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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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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an 07. 2021

텃밭일기 #58, 20210107

  새벽 일찍 집을 나서 차를 몰았다.  올림픽 대로에 올라 동쪽으로 달려 팔당댐을 지나 광주로 들어서 남한강쪽 팔당호를 끼고 달렸다.  토마토 농장과 작은 계곡 두 어 곳을 지나 귀여리에 도착했다.  팔당호로 계곡물이 흘러드는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차를 세우면, 마을을 끼고 넓은 텃밭이 있었다.  그 중 한 구석에 내가 관리하는 텃밭이 있었다.  차로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거리를 한 달음에 달려왔다.  텃밭에는 고추 토마토 쌈채소 등등이 잡초들과 뒤섞여 엉망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가슴 속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으로 편안하게 내려 앉았다.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텃밭은 내 가슴을 쾌적하게 환기시켰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공의 생활과 제대로 숨 쉴 틈을 찾지 못했던 서울생활에, 나는 압착기에 눌리듯 여유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정해진 과정이었기에 견디고 버텼고, 견디고 버티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시기였다.  지그시 누르고 있던 어두운 마음은 때때로 요동치며 튀어나오려 했다.  절제가 점점 쉽지 않았던 어느 찰나에, 나는 귀여리의 누런 땅을 만났다.  물이 흐르고, 산이 있는 그 마을에서 들이쉬고 내쉰 내 숨은 깊었고 한결 가벼웠다.  나는 그렇게 쉴만한 물가, 내려놓을 만한 흙을 얻었다.  나의 텃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귀여리, 광명, 부천의 자투리 땅에 텃밭을 일구다가 우연히 제주에 내려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에서 살림을 수습한 뒤 먼저 챙긴 것도 텃밭이었다.  아파트 생활이었기에 텃밭을 운영하는 단체를 알아보거나, 땅을 가진 지인의 배려로 한귀퉁이에 자리를 얻어 해마다 이어갔다.  그러다 마당이 딸린 집이 생겼고, 마당 한 켠의 15평 남짓한 땅을 구획을 지어 고정된 텃밭자리로 만들었다.  불안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다스리는 공간이었던 텃밭은 이제 작은 놀이터, 또는 이전보다는 소소해진 답답한 마음을 몸을 놀려 풀어내는 해소의 공간이 되었다.  나에게 텃밭은 농사공부나 적절한 소출을 고민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저 감정과 마음을 내려놓는 공간이었다.  그러니, 나의 게으름에는 여유가 있고 이유가 있는 셈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 텃밭을 선택한 일은, 반은 잘 한 일이지만 반은 버거운 선택이 되었다.  우연히 시작한 삶의 한 방식은 시간투자를 강요당하고 거주의 방식을 규정짓게 했다.  정신적 노동이 주는 스트레스를 작은 육체노동으로 해소하는 방식은 나를 건강하게 하지만, 몸은 어쩔 수 없이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는 삶이 되었다.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을 써서 밭을 일구는 일은, 빠듯한 진료시간 외의 여유를 잡아먹는 일이라 나는 분주할 수 밖에 없었다.  텃밭 작업을 하느라 팔다리에는 긁힌 상처가 나고 풀모기떼에 벌겋게 부어오른다.  허리는 뻐근해지고 무릎과 발목은 접질려 소소한 통증을 느낀다.  진료실에 앉아 밭에서 일하다 나와 같은 증상으로 마주앉은 환자를 바라보면, 작은 동질감과 병원에 온 이유를 적잖이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상담하고 치료받고 싶은 의사가 깔끔해 보이지 않고 자신과 같은 상처와 증상을 가지고 있다면, 환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 지 사뭇 걱정되기도 한다.  


  개원을 생각하는 의사들의 삶의 수순이란 대부분 비슷하다.  먼저 의원을 차리고 개원빚을 갚아나가면서 본인이 살아갈 집이나 살림을 하나씩 소유해 나간다.  의료업무와 의원운영이라는 꽤 진득한 덫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는 암울함이 있긴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합리적인 수순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수순에서 한참을 벗어난 삶을 살았다.  현실보다는 이상이나 열망에 취해 마당있는 집을 먼저 선택했고, 텃밭을 만들었다.  현실에 쏟아부어야 할 노력과 관심을 당장의 나의 마음평온에 투자했고, 집 관리와 마당에 에너지를 부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온전한 개원을 생각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떻게든 개원을 해 보자 하는 찰나에 코로나19 사태에 휘말렸다.  버티는 것 만이 유일한 상황에서 나는 다른 의사들이 보기에는 조금 난감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텃밭때문에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계산에 서툴고 관심과 마음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에, 흐름대로 선택한 결과이다.  누구나 온전히 만족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는 진리를 감안하면, 나는 이 섬에서 행복하다.  현실적으로는 동일선상에서 출발한 다른 이들보다 많이 뒤쳐져 있다 하더라도, 나는 내 삶의 방식과 모습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내가 꾸려온 삶의 의지 한 켠에는 텃밭이 있었다.  내가 버텨왔던 이유들 중 작은 하나였고, 버거움이 줄어도 텃밭을 바라보는 위안은 작아지지 않아 꾸준히 발을 들이고 충만을 얻게 되는 여전한 공간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몸도 서서히 노화를 겪어간다.  이제는 텃밭에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면 허리가 뻐근해서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난다.  잠시 어기적 걸어야 바른 걸음걸이로 돌아온다.  아픈 오른무릎은 점점 그 증상이 오르고, 이랑이나 돌부리에 살짝 접질리는 발목도 시원치는 않다.  개원도 그렇다.  좀 더 나이가 적을 때 해야 고생을 덜한다는 충고를 수없이 듣고 있다.  현실로 만들어놓은 이상과 이상으로 주저하는 현실 사이에서, 감가상각된 몸뚱아리와 점점 아둔해지는 판단력으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  춥고 흐린하늘에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친다.  오랜만에 땅 위가 하얗게 변한 창 밖을 바라본다.  대파를 거두던 농부도 밭에 남은 대파를 어찌하지 못하고 쉬어야 하는 날이다.  공터 잡초덤불 사이로는 바람에 신이 난 참새떼와 산비둘기만 남아 있다.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날에, 나는 오후 출근을 걱정하며 엄연한 현실과 기울어가는 몸뚱아리로, 겪어야 할 고민과 내려야 할 판단에 마음을 쉬지 못한다.  10년 이상 텃밭을 일구며 이런 날은 쉬어야 함을 자연히 알게 된 것이 잘된 일이라면, 불어닥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고민을 쉬지 못하게 된 것은 버거움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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