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렸다. 눈이 좀처럼 내리지 않는, 내린다 하더라도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서귀포에도 발목까지 눈이 쌓였다. 진료실에서 내다보는 서귀포 신시가지의 풍경은 강렬했다. 하얗게 쌓인 눈과, 겨울에도 이파리를 잃지 않는 활엽 가로수 잎의 진녹색을 바탕으로 밀도 있게 내리는 눈의 하얀색이 강렬하게 대비되어 내 시야로 들어왔다. 하얀 언덕길을 아이와 함께 오르는 아빠의 손에는 플라스틱 썰매가 들려있었고, 가방을 메고 언덕을 오르는 어느 남자의 발에는 아이젠이 착용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영토의 최남단 도시 서귀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정말 희귀한 풍경이었다.
아내가 사진을 보내왔다. 방학을 맞은 아이와 마당에 기르는 백구 라이가 하얗게 쌓인 눈에 신이 나 눈사람을 만들며 함께 놀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중산간이 아닌 저지대 마을에 사는 우리 집 마당에 눈이 쌓인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흔치 않은 눈에, 아이와 강아지는 마냥 신나기만 했다. 그러나, 어른은 마냥 신나거나 신기해 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퇴근길을 걱정했다. 눈은 점점 거칠게 내리기 시작했고, 제주까지 넘어가야 하는 퇴근길을 원장님도 걱정했는지 30분 일찍 퇴근하라며 배려해주셨다. 일단은 길이 언 것은 아니니 체인 없이 퇴근을 시도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평화로 초입부터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꽉 막혀버린 평화로를 벗어나 한림 쪽으로 차를 돌렸다. 제설은 되어있지 않겠지만 차들이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보다는 조금 나을까 싶어 우회를 시도한 것이었다. 눈은 점점 더 심하게 내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차들은 많지 않았지만, 언덕 오르막길에서 또는 내리막을 앞두고 불안해하며 엉금엉금 기고 있었다. 나 역시 그 행렬의 중간에 끼어, 사고만 나지 말아달라는 마음으로 차가 움직이기만을 바라며 퇴근했다. 평소 45분 정도 걸리던 퇴근길이 그날은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예보는 이틀 이상 폭설과 한파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나는, 출퇴근용 차에 체인을 미리 감아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은 온통 하얗고 미끄러웠다. 폭설은 아름다웠지만, 이 섬에 살아야 하는 이들에겐 불편과 고난이다. 한파 기간 내내 이 섬은 고립되었다. 마트에 우유가 점점 동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주문해서 오고 있던 내 책은 도착 예정일을 한참 넘겨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공항은 결항과 지연으로 난리 북새통이라는 소식은 이젠 익숙해졌다.
첫날보다도 눈이 더 오고 점점 추워진 다음날, 나는 결국 퇴근을 포기하고 서귀포에서 외박을 했다. 범섬이 바로 보이는 남쪽의 작은 도시에도 눈은 폭신하게 발목까지 쌓였고,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여전하게도 싸락눈을 내리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섬으로 들어오던 행렬이 입도를 포기하고 있었고, 나는 하얗게 쌓인 눈을 뚫고 집에 가길 포기했다. 어디서든, 고립은 피할 수 없는 날이었다. 고립의 불편함과 약간의 생소함을 나와 같이 영화를 보고 술 한잔 해 준 병원 동료들과 눈싸움을 하며 달래었다.
2년 전에도 이렇게 눈이 내렸었다. 중산간은 완벽하게 고립되었고, 우리 집을 포함한 저지대 마을도 눈을 날리는 강렬한 바람과 쌓이고 언 눈에 바깥출입이 불가능했다. 당시엔 출퇴근으로 제주와 서귀포를 오가기 전이었고, 폭설이 주말에 내려서 나는 가족들과 코타츠에 파묻혀 하루 온종일 거실 창 밖의 눈을 구경했었다. 그러다 답답증이 밀려와 해가 진 밤중에 중무장을 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한겨울 강원도 산골의 설국이 따로 없었을 분위기였다. 그때의 생소함은 2년 후 지금으로 이어져, 우리는 또다시 설국의 분위기에 취하고 폭설과 강풍의 불편함에 좀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체인은 꼬박 3일을 바퀴에 감겨 있었다. 평화로는 제설작업이 잘 되어 있었고 눈은 그쳤지만, 한파는 여전해서 평화로에 진입하는 언덕길에는 눈이 굳은 채 얼어 미끄러웠다. 체인을 풀지 않은 이유였다. 출퇴근길의 평화로는 사고가 나거나 일단은 버려둔 차들이 갓길 곳곳에 박혀 있었다. 빙판길에서 180도 완벽하게 방향을 튼 채 갓길에 박힌 차들과 사고가 나서 앞뒤가 완벽하게 부서진 차들이 그 자리에서 견인을 포기한 채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스팔트 먼지를 뒤집어써 지저분해진 눈이 튀고 지붕에는 눈이 두텁게 쌓인 채 며칠 방치된 차들은 마치 전쟁이 지나간 후의 살풍경을 연출했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나 역시 도로 바닥을 주시하고 체인으로 웅웅 거리는 소음을 감내하며 조심스러운 속력으로 운전해야만 했다. 지각은 어쩔 수 없는 일.. 이해받을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었다. 날이 풀리고 체인을 풀고 운전하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개인 하늘이 원래 그런 풍경이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이제는 다시 폭설과 한파의 고난을 망각할 만큼의 긴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폭우와 폭설 강풍은 이 섬이 겪어야 할 고난들이다. 서귀포에 내린 눈이 얼 정도의 한파는 조금 새로웠다. 이 고난들은 어쩔 수 없이 합리적인 선에서 인간이 감내해야 할 자연현상이자 불편이다. 그리고 가끔씩의 불편에 익숙해지고 서로의 상황에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일이다. 이 섬에 존재하는 인간사회의 시스템과 각자의 준비가 조금만 더 갖추어진다면 그 이상을 능가하는 자연현상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이해 없이 인간의 불편을 이유로 섬 안의 환경과 시스템에 막대한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씩의 폭설과 한파로 인한 고립에 제2공항이나 해저터널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선에서 불편을 감내해야 할 존재이지, 끝없는 편리를 이유로 개발과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 섬에서 그들이 말하는 편리는 잠깐의 불편함을 줄이는 대신, 조금은 다른 범주의 은근하고 지속적인 괴로움을 안길 것이다. 섬 자체의 환경과 고립이라는 특성이 삶의 모습을 만들어왔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불편이라면 감당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