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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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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Dec 22. 2024

2024년의 텃밭일기 : 1222

  어수선한 시국에 속 시끄러운 나날을 보냈다.  난데없는 계엄에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경험했다.  운동을 다녀와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맞닥뜨린 계엄에 당장 학원에 가 있는 아이를 걱정했다.  얼른 시내로 달려가 아이를 픽업했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부터 들었다.  다행히 수습은 되었고 탄핵정국으로 흘렀지만, 자본주의 사회답게 경제지표로 나타나는 나라의 상태는 점점 불안하고 나빠보였다.  분위기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병원진료도, 기본적인 진료 외에 경영면에서 뭔가가 잘 돌아간다는 느낌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탄핵정국이 계속되고 경제지표가 점점 안좋아지면, 나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이 올 것이다.  한 사람 잘못 세워서 이렇게까지 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만든 이 정치적 혼란에 사람들의 삶이 근간부터 뒤흔들린다는 사실에 화가 많이 났다.  무식하고 고집세고 하는 것도 해낸 것도 없는 그간의 임기에, 결국은 이렇게까지 현실의 불안으로 사람들을 몰아붙였다.  앞으로는 더욱 모를 일이 되어버렸다.  잘 버텨내는 수 밖에..  그런데, 몇몇 누군가의 잘못으로 어째서 모두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거둘 수가 없다.  화가 나지만, 이게 직조된 시스템과 그 안의 구성원의 문제라는 점을 잘 알기에, 화를 표출할 수도 없다. 

  어수선한 시국에 날도 더욱 추워지는 느낌이다.  육지엔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렸고, 다시 추워지며 눈이 왔다고 한다.  제주는 얼음은 없지만 한기서린 바람과 공기에 몸을 움츠리는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추위는 도둑처럼 찾아왔다.  점점 추워졌지만 그래도 온화해서, 그 온화함이 마치 오래도록 지속될 것 처럼 마당에 머물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를 한기서린 바람이 채웠을 때, 고추와 가지는 검게 타고 말라버렸다.  바질은 이미 줄기만 남은 채 검게 마른 채였다.  정리의 시간이었다.  고추와 가지를 뽑아내고, 틀밭을 덮은 멀칭을 거두었다.  멀칭비닐을 모아 버릴 곳에 두고, 고정핀은 모아서 다시 창고에 두었다.  가장 긴 틀밭 두 개가 맨흙을 드러내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왠지 고요했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나 역시 나름 분주했다.  고추와 가지를 거두고 멀칭까지 드러내 나란한 흙더미를 보고 있자니, 세상과는 다르게 텃밭은 고요했다.  이래서 텃밭을 하고 땅을 일구나 싶었다.  쉽지 않은게 농사이며 고되고 분주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흙을 마주한다는 건 정적인 심신의 위치에 보다 가까운 일이다.  흙을 바라보는 고요에 몸이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나는 텃밭의 고요 속에서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일을 마치면 다시 세상의 번잡함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멈추었던 몸을 다시 움직였다.  바질도 그렇게, 형체만 남은 줄기를 뽑고 멀칭도 거두었다. 

  한기서린 바람에 풀들은 누웠다.  풀들이 바람을 피하는 방법, 추위 속에서도 생존을 도모하는 방법이었다.  루꼴라는 짙푸른 줄기와 이파리를 바닥에 붙이고 넓게 퍼졌다.  고수도 바람을 탄 자리는 검게 변했고, 이제 막 나온 이파리들은 자세를 낮추어 옆으로 자랐다.  바람과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월동채소들만 자라던 모습대로 덩치만 줄여서 모양을 유지했다.  가을온기에 여리게 올라오던 쪽파 줄기도 몇 개가 바람에 꺾이더니 점점 줄기를 두텁고 진한 색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양파도, 길어지던 줄기가 바람에 꺾이더니 점점 색이 진해지며 겨울을 준비했다.  아스파라거스는 노랗게 말라갔고, 방치된 양배추는 속이 뭉칠 사이도 없이 함께 겨울을 나야만 하는 벌레들의 귀한 양식이 되어버렸다.  드러난 틀밭의 맨흙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어떤 싹도 올라오지 않았다.  드러난 흙이라면 잡초든 우연히 떨어진 작물의 씨앗이든 무섭도록 싹이 올라왔다.  하지만, 씨앗들도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었다.  조용히 겨울을 나면, 단련된 경험으로 좀 더 튼튼한 싹을 피울 것이라는 유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와는 상관없이 인간은 필요에 따라 올라온 싹을 처분하겠지만, 인간의 세상과는 달리 순환과 반복의 제 갈길을 유지하는 텃밭의 생태계는 지금, 이제 막 겨울을 맞이한 때의 기억과 경험대로 자신들의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올해는 무가 잘 되었다.  둥치가 만족스럽게 굵어져서 뭐든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미 몇 개는 아내가 무 생채를 무쳐서 반찬으로 만들었다.  이빨 빠지듯 곳곳에 무를 뽑은 자리가 생겼는데, 그 모습에 기분이 괜시리 좋았다.  겨울 시즌이 되면 매번 숙제처럼 하는 일이 농어낚시다.  올해도 농어를 몇 마리 잡았다.  해질녘과 어둔 밤 파도치는 갯바위에서 사이즈가 괜찮은 농어와 넙치농어를 낚았다.  게임피쉬로 손맛을 본 다음 놓아주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엔 그 자리에서 피를 빼고 손질해서 집으로 가져온다.  포를 떠서 살은 불려서 청주를 바른 다시마에 감싸 숙성을 시키고, 남은 머리와 등뼈 그리고 포뜨고 남은 부산물들을 모아 지리나 매운탕을 끓인다.  여기에 꼭 넣는 것이 텃밭에서 키운 무다.  텃밭에서 바로 뽑아 이파리를 뜯고 흙을 털어낸 후, 두껍게 조각내어 농어와 함께 끓인다. 오래도록 뭉근하게 끓이면 국물이 뽀얗게 변한다.  간단하게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청양고추와 대파 조금만 넣어 내면 칼칼하고 진하고 시원한 지리탕이 되는 것.  내가 하는 요리 중 아들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고, 여기에 고추가루를 넣어 빨갛게 끓여내면 장인장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매운탕이 된다.  올해엔 큼직한 두 마리를 잡아 바로 손질한 후, 가족과 같이 고생하고 도움을 많이 받았던 친구들에게 접대했다.  살은 다시마에 숙성시키고, 들통에 큼직한 머리와 등뼈등을 텃밭에서 뽑은 무와 함께 넣고 뭉근하게 끓였다.  술과 함께 늦게까지 입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나는 겨울 시즌의 숙제 하나를 마쳤다.  욕심을 내 보자면, 한 마리 정도 더 잡아서 이제 고3이 되는 아들녀석에게 지리탕을 끓여주며 응원을 전하고 싶다. 

  날이 흐리고 춥다.  그래도 여긴 남쪽 섬 제주라서, 텃밭은 마냥 황량하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먹을 것들이 자란다.  봄이면 쪽파와 양파를 거둘 것이고, 당장엔 루꼴라와 고수를 거둬 먹을 수 있다.  일상을 소소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과 환경은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소소함을 무의식 속에서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듯 하다.  2024년의 민주주의가 어떤 형태로든 성숙되어 있는 한국에서, 난데없는 계엄선포에 일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경험한 후로는, 그 소중함을 의식 위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일상은 다시 회복되었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텃밭의 먹을 것들을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끌어올려진 소중함은, 어딘가 불안을 안고 있다.  일상이 다시 깨지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 인간의 삶은 반복과 순환의 고요인 텃밭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거리감.. 그리고, 텃밭과 일터를 오가며 일상을 붙잡고 사는 나와 다르게, 매일 그리고 때마다 거리의 집회장으로 나가는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부채의식..  역시 마음의 어수선은 피할 수 없어, 잠시 몸을 멈출 수 있었던 텃밭을, 나는 좀처럼 닮을 수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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