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들

고양이를 애도함 : 20201022

by 전영웅

고등어 무늬의 고동색과 황토색 고양이 두 마리였다. 아마 내가 이 집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3대째 새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제 막 어미를 떠나 각자 다니는 모습을 보아 태어난 지 두어 달 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녀석의 어미와 아비로 생각되는 녀석들을 꽤 오래 보아왔다. 어미는 황토색 녀석과 똑같이 생겼고, 아비는 고동색 녀석과 똑같았다. 어미는 경계가 심해서 밥을 주는 나와 항상 약 2미터 거리를 두었다. 그것도 많이 가까워진 것이었다. 볼 때마다 하악대길래 밥을 주다 말고 몇 번 몇마디 불평을 쏟아주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하악거리지 않고 거리만 유지했다. 츤데레가 유독 심한 녀석이었다. 아비는 우리 식구들에게 냐옹거리며 말부터 걸며 몸을 비비는 녀석이었다. 덩치와 곳곳의 상처로 보아 동네 고양이무리의 두목행세를 하는 것 같았다. 밥을 주는 나에게는 유독 더 친근하게 다가와서 밥을 먹을 때 쓰다듬어 주어도 묵묵히 먹기만 하는 녀석이었다. 이제 그 둘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의 새끼로 생각되는 두 녀석에 온전히 갈색인 한 녀석으로 세 녀석이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그 중, 위의 두 녀석이 자주 보였는데, 어미가 아직은 그리운지 가끔씩 옆 집 돌담 위에 번갈아가며 올라가 오래도록 냐옹냐옹 울었다. 그럴때마다 우리집 마당의 반려견 라이녀석은 미쳐갔다. 묶여서 달려들지 못하니 연신 울부짖으며 땅만 긁어댔다. 녀석들이 밥을 먹으러 우리집 주차장에 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은 라이를 경계하면서도 묶여있음을 알고, 스티로폼 박스로 만들어 준 급식소에 담아둔 사료를 넉넉히 먹고 옆집 밭으로 여유롭게 사라졌다.


녀석들은 집 주변을 배회했다. 옆집 고구마 줄기와 콩밭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슬쩍 허우적대면서도 제법 맹수걸음 모양새가 났다. 밥을 주는 사람인 줄은 아는 것 같은데, 내가 나타나면 긴장한 표정으로 한번 바라보다가 재빠르게 도망쳤다. 집 뒤편 배수로에 쌓인 나무가지들을 태우려 주변을 정리하니 부스럭거리면서 녀석들이 도망가기도 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우리집 주차장에는 녀석들의 사료가 항상 놓여진다는 사실을 아는 듯 했다. 영역은 그렇게 고착되었고, 우리집이 영역이다보니 라이 눈에 자주 띄면서 라이도 수시로 흥분했다.


이른 아침부터 라이녀석이 맹렬하게 짖어댔다. 짖는 소리에, 집 근처로 뭔가 왔나보다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종종 있는 일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2층 거실로 올라가며 창문으로 밖을 보았는데, 짖고 있는 방향이 평소와는 달랐다. 보통은 마당 외부를 향해 짖는데, 이번에는 자기 집 아래를 노려보며 무섭게 짖고 있었다. 쥐가 들어갔나, 심드렁하게 내려다보며 외출준비를 하고 느긋하게 마당으로 나갔다. 순간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나는 많이 당황했다. 고동색 고양이 녀석이 마당에 널부러져 발톱을 세우고 있었고, 라이가 으르렁대며 수시로 물어댔다. 놀란 나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들고 라이를 쫒아냈다. 고양이녀석은 많이 놀란 표정으로 발톱세운 앞발로 경계했다. 살펴보니, 옆구리에 이빨자국이 하나 보였고, 뒷다리는 잘 움직이지 못했다. 라이녀석을 멀리 쫒아내고 녀석을 천으로 감싸 급식소 안으로 넣어주었다. 사료를 옆에 두고, 물도 챙겨주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평소에 라이를 경계하는 녀석이 어째서 라이에게 그런 험한 일을 당하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마당에서 아침잠을 즐기는 라이녀석 몰래 라이 밥을 먹으러 다가갔다가 걸린 것 같았다. 라이 집을 벽돌로 괴어 땅에서 좀 띄워놨는데, 그 아래로 피신을 했고, 그래서 라이녀석이 집 아래를 보고 그렇게 짖었던 것 같았다. 내가 나갔을 때엔 녀석이 라이에게 끌려나와 치명적인 공격을 당한 직후였다.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평소에 고양이 사료를 너무 적게 주었었나. 좀 더 일찍 마당으로 나갔다면 그런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외출은 해야겠고, 다녀와서 녀석의 상태를 보고 병원에 다녀와야 하나.. 뒷다리를 못쓰게 되면 그 상태로 내가 키워야 하나.. 수많은 생각을 하며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급식소에 밀어넣어진 녀석은 앞발로 자세를 가다듬더니 고개를 바깥으로 빼꼼히 내밀고는 가끔씩 자기가 올라가 울었던 옆집 돌담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급식소 안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누웠다. 아직은 충격에 긴장이 덜 풀린 모습이었지만, 눈망울이 아주 맑아보여서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외출을 다녀와서 급식소부터 살폈다. 작은 구멍 안으로 네 다리가 옆으로 나란했다.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끊어진 몸뚱아리에서 퍼지는, 우울한 냄새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넣어준 사료가 반 정도 사라져 있었다. 나는 낙담했다. 고개를 돌려 마당의 라이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사냥한 생명체가 완전히 제압당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것인지, 나를 보며 얌전히 앉아 꼬리를 흔들어댔다. 무어라 할 수 없는 마음으로, 장갑을 끼고 창고의 신문지 한 장을 꺼내고 삽을 들었다. 되도록 숨이 끊어진 녀석의 눈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몸뚱아리를 꺼내 신문지로 감쌌다. 뒤뜰로 들고 가 삽을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길고양이의 짧다는 수명보다도 더 짧은 생을 원치 않는 방식으로 마무리해야 했던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잠시 애도했다.


오늘 아침에는 황토색 무늬의 녀석이 급식소 앞에서 죽어 있었다. 밤사이 어떤 이유인지 줄이 풀어진 라이녀석이 사료를 먹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숨을 끊어버린 듯 했다. 이른 아침 마당에 나온 나에게 속 좋은 표정의 녀석이 자기 집이 아니라 주차장 쪽에서 줄을 매단 채로 달려왔다. 급식소는 스티로폼 일부가 뜯겨져 있었고, 사료도 흩어져 있었다. 라이녀석은 사냥을 즐기고는 밤새 긴 시간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다가 아침 일찍 집으로 온 것이었다. 다시 심란한 마음으로 라이녀석을 다시 묶어주고, 죽은 녀석을 며칠 전 죽은 녀석의 옆에 땅을 파고 나란히 묻어주었다. 급식소를 북쪽의 잡다한 자재를 모아두는 공간으로 옮겨 더 이상 라이녀석의 시야에 보이지 않게 했다. 북풍으로 비바람에 급식소가 불안할 듯 하여 피하던 자리였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남은 한 녀석과 가끔씩 보이는 다른 고양이들의 급식이 안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시 묶어둔 라이녀석은 주둥이를 잡고 혼을 내 주자 그저 하던 대로 몸을 뒤집을 뿐이었다. 본능이 시켰을 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듯 했다. 수습과 애도는 나의 몫일 뿐이다. 공존에 필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단속이다. 단속이 잠시 느슨해지면, 그것은 곧바로 애도가 되었다. 애도는 애도하는 자의 말 없는 심란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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