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운 요리는 김치찌개다. 남자가 부엌에 드나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남편을 둔 어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인 나를 저녁 준비 중인 자신의 옆에 세웠다. 그리고 김치찌개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다. 양은냄비에 잘 익은 김치를 썰어 넣고 멸치 네댓 마리, 다진 마늘 약간, 된장 약간, 돼지고기 조금 올리고 김치만 자작하게 잠기도록 물을 붓는다. 석유곤로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다음, 위에 냄비를 올리고 뚜껑을 덮는다. 찌개가 끓으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조금 더한 뒤에 매운 고추와 대파를 썰어 넣고 좀 더 끓여내면 완성. 사심을 담은 표정으로 나를 옆에 세운 채 조리법을 알려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연하다. 그리고, 어머니의 김치찌개 조리법은 지금까지도 내가 끓이는 김치찌개의 근간이다.
밥상에 김치가 빠지지 않는 나라에서 김치찌개는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음식이다. 당연하게도 흔해서, 식당에 들어선 순간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딱히 짚이는 메뉴가 없을 때에 고르는 음식이 김치찌개, 된장찌개이다. 고르기 귀찮아 별 생각을 두지 않고 먹던 김치찌개에 존재감을 부여할 일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가장 많고 흔하면서도 정말 맛있다는 김치찌개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편의 존재가 주는 적당한 만족에서, 김치찌개의 무게는 대략 정의되는 것이다.
제주에 오면, 김치찌개의 무게는 조금 더 무거워진다. 돼지고기 때문이다. 숯불이나 연탄에 잘 구워진 근고기를 먹고 나면, 잘 구운 고기가 남기는 느끼함을 제주에서는 대부분 김치찌개로 해결한다. 얼큰하고 담백한 찌개국물에 밥 한 공기 먹어야, 왠지 남은 듯한 허전함이나 떨치고 싶은 뒷맛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돼지고기를 굽는 날에는 거의 대부분 김치찌개로 마무리를 하게 된다. 김치찌개에 슥슥 비빈 밥 한 공기가 마치 따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듯, 이미 고기로 부른 뱃속으로 비워진다. 그만큼 둘은 잘 어울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주섬에서도 김치찌개는 그저 보편의 존재일 뿐이다. 남다른 맛의 김치찌개는 쉽게 보이지 않으며, 자글자글하게 기름진 고기 만찬의 뒷마무리에서나 만나는 그런 음식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김치찌개가 아쉽다. 분명한 것은 잘 익은 김치로 깔끔하고 얼큰하게 끊여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익은 김치 치고는 이파리가 너무 흐물거려 입 안에서 쉽게 풀어질 정도이다. 약간의 시큼함과 쓴 맛이 찌개의 뒷맛을 지배한다. 고기와 함께 마신 소주의 취기가 그것을 덜 느끼게 해서 부담이 적을 뿐이다. 초산발효로 급속하게 익힌 김치의 전형이다. 어디서나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양이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그 많은 익은 김치를 끊임없이 공급하려면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초산발효가 제격이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찌개의 시큼함과 쓴 뒷맛을 남긴다.
황교익에 의하면, 김치찌개는 사시사철 아무 때나 만날 수 없는 음식이었다. 김치찌개에는 잘 익은 김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초겨울 김장을 한 뒤 장독에 넣고 땅에 묻으면, 장기간 유산균 발효과정을 거치게 된다. 발효과정을 거친 잘 익은 묵은 김치는 늦겨울에서 늦봄에나 만날 수 있었고, 따라서 김치찌개는 이 시기의 별미음식이었던 것이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냉장고의 도입은 익은 김치의 장기보관을 가능하게 했고, 김치찌개는 사계절 내내 가능한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집집마다 저마다의 맛을 내는 김치는 집집마다의 김치찌개 맛을 결정지었다. 따라서, 김치나 김치찌개의 맛은 한 집안의 개성이자 내력인 것이었다. 공장에서 대량의 김치 생산을 하는 시대가 오자, 발효도 초산발효법으로 바뀌면서 잘 익은 김치는 몰개성의 천편일률의 맛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생산된 김치는 가격 면이나 공급면에서 유리하니 식당으로 당연히 흘러들어가게 되고, 우리가 외식으로 먹는 김치찌개의 맛이 어디든 비슷한 맛을 내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 해의 특정시기에, 집집마다의 개성 어린 손맛을 느끼며 귀하게 먹던 음식이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보편의 음식으로 변한다는 건, 어딘가 아프고 아쉬운 일이다.
나 역시 별생각 없이 고르는 메뉴이긴 하지만, 뚝배기 안의 뜨거운 국물을 한 술 떠 후후 불며 입에 넣을 때마다 아쉽고 궁금해지는 음식이 김치찌개이다. 맛있다는 김치찌개 집은 없을까.. 돼지고기가 맛있다는 이 섬에서, 돼지고기와 궁합이 그렇게 좋은 김치찌개는 어째서 맛있다는 집을 찾을 수 없는 걸까.. 발효숙성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집집마다의 손맛이 다른 음식이 김치라면, 김치찌개는 그저 집에서 끓여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일까?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 맛있다는 돼지 고깃집에서 연탄불 위의 근고기를 양껏 구워 먹고 뒷마무리는 시큼하고 씁쓸한 김치찌개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틀어진 궁합 같아서다. 궁금함도 생긴다. 육지와는 성질이 조금 다른 제주산 배추로 만든 김장김치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맛에서도 다른 점이 있을까 하는 궁금함 말이다. 어쨌든, 김치찌개는 여전한 아쉬움이다. 보편의 존재가 주는 적당한 만족이 아닌, 김치찌개 자체만으로 훌륭한 만족을 느끼고 싶다. 가장 흔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 김치찌개에도 해당되는 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