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한계의 극복이 숙제로 남았다.
지난 일요일에는 도내 회장배 검도대회가 있었고, 나는 올해 정식수련을 잠시 쉬고 있지만, 같이 참석하자는 검우들의 권유로 함께 대회에 출전했다. 7월의 폭염에 출전 전 몸을 풀겠다고 4킬로 정도를 아침 일찍 뛰었고, 몸은 살짝 긴장상태에 있었다.
지난 대회 출전에서 내 몸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많이 풀려 있었고, 긴장 역시 거의 없었다. 그 덕분인지, 나는 우리 팀의 주장으로, 일대 일로 고착된 상태에서 깔끔하게 2점 승을 따냄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었다. 아마 그 때의 기억과 기대가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 때와 같은 컨디션과 자신감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개인전에서는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급하게 서둘러 호구를 착용하자마자 시합을 시작해야 했다. 서두름에는 어쩔 수 없이 풀리지 않은 긴장이 역력했고, 시합을 겨우겨우 이끌어가다 첫 시합에서 1점 패로 탈락했다. 시합 자체의 운영도 여러 문제가 있었고, 잘못 맞은 죽도로 생긴 옆구리 통증을 의사표시를 분명하게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애매한 시점에 들어온 머리가 인정이 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시합을 뛰는 내 스스로도 이런 몸과 마음으로 이긴다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다 생각하고 있었고, 다친 직후 바로 표현해야 하는 의사표시가 좀 늦은 점이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의 안팎을 둘러싼 여러 요소가 ‘첫 단추를 잘못 꿴 느낌’으로 내 감정을 밀어넣었음 역시 사실이다.
3인 구성의 단체전에서 이번에도 주장 자리에 있었다. 몸이 풀리겠거니 했지만, 잘못 꿴 첫 단추의 기분은 나를 긴장상태로 다시 몰아넣었다. 단체전의 흐름 역시 뭔가 애매해진 상황에서 내가 깔끔하게 이겨야 다음 경기로 진출하는 상황이었고, 나의 상대는 이전 대회에서 내가 깔끔하게 이긴 상대였지만, 나는 몸에 긴장이 가득해져버린 상태였다. 나의 단점 중 하나인 주저함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시합을 풀어나가려 움직여봤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패전의 우울함.
수련을 잠시 쉬고 복싱이라는 다른 운동을 하고 있긴 했지만, 기본체력의 향상이라는 점에서는 나름의 괜찮은 결과를 기대했음이 사실이다. 결과에 대해서 이런저런 변명을 더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예전부터 경쟁이나 승부에 관하여는 소극적이거나 되려 회피하는 성정이다. 그런 내가 검도를 하고 복싱을 하는 이유는, 내가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 내 삶에의 어떤 필요성이나, 무언가를 극복하고 싶은 이성의 욕망 또는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회라는 경쟁과 승부의 잔치 안에서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드러나는, 피해다니려 하는 본성이 저항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관의 이름을 내세우고 출전하여 패하는 일은 관과 관원들의 아쉬움이 조금 배어나는 일이지만, 그것이 생명이나 자본문제로 직결되지 않는 만큼, ‘아쉽지만 지난 일’이며, ‘다음 시합에 잘 하면 된다’는 격려를 뒷풀이 자리에서의 술잔과 함께 나누는 일로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음은 뿌리칠 수 없다. 더구나, 직전 대회에서 최상의 모습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모습이 비교로 남으니, 이번 대회의 졸전은 정말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이제 내 나이도 내년이면 50이니 몸의 전성기가 보여줄 수 있는 활약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내가 아쉬움이 없이 칼을 써보다가 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떨쳐지지 않는 긴장과 천성적으로 가지지 못한 승부욕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제 이 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어느정도 극복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복싱을 해 보니, 검도만큼 늦은 나이에 할 수 있는 운동이 반가워진다. 그만큼, 수련의 정도와 나이가 어우러져 나만의 성숙된 기법을 구사할 수 있는 유술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이에 따라 심리적 한계도 어느정도는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 대회의 졸전은 아쉽지만 그래도 얻어낸 단 하나의 성과라면, 이것이다. 심리적 한계의 극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