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는 아이의 친구로서, 그리고 애정으로 함께 사는 생명으로 집에 강아지나 고양이 한 두 마리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언제나 있었다. 아파트에 살 때에는 환경의 한계로 마음을 쉽게 내보일 수는 없었다. 집을 짓고 마당이 있는 집이 생기자,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은 당연한 듯 짙어졌다.
이제까지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제주에 내려와서 아파트에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열대어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취미였고, 학생 시절에 없는 돈 아껴가며 누군가 그냥 가져가라며 던져준 어항에 호수에서 잡아온 납자루나 미꾸리 같은 물고기를 키우기도 했었다. 제주에서는 처음엔 작은 어항으로 시작했다. 자갈을 깔고 여과기를 설치한 뒤에 칼라 테트라와 코리도라스부터 키웠다. 취미는 재미와 깊이를 더하면서 글래스캣피쉬와 수마트라, 플래티류를 더했고, 나중에는 열대 새우류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어항을 늘려나갔다. 그러다, 외부의 일들이 점점 늘어나며 관리의 문제가 발생해서, 데려다 키우겠다는 지인에게 모두 양도했다.
고양이를 들인 적도 있었다. 두 달 된 터키쉬 앙고라 암컷 한 마리가 아파트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그 작은 생명에게 화사함을 느꼈었다. 잘 키워야겠다며 애정을 한껏 주었지만, 가족 구성원들 마다와의 애정관계가 조금씩 어긋나면서 아내는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들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왔던 곳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사 후 생긴 마당은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고도 적당히 넓었다. 그 공간에 적당한 크기의 반려견이 한 마리 자리하는 모습을 상상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반려견을 상상하는 마음 반대편에선 반려견을 관리하는 부담이 동시에 떠올랐다. 우선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분주했다. 나는 아침일찍부터 저녁까지 병원에 몸이 묶여있는 신세였고, 아내는 아이 일과의 도움과 집안 관리, 외부활동 등으로 분주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방과 후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먹을 것을 챙겨주고 주변정리를 해 주는 일은 한낮을 분주하거나 외부에 묶여있어야만 하는 가족 구성원들에겐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반려견에의 고민과 부담은 팽팽하고 균형 있게 저울질되며 3년 남짓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늦가을에, 지인이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 지인이 사는 동네인 정실에서 돌아다니던 새끼 유기견이 자신의 집 앞에서 떠나지를 않아 할 수 없이 마당에 들였다 했다. 그런데, 자신들은 이미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한 노견이 있어 더 키울 수가 없어서, 혹시 우리가 키우면 안 되겠느냐는 부탁이었다. 사진 속의 강아지는 진도견 모습의 하얀 백구였다. 녀석을 다시 내보낼 수도 키울 수도 없어 고민하던 중에 마당이 있는 우리 집을 떠올린 것이었다. 우리의 고민도 깊어졌다. 녀석을 들인다면 정말 잘 키울 수 있을까? 만일 들였다가 너무 버거워서 밥만 주면서 방치하면, 동네 여느 집 개들처럼 묶여만 있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런 개로 전락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마당에 개 한 마리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마음이었고 해서 우리 가족은 고민 끝에 들여서 잘 키워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녀석을 맞아들였다.
이름은 라이, 앞발이 튼실하고 귀가 접힌 진도견 모습의 백구이다. 우리 집에 왔을 때엔 지인이 동물병원에서 1차 예방접종을 마친 후 연령을 알아와서 두 달 정도 자란 강아지라고 했다. 이름을 민구라 지으려 했지만, 백구를 처음 안아 본 아들은 라이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낯선 환경에 주눅이 들어서이기도 했을 테지만, 조용하고 얌전하며 사람을 무척 잘 따르는 강아지였다. 어린 강아지였지만 눈치도 조금 있어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고집 피우거나 짖지 않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안쓰럽고 애정이 가는 녀석이었다. 첫날 하루를 집안 2층 거실에서 보내게 한 뒤, 다음날부터 마당에 묶어두었다.
녀석의 생애 첫 두 달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면에 어떤 피가 흐르고 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마당에 묶어 둔 첫날, 아들과 내가 녀석에게 줄 사료와 애견용품을 사러 나서는데 이제껏 얌전하던 녀석이 나무에 묶인 채 큰소리로 깨갱거리며 몸부림을 쳐댔다. 사람으로 치자면 분리불안이 무척 심해 보였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시 버려지는 줄 알고 우리가 차로 출발할 때까지 묶인 줄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서둘러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니 녀석은 얌전하게 앉아있다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서 몸부림을 쳤다.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잠시 마당에 풀어놓았는데, 공간을 탐색하면서 사람이 보이는지 자꾸 쳐다보는 모습에 다시 마음이 아프면서, 하얗고 어린 저 녀석이 이 공간에 참 잘 어울리는구나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좀 더 일찍 반려견을 들일 걸 그랬나 싶다가도, 그랬다면 라이 저 녀석을 못 만났을 수도 있으니, 인연은 살다 보면 때가 되어 생긴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는 듯했다.
버려진 개집을 임시로 구해서 마당에 놓았다. 마당에 길게 말뚝으로 줄을 고정하고 줄에 목줄을 걸어서 멀리까지 뛰어다닐 수 있게 해 주었다. 임시 개집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개집을 새로 살까 하다가 일을 벌인 김에 직접 만들자 싶어 져 목공에 경험이 있는 친한 동생과 함께 2주에 걸쳐 라이의 집을 만들었다. 직접 만든 집을 라이가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침에는 아내가 밥을 주고, 아들은 아침마다 등교 전 라이가 마당 한편에 모아 둔 배설물을 치운다. 퇴근한 내가 라이의 저녁밥을 챙긴다. 산책은 예상대로 충분히 시키지 못하고 있다. 대신 늦은 밤에 클린하우스로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라이를 데리고 작은 구간이라도 산책시킨다. 클린하우스에 다녀오면 라이의 목줄을 다시 채우고, 간식 몇 개로 앉아, 기다려하며 간단한 훈련을 시킨다. 간식을 먹고 나면 개껌 하나를 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말에 집에 있을 때엔, 마당에서 집 정리를 하면서 라이를 풀어놓는다. 가족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다시 라이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산책도 한다. 아들 녀석도 좋아하고, 아내도 만족해하며, 나 역시 꼬리를 대차게 흔들며 나를 반기는 녀석을 좋아한다.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과 말들이 많은 세상에, 나 역시 너무 많고 진지한 고민들로 시간을 보냈었다. 우연한 기회에 가족이 된 라이 녀석을 보고 있자면, 내가 너무 불필요할 정도로 고민을 했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 지고, 어떤 일들은 일단 벌이고 나서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이가 마당에 자리하면서 마당은 개 특유의 행동들에 조금 지저분해졌다. 잔디밭 한쪽은 깊게 파헤쳐지고 담벼락 타임 덤불도 반은 파헤쳐졌으며, 티트리 나무둥치 하나는 통째로 껍질이 벗겨졌다. 그런 것 마저도 감당해야 할 것들이라 생각하며 라이 녀석이 예쁠걸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없이 잘한 선택이었다 싶어 진다. 우리 집엔 새 식구 하나가 생겨 좀 더 행복한 시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