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확실히 이질적인 날들이었다. 몸에 열이 많아서 10월 중순까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나이긴 했다. 하지만 11월 초까지 그러고 있는 나를 문득 보면서,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가 정말 달라졌구나 싶었다. 텃밭의 고추와 가지도 늦도록 잘 버텨주었다. 더 이상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맺지도 않았다. 그러나, 초록과 자주빛으로 버티는 녀석들의 안간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지막의 작은 기대같은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러다 비가 오더니 갑자기 추워졌다. 반팔 티셔츠에 얇은 점퍼만 걸친 채 나선 저녁 길거리는 갑자기 힘들었다. 텃밭도 마무리할 때가 되었구나 싶어졌다. 마당의 잔디가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여름이라 하기엔 추웠고 가을이라 하기엔 더웠다. 종일 실내에서만 있어 잘 모르지만, 목요일 오후의 휴진과 주말의 여유에 느끼는 낮과 저녁은 그랬다. 이상해져버린 기온에도 마당의 나무들은 절기를 잘 따라왔다. 몇 개 달리지 않은 대추지만 굵고 붉게 잘 익었다. 라이의 집 뒤로 작게 자란 구아바 나무에서도 열매가 작게 세 개 정도 열리더니 노랗게 익었다. 올리브나무는 올해 풍년이다. 초록과 검은 색의 올리브들이 이파리 사이사이로 무성했다. 바람에 마당으로 떨어지는 양도 상당했다. 아내는 올리브를 거두어 기름을 짜보자 하지만, 게으름이 쉽게 동의를 못하고 있다.
고추와 가지들을 죄다 뽑았다. 지주대부터 뽑아 집 뒤켠에 모아 정리해두고 내년을 기약했다. 기댈 곳을 잃은 녀석들을 손으로 잡고 허리에 힘을 주어 뽑아냈다. 아직은 아니라는 듯, 뿌리가 흙을 잔뜩 거머쥔 채 올라왔다. 하지만 텃밭을 관리하는 나에겐 지금이 때였다. 잡아올린 농어를 놓아주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야 할 땐, 칼을 꺼내 바로 아가미 아래 목에 밀어넣고 커다란 혈관을 끊었다. 애써 무심한 마음으로 말이다. 애써 무심함을 유지한 채, 하나하나 줄기를 잡고 뽑아내었다. 오랜만에 마당에 나와 일하는 아빠를 보니 라이가 옆에서 신이 나 있었다. 뽑아내야 하는 약간의 아린 마음을 녀석은 천진난만한 표정과 숨소리로 반기니, 내가 굳이 마음 무거울 필요는 없겠다는 위안을 얻는다. 뽑은 녀석들을 집 뒤뜰의 구석에 모아 쌓았다. 찬바람에 시들고 마르면, 불을 붙일 것이다.
뽑기 전 매달린 고추와 가지를 거두었다. 추운 날에 초록과 진자주빛이 더욱 선명했다. 더 크지도 많아지지도 않은 채 아담하게 매달린 것들을 모아 담으니 올해 텃밭이 정말 마무리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둔 고추를 식탁에서 장에 찍어 먹었다. 아삭한 생기와 질긴 식감이 뒤섞인 그 맛을 이제는 내년에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반복이지만 때마다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기도 하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들..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들에서, 인간은 겸손과 한계를 느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몸부림과, 종교를 통한 신념으로 인간은 언제나 멍청한 짓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그 결과들 중의 하나가 내가 이질적으로 느끼는 공기의 온도일 것이다.
이질감 속에서 올해의 고추는 병충해에 시달려야 했고, 맛도 매워져 쉽게 즐길 수 없었다. 가지도 전보다 표면이 많이 슬었다. 바질은 너무 쉽게 꽃대가 올라와버렸다. 편하고자 덮은 멀칭은 오히려 무성해지는 잡초들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지만, 조금은 사라진 그럴 여유와 뱃살처럼 불어버린 게으름은 전기 예초기에 의존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렇게 버티고 나니 이제 11월의 중순이고, 날은 추워졌다. 텃밭은 정리되고 이제 쪽파와 무가 월동을 한다. 손을 놓아도 되는 날이 시작되었다. 봄을 준비하는 캐모마일 새싹들이 무성하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 사이사이 먼저 줄기를 올린 쪽파들이 위태롭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제 손을 놓고 잠시 다른 일들에 신경을 좀 더 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