서 먹어야지 싶어 신나게 수십 마리 잡아 올린다. 그것들을 가져다 집에 가서 손질을 하다 보면 왜 고등어를 귀찮아들 하는지 그때서야 깨닫게 된다. 손질은 힘들고 먹자 할 것은 별로 없고 주방은 온통 고등어 비린내와 자잘한 비늘들로 금세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동문시장 수산물 골목을 들어서면 한 번에 눈에 띄는 것이 갈치와 고등어다. 5지 두께를 넘나들며 거울 같은 은빛 등줄기를 반짝이는 갈치는 알다시피 이제는 금치가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집안 어른들께 선물로 보내드릴 일이 아니라면 제 돈 주고 사 먹는 일은 아예 없어졌다. 그냥, 영롱하게 반짝이는 등줄기 한 번 눈으로 감상하고 다른 좌판으로 눈을 돌리면 고등어가 보인다. 고등어 역시 영롱하다. 통통한 몸통에 특유의 검푸른 무늬가 선명하고 커다란 눈은 맑고 투명하다. 그 모습은 육지에서 보던 고등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신선하고 큼직하다. 깊은 바다 위 배에서 건져 올려진 녀석들을 갯바위에서 낚시하다 만난 귀찮은 녀석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좌판에 가지런히 놓인 녀석들은 고르기만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손질이 되어, 구이로 조림으로 그날 저녁의 밥상에 오른다. 다만, 녀석들의 몸값도 엄청 올라서 웬만한 크기의 고등어는 한 마리에 6천 원을 훌쩍 넘는다. 수조 안에서 번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살아있는 녀석들은 횟감으로 쓰이는데 작달막한 체구에도 한 마리에 만 원 이상이다. 이쯤 되면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맙’ 다는 노래 가사는 이제 정말 옛 말이 되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루시드 폴은 그의 노래 ‘고등어’를 다시 고쳐 불러야 할 판이다.

가을빛이 감돌기 시작하는 하늘을 느끼며 아침 일찍 친구의 배를 타게 되는 날엔 은근 고등어를 기대하게 된다. 염두에 둔 어종이 잡히기를 기대하고 배를 타는 것이라서 고등어는 여전히 귀찮은 잡어이지만, 몇 길 바닷속에서 힘차게 바 등거리며 올라오는 고등어는 아쉬워도 덩치는 동문시장 좌판 급이기 때문이다. 고등어가 많이 나오는 때에는 아예 고등어 전용 채비를 내린다. 수십 마리의 덩치 큰 고등어는 만선의 기분을 느끼기에 딱인 광경이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서 잡혀 올라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잡자마자 냉장 상자에 넣은 채로 배가 포구로 들어오면 정리와 함께 먹을 만한 고등어 몇 마리를 바로 손질한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반을 가른 뒤 소금을 조금 치면 구이용, 두 손가락 두께로 어슷하게 토막을 내면 조림용이다. 방금 잡아 포구에서 바로 손질하는 고등어를 먹는 방법 중엔 구이와 조림 말고 한 가지가 더 있다. 크면 클수록 좋은 녀석들을 골라 일단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횟감으로 손질하는 방법이다.

종종 배를 함께 타는 친구가 완연한 가을의 어느 날 이른 오후에 전화를 했다. 빨리 포구로 오라는 전화였다. 그때는 장인 장모님이 우리 집에 와 계시던 날이었는데, 친구는 그 사실을 알고 모두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다. 가보니 방금 낚시를 마치고 포구로 들어와 뒷정리를 하던 친구는,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열더니 수북이 잡힌 고등어를 보여주고는 그중 가장 큰 고등어를 한 마리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둔 칼과 도마와 김과 초간장을 차에서 꺼냈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바닷물에 한 번 씻은 뒤, 옆 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를 솜씨 있게 잘라낸다. 등줄기의 한 모서리에서 시작하여 고등어의 살을 감싸고 있는 피막을 손으로 잘 벗겨낸다. 고등어는 비늘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때 잘 보면 피막에 자잘하게 붙어있는 비늘을 볼 수 있다. 여하튼, 피막이 벗겨진 고등어는 푸른 체색이 좀 더 선명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거의 다 되었다. 척추뼈를 중심으로 포를 뜬 뒤에 뱃살 안쪽 피막을 걷어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살을 자르면 된다. 이제 맛을 보아야 한다. 적당한 두께로 자른 고등어 살을 초간장에 살짝 찍은 뒤에 간을 하지 않은 생김에 올린 뒤 싸서 입에 넣는다. 그 맛은, 일단 장인 장모님이 이 날 이후로 몇 년간 맛을 잊지 못하시고 서울의 친구분들에게 자랑하시더라는 사실로 갈음한다. 나 역시 이후로 고등어회를 일부러 사 먹는 일이 없어졌다. 입 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고등어 지방의 풍부함과 갓 잡은 생선살의 담백함이 너무 황홀했기 때문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기름진 가을 고등어는 금방 느끼해져서 많이는 먹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수조에서 돌아다니다 잡히는 호리한 양식 고등어 회에 비할 수가 없다. 한 번 경험해버린 입맛은 열망만 남을 뿐, 아쉬운 대로라는 체념을 허용하지 않았다.

고등어에도 종류가 있다. 굳이 세계적으로 논할 것 없이 우리는 주로 두 가지 종류의 고등어를 만나게 되는데 하나는 태평양 고등어이고 다른 하나는 망치고등어이다. 배에 얼룩덜룩한 희미한 점무늬가 있으면 망치고등어인데, 이 고등어는 대체로 맛이 없다. 맛이 없어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식당에서 만나는 조림고등어는 많은 경우가 망치고등어이기도 하다. 어느 날엔가 오일장을 갔더니 덩치 좋고 눈이 선명한 고등어들이 좌판마다 그득한데, 손질된 채 좀 오래되어 보이는 고등어는 거의 다 팔려나가고 얼마 남지 않았었다. 물 좋은 고등어인데 왜 다들 안 고르지? 하는 의아함을 가지고 덩치 좋은 놈 두 마리 골라 집에 가져와서 구웠는데, 퍼석하고 맛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것들은 망치고등어였다. 아는 것이 힘이고, 알아야 먹는 것도 잘 골라 먹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경험이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고등어를 고를 줄 알게 되었는데, 사실 망치고등어도 양념 잘 해서 조림으로 먹으면 맛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사실은 조림을 잘 한다는 제주시내 몇몇 식당에 가 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고등어를 조림으로 먹거나 구이로 먹거나, 그것은 내 어릴 적부터 그리고 육지에서도 종종 그래 왔던 음식이다. 민물만 그득하게 고여 있는 도시 춘천의 공지천 포장마차에 가면 고갈비라는 커다란 고등어 구이가 술안주로 인기였던 만큼 모두의 무난한 생선이기도 했다. 그런 고등어를 제주에 와서 보니, 크기와 자태와 싱싱함이 남달랐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말마따나 ‘유전자 자체가 다른’ 고등어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생선이다. 육지에서 그저 그런 평범했던 생선이, 제주에 와서는 낚시로 음식으로 다양한 입맛과 손맛과 감정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긴 했어도, 여전히 평범한 생선인 고등어는 나에게 먼 듯 가까운 듯, 반가운 듯 귀찮은 듯한 존재이다. 쓰고 보니 이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노련하게 밀당을 하는 생선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완연한 가을 하늘과 가을바다를 두고 나와 고등어는 좀 더 가까워질지 멀어질지 궁금해진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어느 좋은 날, 배 한 번 같이 타자 부탁해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세이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