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수확철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 마당엔 귤나무가 두 그루 서 있다. 잎은 여전히 진초록이지만, 몇 개 달리지 않은 귤은 점점 매서워지는 북서풍에 노랗게 변해갔다. 노랗게 익은 귤을 따야겠구나 생각이 들면, 한 해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든다. 귤을 따면 겨울이 오겠지 하는 생각은 사람만 하는 생각은 아닌 듯하다. 노랗게 익은 귤을 먹고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마당에 자주 드나드는 직박구리들과 까치들도 하는 듯하다. 녀석들은 어떤 귤이 가장 잘 익어 맛있는지 골라낼 줄 아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귤을 따야지 하는 생각엔 겨울뿐만 아니라, 그 녀석들이 부리로 쪼아놓기 전에 어서 따야겠다 하는 경쟁심까지도 붙는다.
5월 초중순, 늦은 밤 시간에 서귀포 어느 바닷가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파도소리도 부드러운데, 그 위를 흐르는 밤공기엔 짙은 귤꽃 향기가 배어 있었다. 라일락보다도 진하고 달콤함이 좀 더 배인 향기였다. 주변엔 귤밭이 없었는데도, 귤꽃은 자신의 존재를 이 섬을 흐르는 공기 안에 짙게 배어들여 놓았다. 5월의 밤공기가 좋아서, 술 한 잔 한 날에는 집 마당에 의자를 놓고 잠시 앉아있곤 했다. 그때도 여지없이 밤공기에 배인 귤꽃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모질었던 북서 바람이 지나가고 바다의 파도도 점점 잔잔해지는 시기, 귤꽃 향기는 한 해의 무언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북서 바람이 찾아오며 파도가 거칠어지는 11월 말의 시기의 노란 귤은, 한 해가 마무리되었다는 또 다른 신호이다.
한기 섞인 바람이 몰아치는 2월에 입도한 우리에게 귤은 고마움과 안심이었다. 살림이 아직 정리되지도 않았고, 밤이면 바닷바람이 집을 관통하는 듯 아파트 꼭대기층은 춥기만 했다. 보일러는 냉랭해서 옷을 껴입고 있지 않으면 안 될 때, 4살 아들은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검은 비닐봉지 안의 귤을 한자리에서 10개 가까이 혼자서 까먹고 있었다. 손이 노랗게 물들고 입 언저리에는 과즙이 묻어 진득해졌다. 추우니 콧물도 조금 흘리며 맛있다고 웃는데, 나는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도를 느꼈다. 연고 없이 무작정 들어온 이 섬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귤을 쥐고 웃는 아이의 모습에 한없이 줄어드는 것이었다. 아이는 이 섬에서 무척 잘 자라주었고, 때마다 나오는 갖가지 귤들을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어느 햇살 좋은 늦가을 오후에, 같은 반 또래 여자아이와 함께 귤밭에서 귤을 따고 먹으며 나름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귤 철이 되면 진료실 풍경도 변한다. 곧 유행할 독감 예방접종과 감기환자들과 이곳저곳이 아파 물리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던 병원에는 귤 수확이 시작되면서 거의 자취를 감춘다. 병원은 조금 한산해지고, 사람들이 노랗게 익은 귤을 따기 시작할 때, 원장님들의 얼굴도 노래진다. 올해는 일손이 부족해서 육지에서 인력을 불러들이는 정도라니, 분주함에 몸의 통증은 웬만하면 참아야 할 정도이다. 그러니, 귤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이유도 조금 독특하다. 귤 작업 직전의 사람들은 ‘이제 곧 귤을 따야 하니 미리 몸을 든든하게 하려고’ 영양수액을 찾는다. 귤 작업이 한창 진행될 때, 어둑해진 늦은 시간에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귤 따느라 생긴 몸살과 기침으로 약과 주사를 찾는다. 이제 귤 작업이 마무리되면, 지치고 아픈 표정으로 물리치료를 원하고 감기약과 영양수액을 찾을 것이다. 따뜻한 방에서 어디에나 보이는 귤 하나 집고 껍질을 까먹는 일은 참 쉬운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귤 작업은 사람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귤을 따는 작업은 나름의 기술을 요한다. 나 역시 몇 번 작업에 끼어든 적이 있는데, 귤을 잡고 주둥이가 짧은 전용 전지가위로 꼭지를 잘라 딴 다음, 귤에 남은 꼭지를 바짝 그리고 편편하게 잘라낸다. 가위나 손으로 껍질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꼭지를 바짝 자르는 이유도, 컨테이너라 불리는 상자에 담았을 때, 날카롭거나 길게 남은 꼭지가 다른 귤의 껍질에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귤껍질은 상처가 나면 금방 짓무르거나 곰팡이가 슬게 된다. 그래서, 귤 수학 철이 되면 평소에 거칠게만 달리던 트럭들도 귤 컨테이너를 실으면 아주 느리고 얌전하게 달린다. 충격으로 귤이 상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제주에 살면서 좋은 점 하나는 귤을 사 먹을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파치라 부르는 상품성 없는 귤들을 저마다 나누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중 몇몇은 집안에서 귤밭을 가지고 있고, 수확철이 되면 출하하고 남은 상품성 없는 귤들을 지인들과 나눈다. 이제는 감귤류로 불리는 각각의 귤들이 일 년 내내 시기마다 출하되어서 운이 좋다면 때마다 다양한 파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11월 말의 노지감귤을 수확할 때 대부분의 파치가 생기는데, 이때엔 여기저기에서 수북하게 쌓인 노란 귤들을 볼 수 있다. 병원 환자 대기실 중앙 테이블에도 어디선가 들어온 귤 파치가 접시에 보기 좋게 올려져 있고, 늦은 저녁 수련하러 들른 검도장 입구 한쪽에도 컨테이너 상자 안에 노란 귤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한 끼 해결하고 나오는 어느 식당 입구에도 그렇게 귤은 쌓여있고, 우리 집 부엌에도 교회 다녀온 아내가 가져오고 귤밭을 운영한다는 앞집 아저씨가 늦은 밤 건넨 귤 한 상자가 얌전하게 놓여있다. 추위가 점점 깊어지는 늦가을 이 시기에 이 섬의 귤 인심은 함께 두터워지는 것이다.
한 때는 귤 팔아 자식을 대학 보냈다고 해서 대학나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넘쳐나는 과일 먹거리에 밀려 감귤의 가치도 점점 무색해지고 있다. 귤 수확철이라고 넘쳐나는 귤에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귤 한 상자에 매겨진 가격을 보면 농사 비와 인건비를 맞출 수 있을까 싶어 진다. 귤농사로 전성기를 보낸 섬 풍경엔 그 끝을 어떻게든 붙들어보려는 노력이 보인다. 농협 주변 현수막에는 간벌을 권유하고 돌연변이 품종을 찾는다는 홍보가 일 년 내내 붙어 있다. 그래도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을 돌보며 살았을 귤나무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며 농사를 이어간다. 어쩌면 그런 애착 때문에 이 섬에 사는 내가 누군가의 진득한 노고가 배인 파치로 한겨울을 녹록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 곳에 오래 살다 보면 그곳의 어떤 것도 통상의 이미지대로만 받아들이며 감정을 향유할 수만은 없게 된다. 제주에서 귤이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그러니, 나에게 귤은 시작의 고마움과 안심이었고, 삶의 은은한 향기이자 시간의 정취이며, 누군가의 고난함에 대한 존중과 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