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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장들

첫 날 : 20250101

by 전영웅

2025년의 아침은 숙취로 시작했다. 24년의 마지막 날, 진료를 마친 나는 모두가 퇴근한 병원에 남아 직원들의 급여를 계산했다. 한 달간의 진료내용을 청구했고, 한 해 동안 쌓인 병원 자료들을 정리해서 미리 준비해 둔 수납박스에 넣었다. 박스 뚜껑에 2024 라는 숫자를 적어 창고 구석에 두고 나니, 밤 8시에 가까워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날에 방어잡이 배를 탄 부러운 친구녀석이 잡은 부시리를 손질해 먹자고 해서, 그 친구의 집에 가서 부시리와 술을 나누었다. 아담한 방에는 티비가 켜져 있었다. 뉴스가 나오는데, 제주항공 참사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뒤이어 윤석열 체포영장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한 해의 마무리가 그러했다. 부시리와 술은 좋았으나, 한 해의 마무리라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난데없는 계엄에 이어 가까스로 탄핵이 이루어졌다. 권한대행 총리까지 탄핵되고, 너무 어수선해진 정치가 경제와 우리 일상에 버겁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다 제주항공 참사가 벌어졌다. 세상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연말을, 새해를 이야기하자니 마음이 슬펐다. 일상을 이어나가는 일, 별다른 생각없이 당연하게 이어지던 일상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도 하던 일이니 일상은 여느 때와 달리 이어졌고, 서로가 엮인 일상들은 여느 때처럼 관계를 이루며 조밀하게 얽혔다. 하지만 톤은 단조로웠고, 색은 무채색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내가 술과 안주를 즐긴 건, 다음날이 쉬는 날이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일상이란 무엇이고, 삶을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고 여러 일을 겪을 때마다 이 단순한 질문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개인적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사소하게 들기도 하지만, 지난 한 달은 정말 묵직한 의문을 만들었던 듯 하다. 아무렇지 않게, 하던대로 이어가던 일상이었다. 그 일상은 난데없는 계엄으로 세상이 뒤집어지자, 나의 일상은 자칫하면 무너지고 변질될 수 있는, 여리고 약한 것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나라는 존재 역시 허약하고 구석으로 치워질 수 있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일상을 지키는 건, 아무렇지 않음 속에서도 사상과 시선을 단단하게 견지하는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약하지만, 나약함에도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노력 때문임을, 그런 노력들이 모여 견고한 힘을 형성하기 때문임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산다는 것 역시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제주항공 참사의 트라우마는 허무와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며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잠시의 휴식을 위해 여행을 다녀오다가 난데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또는 살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가 운명을 달리했다. 허무한 죽음은 도처에 깔려있다. 우리는 어느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지 알 수 없다. 허무한 죽음이 확률적으로는 적다 하더라도,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이에겐 100퍼센트의 일이다. 의학의 경우가 그렇다. 어떤 치명적인 암이 걸릴 확률은 몇 퍼센트라는 교과서적 통계가 있지만, 암에 걸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100퍼센트의 일이다. 동시에, 우리가 그 적은 확률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운명을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그저 운 좋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즐겁게, 의미를 다하여 살아가자는 제안은 옳다. 동시에, 우리는 인간이 만든 구조 안에서 존재의 의미와, 각자가 원하는 최소한의 존중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하루하루 적응과 경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낸다는 말과 충돌한다. 이 딜레마를 부지불식간에 또는 분명한 시선으로 인지하며 살아가다 문득, 아주 작은 그 확률의 경우 안으로 빨려들고 만다. 죽음을 맞이한 존재는 더 이상 산 자의 공간에 머물지 못한다. 산 자의 공간에서 부유하던 삶의 의미는 그렇게, 문득 허무하게 사라진다. 그렇다면, 아무런 보증이나 의미의 확신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산 자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거나 합리적인 방법일까? 공동체의 의미로는 커다란 슬픔과 상처가 생겼지만, 공동체 안의 각자들은 삶의 의미를 돌아볼 수 밖에 없는, 근원적인 질문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24년의 마지막 날, 일력의 마지막 장을 뜯었다. 하루하루의 문구들을 다이어리에 필사해왔다. 날이 모두 사라진 일력은 버리고, 악필이지만 필사로 가득한 다이어리는 서류를 정리한 수납박스 안에 같이 넣었다. 그리고 전성원의 책, 하루교양공부의 마지막장을 덮고 가방에 넣었다. 2년 동안, 날마다 한 꼭지씩 읽었다. 그러니, 책을 두 번 읽은 셈이다. 한 번 더 일년 동안 읽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25년의 일력과 25년에 시작해야 할 읽을거리가 필요해졌다. 숙취가 남은 25년의 첫 날에,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겸 점심으로 해장국을 사 먹었다. 그리고 차를 몰아 동네 책방에 돌아다녔다. 새해 첫 날이라 그런지 목적했던 책방은 문이 닫혀 있었다. 문 연 책방에 들러, 25년의 일력과 때마침 생각하고 있었던 하루 한 꼭지씩 읽을 수 있는 책을 구입했다. 김태권의 ‘하루 라틴어 공부’였다. 출판사를 보니 유유출판사였다. 하루교양공부도 유유출판사였는데, 아무래도 하루 시리즈로 재미를 보았나 싶었다.


화창하고 포근했던 새해 첫 날에 해안 드라이브를 하고, 그렇게 일력과 책을 구입했다. 커피 한 잔을 하고 집에 들어와 차 두대를 세차했다. 라이녀석을 데리고 산책 겸 단골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나왔다. 해가 저물었다. 마지막 날의 일몰은 진료때문에 볼 수 없었지만, 새해 첫 날의 일출은 숙취와 늦잠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보고싶은 생각조차도 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다음날 휴진일을 둔 여느때처럼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아쉬움 없는 좋은 시간으로 즐겼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이렇게 조용히 글을 쓰고 있으니, 25년 새해의 첫날은 나름 의미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 하루하루 의미를 만들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의 삶은 무엇에 의미를 두고 어떤 사상과 시선을 견지해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은, 하루하루 만드는 의미 안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것처럼 무심히 추가되었다. 나의 삶은 여일하게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삶을 구성하는 어떤 것들은, 삶의 내용을 드러나지 않게 변질시키고 있다. 그게 긍정적인 방향인지 부정적인 방향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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