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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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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an 05. 2021

텃밭일기 #57 : 20210105

  출퇴근이 힘들 정도로 눈이 한차례 쏟아졌다.  며칠간 춥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올해 겨울은 상대적으로 춥고 눈이 많이 내릴 거라 했는데, 예보가 사실이구나 싶었던 한 주였다.  이번주도 며칠간의 눈 예보가 있다.  오늘 아침부터 흐리고 잠깐 비가 내리더니,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멀리 바다에는 하얀 파도가 거칠게 일기 시작했다.  아마 내일부터는 눈이 내리고, 나는 다시 출퇴근 걱정을 해야 할 것이다.  눈은 반갑지만, 날씨와는 무관하게 흐르는 인간의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인간의 역사에 인민의 현실은 언제나 버거웠지만, 자연을 거스르며 유지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버거움은 옳은 것인지 또는 반드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지, 자주 의문이 들게 한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뭔가를 쏟아부을 것 같고, 바람은 심상치 않다.  한기섞인 을씨년스러움이 몸을 휘감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대파밭에서는 농부 둘이서 주저앉은 채 대파를 거두고 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단단하게 입은 작업복은 푸짐해서 원래의 몸집을 가늠하기 힘들다.  둘이서 나란히 앉아 각각 한 이랑씩을 맡아 대파를 뽑는다.  뽑은 대파는 그 자리에서 흙을 턴 뒤, 등 뒤에 허리끈으로 고정한 주홍색 띠뭉치를 하나씩 뽑아 단으로 묶어 옆에 나란히 놓는다.  일 년 내내 밭이 흙을 드러낼 새 없는 제주에서, 풍경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버거움이다.  때가 있는 농사에서, 춥다고 바람이 분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날이 더 춥고 눈이 와서 작업이 힘들어지기 전에 어서 거두자는 작은 가늠만이 있을 뿐이다.  자연을 거스르며 흐름을 유지해야만 하는 인간의 현실과, 자연을 거스를 수 없어 서둘러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인간의 현실은, 결국 인간의 삶은 버거움 자체임을 증명한다.  노동은 그러했다.  생각하고 몸을 쓰는 일은 자체로 피곤해서라도 버겁다.  자연은 인간의 피곤을 배려하지 않고, 인간은 피곤함에의 배려를 스스로 포기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이어진다.  답은 비교적 간결하고 분명하지만, 노동은 삶의 근본을 들출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버거움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피곤함이다.  여기서 불로소득을 논하는 것은 경박이자 노동에 대한 무례이다. 

  창 밖의 두 농부를 바라보면서 노동을 말하는 일은, 가벼운 옷차림에 따뜻한 코타츠 안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의 민망함이자, 한기가 배어드는 바람 안에서 몸을 움직여 본 경험으로 표현하는 작은 공감이다.  그러나 나는 공감이라는 단어를 자판으로 만들어가며 민망함이 좀 더 부풀어 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알량한 나의 텃밭은 저 농부들처럼, 일거리를 만들자면 지금이라도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호미를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한겨울에도 푸르른 밭의 섬에서, 작물대신 낮고 푸르게 땅을 뒤덮은 잡초들을 거둬내고 지금이라도 완두콩이나 양파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노동은 선택이 가능하다.  저들처럼 눈비에 쫓겨 서둘러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못해 강요되는 노동을 내가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저들의 노동으로 인해, 나의 입은 자주 즐겁고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다.  대신 나는 자연을 거스르는 버거움을 안고 출근해 인간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그 안에서 노동한다.  인간은 이렇게 거미줄처럼 얽히고 이어져 있어, 나는 저들이 어떤 마음으로 노동하는가 와는 상관없이, 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텃밭과 마당에 있는 나무들을 정리했다.  엇갈리며 뻗는 가지와 웃자란 가지들을 과감히 잘라주었다.  코로나19 판데믹 상태로 집 밖을 쉽게 나가지 못하니, 보이는 것은 마당의 누렇게 마른 잔디 사이로 초록으로 퍼지는 잡초들이었다.  골갱이를 들고 잡초들을 하나 하나 뽑아 내었다.  바람이 없는 날이어서, 이전에 미리 뽑아 쌓아둔 뒤뜰의 고추 가지 콩 줄기들에 불을 붙였다.  뜨겁게 달아 오르더니 이내 사그라들어 바닥의 평편한 재로 남겨졌다.  춥다는 이번 겨울엔 손을 좀 쉬고 대신 글을 더 써보자 다짐했는데, 검진으로 겨울의 한 달이 바쁘게 지나갔고, 생각보다 글은 정리되지 않는다.  반려견 녀석과 가끔씩 나가는 산책길에는 완두싹들이 가지런히 심긴 모습들이 보였다.  완두라도 심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작정하고 게을러지자 다짐했다.  선택이 가능한 노동임에도, 마음이 편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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