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부고에 가슴 깊은 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얼굴을 묻고, 잠시 일어날 수 없었다. 또 이렇게, 좋은 사람을 일찍 데려가면 어떡합니까.. 라는 마음 속 소리가 무엇인지 모를 존재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를 보내고 마음이 어려운 한 주를 보냈다. 그가 떠나는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한라산이 청명하게 보이고 무더운 아침날이었다. 그는 선의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언제나 타인을 향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그의 시선만큼 타인에 대한 선의를 품고 있었던가 고민하게 된다. 그는 시선만이 아니라, 시선만큼 몸을 아끼지 않으며 실천을 하는 사람이었다. 몸을 아끼지 않음이 화근이 되었지만, 몸을 아끼지 않음을 잘 살펴야 했던 내 입장에서는 더욱 마음이 아픈 부고였다.
칼을 들던 외과의 시절, 나는 언제나 죽음에의 지분을 소유한 자였다. 많은 이들이 수술 후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러지 못하고 삭막한 중환자실 침대에서 수많은 기구와 줄을 연결한 채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몸엔 내 손이 닿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경과였다, 의학적으로 돌아보고 판명을 해도, 내 손과 마음은 종종 어려웠다. 칼을 놓으니 마음은 아쉬워도 죽음에의 지분같은 것은 이제 없겠거니 했지만, 오판이었다. 다시 나는 그의 죽음에 얼마만큼의 지분이 있는가 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사람을 살피는 일 역시 외과시절의 내 손과 다름없었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근 몇 달간 이어지다, 그가 그토록 청명했던 날 떠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은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이제는 후회만으로 남을 생각일 뿐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몸을 아끼지 않으며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데, 지분은 그가 이제 없음을, 후회는 그가 이미 떠났음을 냉정하게 깨닫게 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보낸 한 주의 끝에 더는 붙일 말이 없다. 평안하시길, 영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