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제주엔 폭염이 쏟아지고 있었다. 조금 덜 습한 느낌은 다행이지만 더워서 어쩌지 못할 날씨였다. 꽤 오랜 장마에 이은 폭염은 사람을 지치게 했고, 땅에 뿌리를 내린 것들은 한껏 머금은 물과 내리쬐는 볕을 양분 삼아 키를 바짝 키웠다. 고추와 가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땅을 뒤덮을 것 같이 기어가다 바위덩이 같은 호박을 내려놓고 다시 기어가는 텃밭 것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잡초들도 마찬가지였다. 길어지는 장마와 뜨거운 볕을 핑계 삼아 외면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 손을 들이지 않았다. 너무도 뜨겁던 8월 중순의 쉬는 토요일, 나는 아침 일찍부터 몸을 옷으로 충분히 가리고 모자와 장화를 착용하고, 장갑을 낀 뒤 호미를 들었다. 이런 날 무리하다간 얼마 못 가 쓰러질 것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루 동안 손 볼 구역을 가늠한 뒤, 조금씩 천천히 잡초를 손 볼 생각이었다. 필로티 주차공간에 차를 조금 빼서 공간을 만들고, 그늘에 의자 하나를 두고 라디오를 틀었다. 아이스팩과 얼음물과 맥주를 채운 아이스박스를 준비해 두고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마을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경계 아래로 무성한 잡초들부터 손을 대었다. 우선 호미로 뿌리까지 뽑아야 할 것들을 골라 듬성듬성 작업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잠깐의 노동에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늘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얼음물 한 모금, 잠시 쉰 다음 다시 진입로로 향했다. 이번엔 내 손에 전정가위가 들렸다. 그 많은 잡초들을 일일이 캐내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여 지면에 가깝게 삭발하듯 잘라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일부러 심은 타임과 라벤더를 잘 피해서, 다른 잡초들을 싹둑싹둑 잘라나갔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그늘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얼음물 한 모금, 바다 쪽으로 밭 두 개를 넘어 얼마 전에 생긴 독채펜션에서 여행 온 가족들이 마당으로 나와 이른 아침부터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텃밭으로 들어갔다. 이제 끝물인 오이와 풍뎅이들의 탐식에 먹을 것을 별로 건지지 못하는 방울토마토를 거둘 생각이었다. 키높이의 지주대를 전부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니, 오이와 토마토를 치워내면 지주대도 같이 정리해야 했다. 텃밭이 넓어 보일 것이다. 덤불과 오이망이 엉켜 지주대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뿌리를 뽑고, 덤불과 오이망을 뭉쳐서 치워내면서 먹을 것들을 따로 모으기까지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한아름 되는 덤불을 세 번 정도 안아 마당에 부렸다. 다시 그늘로 들어가 쉬고, 다시 텃밭으로 들어가 앙상하게 남은 지주대를 뽑았다. 반대편 구석으로 부실한 콩과 땅에서 자라 억세진 공심채를 모두 뽑았다. 대충 정리를 해서 무와 배추와 쪽파를 심을 가을 텃밭 자리를 만들었다. 다시 그늘로 들어가 앉아 얼음물 한 모금. 맥주가 있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맥주를 잘못 마셨다가 무더위에 탈진할까 무서워 맥주는 미뤄두었다. 마당에 쌓인 덤불에 뭐가 보이는지 반려견 녀석이 목줄을 바짝 당겨 덤불에 코를 박았다.
침실 앞으로 난 데크에 텐트용 방수천을 깔고 위로 간이 풀장을 설치했다. 이른 오전에 물을 받아두면 그늘이 지는 이른 오후쯤에 넉넉한 양의 물이 폭염에 의해 따뜻해졌다. 중학생인 아들 녀석은 아직도 그 풀장을 좋아했다. 오늘은 너무 더우니 아들과 아내를 풀장에 먼저 들여보내고 나도 작업 마치는 대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전에, 밀림이 된 뒤뜰부터 해결해야 했다. 한 달 전 뒤뜰 반 정도 잡초를 제거했었다. 하지만, 길어진 장마에 신나게 물을 머금은 잡초들은 그 짧은 시간에 다시 밀림으로 만들어버렸다. 뒤뜰 초입부터 쪼그리고 앉아 천천히 뿌리까지 뽑아내었다. 경계용으로 심은 두릅이 땅속뿌리줄기를 뻗어 곳곳에서 가시 돋친 순을 내고 있었다. 손이 찔리고 귀찮았다. 호미를 잡고 손목 스냅으로 요령껏 순을 꺾어 잘라내야 한다. 뒤뜰은 이 집에 들어선 지 5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반려견의 배설물과 말린 잡초들 약간으로 만드는 퇴비통과, 구석에 전정한 나뭇가지를 태우는 공간 외에는 매번 잡초들의 놀이터였다. 알아서 퍼지라고 허브와 꽃씨들도 뿌려보았지만, 땅이 거칠어서인지 잡초를 이겨내지 못했다. 뒤뜰 3분의 일 정도 작업하고 다시 그늘로 돌아와 앉아 얼음물 한 모금, 다시 들어가 그만큼 작업하고 다시 그늘로 돌아와 앉아 얼음물 한 모금.. 날은 한껏 더워졌고, 땀은 온몸을 적셨고, 반려견 녀석은 로즈마리 그늘 아래 늘어져 헥헥대고 있었다. 이제껏의 게으름과 시간 부족으로 이렇게 더운 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싶어 졌다. 아내가, 정리하며 건진 작은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얼음과 함께 넣어 만든 비빔면을 양푼에 담아 내가 있는 그늘로 나왔다. 점심시간이었다. 풀장의 물은 넉넉히 차올랐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몸을 담그기 좋을 만큼 따듯해질 참이었다.
점심시간이라는 명목으로 좀 더 긴 시간을 그늘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쉬었다. 멀리 독채펜션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모자 쓴 아저씨 한 분이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청소 중인 것 같았다. 볕에 노출된 차 지붕에서는 뜨거운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나는 다시 장갑을 끼고, 호미를 들고 뒤뜰로 가서 남은 작업을 마무리했다. 너무 덥고 지치니 점심으로 먹은 것들이 뱃속에서 가스를 피워 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와중에 풀모기떼들은 가끔씩 볕과 바람을 피해 나를 공격했다. 많지는 않지만 팔과 엉덩이 몇 군데가 가렵기 시작했다.
오후의 절정에 아들 녀석은 넉넉한 늦잠과 적당한 점심을 먹고 부스스한 채로 물에 뛰어들었다. 아내도 물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나는 그제야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정수리가 뾰족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작업으로 생각해 둔 현관 앞마당과 포도나무 아래 무성해진 바랭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마당에 사람들이 오가니 반려견 녀석은 같이 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잠시라도 자유롭게 다녀보자 싶어 목줄을 풀어주었다. 기특하게도 마당 밖을 나가지 않고 가족들 주변에서 돌아다니며 먹을 것 안 주나 눈빛을 보냈다.
쪼그려앉은 채로 다니며 잔디 사이에 숨은 바랭이 뿌리를 캐내고 나니 한아름은 넘는 덤불이 모아졌다. 아침부터 작업해서 진입로와 마당, 그리고 뒤뜰에 널브러진 잡초들은 폭염에 그사이 메말라 생기를 상실했다. 곳곳에 네기로 모아서 뒤뜰 불 피우는 자리로 옮겼다. 부피로 치자니 어른 넷은 포개 놓은 것 같은 양의 잡초가 쌓였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당과 텃밭 곳곳은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은 뜨거운 날의 작업은 여기서 마무리하였다. 너무 더워 지치고,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인데 나도 좀 놀아야지 싶었다. 정리를 하려는데, 내내 눈치를 보던 반려견 녀석이 목줄 풀린 기회를 틈타 집 밖으로 달아났다.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저 마당정리를 하고 있으니, 얼마 되지 않아 녀석은 마당으로 돌아왔다. 대신 옆구리에 분변 냄새나는 오물을 묻혀왔다. 녀석을 붙잡아 일주일 만에 다시 목욕을 시켰다. 물을 정말 싫어하는 녀석은 몸에 쏟아지는 비눗물에 기겁했다. 그리고 다시 목줄에 묶였다. 나도 얼른 샤워로 땀을 씻고, 풀장에 뛰어들어 시원한 맥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미친 듯 더워하던 피부의 감각이 서서히 시원함으로 돌아섰다.
무더위와 상관없이 가을이 오기 전에 마당과 텃밭은 손을 좀 더 봐야 한다. 뽑아내고 치워서 만든 텃밭의 빈자리도 좀 더 손을 본 다음, 아담하게 가을 텃밭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간이 넉넉한 어느 날 나는 다시 마당 어딘가에 쪼그려 앉을 것이다. 그리고, 오일장이 열리는 어느 날에 모종과 씨앗을 사다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익숙하게 반복하고 있는 해마다의 적당한 고비를 넘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