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제주바다는 나의 아름다운 놀이터였다.
바다는 두렵고 아름다웠다. 잔잔한 물결 아래로 검고 푸른 청명이 차분하게 잠겨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말은 한여름 무더위 작고 나직한 포구 위에 서면 이해할 수 있다. 뜨거운 볕과 미칠 듯 땀을 배이게 만드는 더운 공기에 나는 등을 떠밀렸다. 밀려드는 바닷물에 나는 발을 담그고 팔과 몸을 적신 뒤, 이내 바닷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물은 미지근한 듯 시원했다. 지난여름, 한담 바다는 나의 아름다운 피서지였다.
대학시절 잠깐 경험했던 스쿠버 다이빙 이후로, 20년 만에 날 것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함께 스노클링을 하자는 지인의 제안으로 스노클 장비를 구입해서 검고 깊었던 구엄 바다로 들어갔다. 20년 만의 경험은 온전하게 두려움으로 되돌아왔다. 검은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검은 시야, 닿지 않는 발이 자아내는 위기감.. 나는 핀을 신을 발을 열심히 흔들어 다시 갯바위 위로 올라왔다. 바다에 대한 나름의 자신이 순식간에 두려움과 위기로 바뀌는 경험은 나를 위축시켰다. 함께 한 지인은 마치 인어인 양 먼 바다까지 나가 프리다이빙하듯 잠수까지 즐기고 오는데, 나는 완전히 압도되어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몸은 다시 적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다시 조심스레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 손은 갯바위에 대고 주변을 헤엄치는 것으로 시작해서 얕은 바다 위를 돌아다녔다. 보말과 벵에돔과 어랭이들이 거리를 두고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바다는 점점 익숙해졌고, 한여름의 스노클링은 매년의 일상이 되었다. 제주의 여름은 비 한 방울 없는 길고 긴 폭염의 나날이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바다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고, 나는 차 트렁크에 스노클 장비와 샤워타월 두어 장을 넣고 바로 바다로 달려갔다. 집에서부터 이미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에 도착하면 스노클 장비를 바닷물에 씻고 몸을 가볍게 적신 뒤 바다에 들어간다. 수면은 공간의 경계가 되어 피부는 전혀 다른 공간의 느낌을 의식으로 전해왔다.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의 진입, 얼굴과 팔의 피부는 물 속이라는 공간이 가하는 가벼운 압박과 흐름을 의식으로 전달했고, 청량함과 시원함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입에서 물 밖으로 이어진 튜브에서는 내 호흡이 그대로 들렸다.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삶의 근원은 물 밖과 속이 다르지 않아, 내리쬐고 굴절된 햇볕은 그대로 내 팔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볕은 그대로 바닷속으로 들어가 깊지 않은 모래톱과 물속 바위에서도 일렁였다. 작은 해초들이 힘을 뺀 채 물결에 흔들리며 볕을 받고 있었고, 그 사이로 복어와 쥐치, 벵에돔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모래톱 위에서는 넙적한 다리를 가진 황토색 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나를 보고는 모래 속으로 숨어들었다. 유선형으로 모래가 살짝 내려앉은 모습은 알고 보니 서대나 광어가 몸을 숨긴 것이었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만큼, 나의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좀 더 멀리 나아갔다. 바다는 깊어졌고, 시야는 약간 흐려졌다. 흐릿하고 투박한 바닥에서는 은빛의 숭어들이 무리를 지어 얕은 곳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움직이던 다리를 멈추고 그대로 부유한 채, 쉽게 다가가지 못할 저 풍경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어를 잡겠다는 지인과 함께 스노클링을 나선 어느 날에는 멸치 떼를 만났다. 내리는 볕에 멸치들의 몸통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작은 체구의 무리들이 나와 함께 헤엄치며 생존본능의 경계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은빛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이 되어 나의 시야로 들어왔다. 흐르는 조류를 마주하다가 어떤 때엔 두 갈래로 나뉘기도 하고, 다시 모였다가 이동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어떤 본능과 신호가 저 수천의 무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지 경이로웠다. 멸치 떼를 지나 좀 더 나아가니 더 큰 크기의 멸치 떼를 만났다. 아까의 멸치 떼는 꽃멸이었다면, 이번 떼는 잡으면 튀김을 해도 될 법한 대멸이었다. 큰 몸통의 멸치들은 턱이 꺾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며 헤엄쳤다. 한껏 벌린 입에 아가미덮개가 옆으로 벌어지면서 은빛의 반짝임은 다양한 각도로 좀 더 다채롭게 연출되었다. 멸치들이 저렇게 입을 벌리고 헤엄치는구나.. 처음 보는 광경에 나 역시 움직임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멀리 나아가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 멸치 떼를 따라 헤엄쳤다.
키를 훌쩍 넘는 깊은 바다에서 포구 쪽으로 헤엄치면, 물은 약간 차가워진다. 곳곳에서 블러 처리한 것처럼 시야를 흐리는 용천수가 바닥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따뜻한 바닷물에 아주 차가운 용천수가 섞이면서 몸이 한기를 느낄 정도로 물은 잠시 차가워진다. 포구에 다다라 몸을 일으키면, 잠시 몸이 무거움을 느낀다. 걷는 움직임도 조금은 어색하고 무겁다. 내가 삶을 이어가던 공간을 벗어난 잠깐의 외도는, 익숙함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몸은 바다에 식어 시원해졌고, 내리쪼이는 볕은 한동안 버겁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노클 장비를 챙겨 젖은 몸으로 차 트렁크를 열고 샤워타월로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온다. 잠깐의 이동과 가벼운 차림으로 한여름의 바다는 하루를 견디게 하는 나의 아름다운 놀이터가 되었다.
공기는 싸늘해졌고, 바람 불며 거센 파도가 치는 날이 많아졌다. 마당의 감나무엔 주홍으로 깊게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끔씩 몰아치는 바람에 가지를 흔든다. 지금은 다가올 한겨울의 걱정과 작은 기대들이 지난 한여름에의 추억들을 압도하는 때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쉬움이 조금씩 스멀거리며, 한여름의 바다를 자꾸 기억하게 만들었다. 쉬는 날에나 가끔 들어갈 수 있어서 좀 더 자주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우연하게 만났던 은빛 멸치 떼들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알 수 없다. 거실 바깥의 점점 을씨년스러워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적당히 시원했던 바다 속 감각과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겨울을 보내고 나면, 추억은 기대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