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무늬오징어를 낚는다.
해 질 녘의 퇴근시간이다. 차에는 낚시 장비들을 미리 챙겨두었다. 차를 몰아 염두에 두었던 포인트로 갔다. 방파제나 갯바위, 이 곳은 섬이라 마음만 먹는다면 사면 어디든 낚시 포인트를 찾아갈 수 있다. 점점 낮아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장비를 챙겨 들고 갯바위 포인트에 섰다. 심호흡 한 번 하면서 물때와 포인트 분위기를 대략 탐색했다. 파도는 비교적 잔잔했고 바람은 약하게 불고 있었다. 장비를 한 번 더 체크한 다음에 릴을 풀고 대를 힘껏 휘둘러 에기를 던졌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낚시가 에깅 낚시였다. 새우 모양으로 생긴, 에기라 불리는 가짜 미끼로 대상어종을 유인하는 루어낚시의 한 장르이다. 대상어는 주로 흰오징어가 정식 명칭인 무늬오징어이고, 시즌에는 한치도 노릴 수 있다. 때로는 문어가 올라오기도 한다. 포인트에 던져서 충분히 가라앉힌 다음, 대를 갑자기 휙휙 세우면서 물속에서 새우가 튀어 오르는 모습을 연출한다. 다시 살살 감으면서 헤엄치며 가라앉는 모습을 연출 한 뒤에 다시 대를 휙 세워 튀어 오르게 하는 모습을 반복한다.
무늬오징어는 주로 해 질 녘부터 시작해서 밤에 잡는다. 그래서, 나는 물때와 파도를 고려해서 시간이 잘 맞아주는 날이 되면 퇴근 후 포인트로 달려간다. 자주 가서 익숙한 작은 방파제 위도 좋고, 낚시를 좋아하는 지인이 알려준 어느 갯바위 포인트도 좋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며 멀리 수평선의 갈칫배 불빛이 선명해진다. 그 불빛에 바다가 나를 향하여 낮고 길게 일렁이면 내 마음에도 평온함이 찾아온다. 길다면 길었던 하루와 얼마간의 시간에 쌓인 복잡함이 순간 존재를 잃고 머리와 마음이 가볍게 침잠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조과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 와서 낚시가 취미로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자, 낚시하는 시간은 조과 이외에도 다른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무념이기도 했고, 어떨 때엔 머릿속 수많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멀리 어두운 수평선에 줄지어 선 배들의 불빛과 그 빛이 난반사되면서 비치는 하늘의 나직한 구름은 내가 들어선 정적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정적에 차분하고 규칙적인 균열을 만드는 것은 내 발아래 갯바위에 밀려들다 물러가는 작은 파도의 숨소리다. 반복되는 균열은 내가 들어선 공간 안에서 서서히 익숙해지며 조화로운 풍경으로 변해간다. 나직한 내 숨이 조금만 높아져도 나는 느끼고 안도한다. 내가 가라앉고 있구나.. 어느 누구도 없이 나는 홀로, 공간 안에서 존재 없이 충만해진다.
에기가 가라앉도록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대를 휙 챔질 하듯 올렸다. 순간 무언가가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든다 싶더니 릴에서 찌이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대가 앞으로 휠 듯 요동치며 무언가가 끌고 가는 것을 감지했다. 가볍게 대를 들고 긴장하며 싸움을 시작했다. 에기를 물고 도망가던 녀석은 어느 순간부터 힘을 잃고 순순히 끌려오기 시작했다. 묵직하게 감기는 것이 크기가 꽤 되는 녀석인 듯했다. 끌려오던 녀석은 한두 번 도망가기를 반복하다 이내 어둔 바다를 밝힌 내 전등 불빛 안으로 들어온다. 에기에 다리가 걸린 채 수면 위로 모습을 살짝 드러낸 녀석은 출수공으로 물을 한 번 찍 쏘고는 내 발 앞까지 끌려온다. 줄을 팽팽하게 유지하여 녀석의 다리와 머리가 수면 위에 있도록 한 뒤에, 갸프를 펴서 몸통을 걸어 물 위로 올린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딱한 바닥에 올려진 녀석은 긴장과 화가 뒤섞인 채로 옆날개를 부산하게 움직이고 몸 색깔을 울긋불긋하게 쉼 없이 바꾸어댔다. 그러다가 마지막 힘을 다하는 것처럼 몸통을 쥐어짜며 먹물을 바닥에 쫘악 쏘았다. 오징어에 걸려 있던 갸프 날과 에기를 빼고 가져온 미끼통에 넣는다. 바닥에는 쏘아진 검은 먹물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무늬오징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전리품이자, 그 포인트의 조황을 대략 판단하는 흔적이 된다. 바닥에 쏘아진 먹물 흔적이 많다면, 이 곳은 무늬오징어가 꽤 잘 잡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는 오징어를 좋아한다. 내가 낚시로 잡아오는 여러 어종 중에서 무늬오징어나 문어 같은 두족류에만 환한 미소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두족류는 손질해서 가져가면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고, 맛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과가 없는 날이면 없는 대로 깔끔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 좋다. 조과가 있는 날이면 나는 철수하면서 바닷물에 미리 오징어를 손질한 뒤에 깨끗한 비닐팩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온다. 귀가 시간이 늦지 않는 날이면 그대로 한 마리 썰어서 회로도 먹지만, 대부분은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특정한 날에 튀김으로 먹는다. 무늬오징어 튀김은 살이 두텁고 쫀득한 식감에 살짝 단맛이 깃든 담백함이 있다. 그래서 아내나 초대받아 온 손님들은 내가 만든 무늬오징어 튀김을 정말 좋아한다. 올해 초가을에는 무늬오징어 조과가 무척 좋았었다. 크기도 좋아서, 종종 1킬로가 넘는 녀석들이 올라오곤 했다. 그런 녀석들은 손질해서 데쳐먹어도 좋다. 나는 잡는대로 차곡하게 냉동실에 보관해두었다가 친구들이나 손님들이 오는 때에 꺼내어 튀김으로 내었다. 일상의 소소한 의미가 된 낚시이자, 조과가 있으면 그것 그대로 귀한 먹거리가 되는 취미를 나는 즐기고 애정한다. 번잡한 일상에서 잠깐의 시간으로 낚시라는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제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내가 지금 머무는 시공간을 사랑하며 감사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