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과 자부심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잃어버린 의사가, 사회에서 욕을 얻어먹을 바에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자, 그래서 의사들이 돈돈거린다고 누군가 말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예전부터 돈벌이를 생각했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저수가와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수가인상률이지만, 의료문턱이 매우 낮은 한국의 의료상황에서 이를 보상하는 건 환자수였다. 개원가는 그렇게 무수히 많은 환자를 보고, 여러 항목 중 수가가 높은 검사항목들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며, 그리고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지 않는 피부 성형 등의 분야로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왔다. 의사들이 개원을 하게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체로 개원하여 돈을 버는 방식이 힘들지만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서이다. 그리고, 돈벌이를 신경쓰는 모습은 의사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의 사람들이라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돈을 벌려는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다.
개원을 하면 우선 자부심과 사명감 같은 신념은 크게 내세우기 어렵다. 내가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하던 외과 전공이라 그런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체로, 개원을 하면 진료의 난도가 낮고 너무 많은 환자를 보게 되며, 진료의 과정에서 진료원칙이 환자의 요구에 굴복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밖에 없다. 자부심이나 사명감, 그리고 더 크게는 ‘바이탈 뽕’같은 어떤 희열은, 몇 년만에 연락이 된 친한 친구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 정도다. 지금은 의사들을 때리기로 작정한 정부의 무식한 태도에, 그런 것들이 단순한 허상이었음을 의사들 스스로 깨달았다. 그런 것들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위치의 의사들이 현실을 목도하고 자리를 빠져나오고 있지만, 개원가에서 그런 신념을 말하기엔 오래도록 뒤틀려온 의료산업의 구조와 현실이 너무 두껍게 쌓여있다.
‘환자는 의사를 믿기보다 의심하기 바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의사는 건강보험 구조와 자본주의의 속성과 규칙대로 진료를 하고 돈벌이를 했을 뿐인데 욕을 먹고 의심당하는 처지로 전락했음에는 분명 억울한 면이 존재한다. 구조적 특성으로 경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 역시 사실이다. 구조가 만들어낸 복잡한 여러 요소가 ‘의심당하는 처지’로 몰아붙인 면도 있고, 그 외 여러 개인적 사회적 요소가 뭉뚱그러져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의사가 직접적으로 ‘돈돈거린다’라고 말하기엔, 의사는 보편적으로 여전히 사회 평균보다 월등하게 많은 수익을 올리는 직종이다. 현재의 의대열풍이 단순한 사명감이나 환상 때문이 아니라는 점은 굳이 따져 말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증거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돈돈거린다’라고 말을 하는 데엔 조심함이 필요하다. 동시에, ‘의사들은 왜 욕을 먹는가’에 대한 내부적 고민이나 비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정부가 때리니까 사명감을 잃었고, 환자는 의사들을 의심하기 바쁘고, 그러니 우리는 돈이나 벌자.’라고 말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적 판단과 현상에 매몰되고, 성찰이 부족한 분석이다.
의사집단이 ‘두들겨 패면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아주 만만한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근거없는 극우의 사상에 매몰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이해가 편협한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성찰도 없다. 게다가 의사협회는 정치적 전략도 부실하고 사람들을 설득할 능력도 없이, 의료사슬구조의 소수 최상위 전문직 계급이라는 밧줄 하나만 붙잡고 버티기만 시전한다. 하나의 집단이 콩가루 성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배가 부르거나, 성찰하지 못하거나.. 한국의 의사집단은 보편적으로 사회적 성찰력이 부족하고, 이제까지 다른 이들보다 배가 부를 정도로 돈을 벌어왔다. 좀 더 많은 연결관계를 분석하고 설명해야 하겠지만, 앞서 말한 것들이,자본주의 체제와 건강보험 구조 안에서 사명감과 자부심, 그리고 바이탈 뽕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스스로의 위치를 상실하게 된 근본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개원가로 나온 나 개인이 바라보는 일차의료 영역에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낄만한 요소는 그리 넓거나 많지 않다. 그리고, 묵묵히 일함 만으로 남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만들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의료농단 사태로 더 잃어버릴 사명감도 없었고, 여전히 묵묵하게 일하며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굳이 돈돈거리지 않아도 나는 여전하게 살고 있고, 돈돈거릴 일이 있어도 가끔 발생하는 설비나 장비 문제 정도 때문이다.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세우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가치에 따라 ‘유형의 가치’인 금전적 수익 역시 중요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존재의 가치를 세우려는 노력에서 외부요인만 분석하는 건 단순한 핑계로 오인받기 쉬울 뿐이다. 노력은 내부를 먼저 들여다보거나 과거의 족적을 돌아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한국의 의사들은 그런 과정이 절대적으로 우선되어야 하는 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