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0.

나는 한 때 제주섬에서의 외과의사였다.

by 전영웅

종합병원의 외과의사로 산다는 것은 가슴에 묵직한 돌덩어리를 하나 얹어놓고 사는 일과 다름없다. 외과의사가 환자와 마주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수술을 염두에 둔 만남이다. 그리고, 차분하게 오랜 시간 상태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계획된 수술도 있지만,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외상환자와 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빠른 판단과 실행을 요하는 응급수술도 감당해야 한다. 수술을 마치고 나면, 외과의사는 다시 돌 하나를 가슴에 집어넣는다. 자신이 수술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며, 회복까지의 경과와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외과의사의 삶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려면, 자신의 가슴에 담긴 돌덩어리의 무게에 익숙해지고 친해지는 수밖에 없다.

제주에 입도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에게 모든 것은 호기심과 즐거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입도와 동시에 점점 쌓여가는 시간은 내 가슴에 새롭게 담긴 돌덩어리에 적응해야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것은 육지에 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무게의 존재였다. 외과라고 하지만, 외과의사는 나 혼자였다. 이제까지 근무했던 병원에서는 여러 명의 외과의사들이 함께 일하고 공부했다. 환자의 상태와 수술과 회복에 있어 함께 상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주에 내려와 근무를 시작한 병원에서는 내가 담당한 환자의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혼자가 된 외과의사는 외롭다. 이제껏 함께 하며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을 이제는 나 혼자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 가슴속에 담긴 돌덩어리의 무게는 이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돌덩어리는 다양한 모습과 무게로 나를 종종 짓눌렀다. 환자를 대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데, 과정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서 수술이 필요한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수술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도, 수술 후 환자의 회복과 합병증 발생에 대한 고민도 전부 나 혼자의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술을 결정하는 일도 때로는 내 판단이 옳았는지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수술을 하고 나서도, 과정에서 내가 실수하거나 빠뜨린 것은 없는지 자꾸 복기하게 되었다. 수술을 마친 환자의 회복 중에 발생하는 소소한 합병증은 스스로 감당하고 치료하면 되었지만, 가끔은 판단이 서지 않아 할 수 없이 좀 더 규모가 큰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보내야 했던 일도 있었다. 크고 작은 합병증으로 입원이나 치료기간이 길어지면, 환자나 보호자가 호소하는 불평과 하소연을 나는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있을 수 있는 가끔의 경우에도 내 가슴속 돌덩어리는 이전보다 좀 더 버겁고 묵직하게 짓누르는 것이었다. 별다른 문제없이 여러 환자들이 수술받고 회복하여 퇴원하다가도, 한두 명의 환자들에 이런 스트레스를 겪다 보면 입술 한쪽은 여지없이 부르텄고 속은 거친 사포로 문질러대듯 쓰려오곤 했다.

내가 제일 버거웠던 상황은 수술 후 합병증 등으로 예정보다 치료와 입원일이 길어지며 환자나 보호자들의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였다. 수술이나 치료 후 생기는 문제들은 교과서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것들이라 원칙대로 이끌어나가면 의학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자나 보호자들은 예정보다 더 늦게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기에 그들의 부담은 조금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생길 수 있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나를 대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불평과 부담은 그대로 가슴속 돌덩어리의 묵직함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고민에 빠졌다. 혹시 수술 과정에서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는지, 선택한 약제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 환자를 치료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어느 부분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실수가 있었는지 혼자만의 무한한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늦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겹치면, 나는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부채감까지 안아버렸다. 그리고, 그런 부채감이 앞으로의 치료에 혼선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즐거움 가득한 환상만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 그 자체인데, 외과의사로서 홀로 역할을 해야 함은 현실에 부담을 한몫 얹어 제대로 겪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나는 한동안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드레싱이 필요한 환자와 전날 새벽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수술은 피할 수 있었던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갈비뼈 다발골절로 유동흉이 생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며 나는 ‘잘 하고 있는가’ 깊은 고민에 빠진 채 살짝 따가웠던 오전의 햇살을 얼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은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고민이자 경험이 되어버렸다. 한동안 나는 이 섬에서 외과의사로서 살아왔고, 지속적으로 그러하길 소망했다. 지금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외과의사의 본연과 조금 다른 길로 들어섰지만, 내가 생각했던 외과의사의 정체성만은 지금의 길에서 온전히 유지하고 녹아들게 하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 섬에서의 삶은 그렇게 무게를 가진다는 것, 내 가슴속에 있던 돌덩어리의 일부는 남겨두고 가끔씩 그것이 짓눌렀던 흔적들을 상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흔적들을 되돌아보다가도 종종 남겨진 돌덩어리가 살짝 몸을 뒤틀면 그것은 아쉬움이 되어 나를 자극한다. 여전한 현실과 지키고 싶은 정체성이 내 뒤통수에 종종 찬물을 뿌린다. 아쉬움은 가끔씩의 미련으로 나를 주눅 들게 만든다. 묵직했던 과거의 고민을 현재에서 되돌아보며, 이 섬에서의 삶 역시 녹록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나의 외과의사로서의 시절이었던지 아니면 섬사람으로서의 삶을 택했던 현재까지의 시간이었던지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감당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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