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43.

by 전영웅

입도하자마자 급격하게 살이 쪄서 시작한 검도였다. 꼭 검도만으로 살을 뺀 건 아니지만, 적절한 체중을 관리하는 데 지금까지 도움을 받고 있는 운동이다. 검도는 처음 입문 후 어느 시기까지는 그다지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운동이 되는 기분도 별로이다. 죽도를 잡는 방법과 휘두르는 자세, 발의 움직임 등등을 모양이 잡히고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큰 머리치기, 작은 머리치기, 연격 등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하면 힘이 들기 시작한다. 호구를 착용하고 대련 연습을 시작하면 무게와 긴장까지 더해져서 잠깐의 움직임만으로도 땀이 비 오듯 하며 힘이 부치게 된다. 모두 착용한 호구의 무게가 대략 4킬로 정도 되고, 죽도의 무게는 500그램을 조금 넘는다. 자세는 기본이고 순발력과 호흡, 체력을 요구하는 검도의 에너지 소모량은 상당하다. 수련 전 뭐라도 조금 먹어두지 않으면, 한 시간여의 수련을 허기에 압도당해 움직임이 쉽지 않다. 죽도의 무게가 500그램을 조금 넘는 정도이지만, 120센티미터 길이를 순간적으로 휘두를 때 받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래서 죽도의 정교한 타격과 유연한 동작을 위해서는 팔꿈치 아래 팔의 근육들이 단련되어야 한다. 유단자들이 대련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죽도를 잡은 그들의 팔에 종종 시선을 보낸다. 도복의 끝단과 죽도를 거머쥔 호완의 탄탄한 테두리 사이에 드러나는 팔에는 마치 두 끝단 사이를 잇는 듯 선명하게 발달한 근육들의 실루엣이 피부로 드러난다. 그 탄탄한 근육선들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은 검도 수련을 얼마나 했을까 싶은 부러움과 존중의 마음이 들었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점점 몸 구석 어딘가 자잘하게 이상신호를 느끼게 되는 시기가 왔지만, 그 팔근육을 닮고 싶어 꾸준하게 죽도를 잡고 있다.

검도를 꾸준하게 한다 했지만, 그에 비해 승단은 많이 늦었다. 처음 찾아간 도장에서 적절한 수련기간을 마치고 1단을 인정받았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그 도장에서, 제대로 된 수련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 관장님의 알듯 말듯한 시선 아래서 1단 까지는 마무리했다. 다른 도장에서 운동하다가 중간에 우리 도장으로 합류한 직장동료는 지나가듯 말했었다. ‘검도가 이게 전부라 생각하면 안 되는데..’ 관장님의 알 듯 말듯한 시선만큼, 나 역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소소한 혼란이 생기던 시기였다. 동시에 도장은 곧 운영난에 빠졌고, 관장님은 도장을 다른 분에게 넘겨주고 떠났다. 새로 오신 관장님은 분위기 전환과 수련에 열심이었고 우리도 그 분위기에 맞추어 좀 더 성실하고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그러나 검도가 인기 종목도 아니어서 사람이 많아지지도 않았고, 세를 올리려는 건물주의 압박까지 더해서 도장은 문을 닫고 변두리의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던 도장을 인수해 간판만 바꿔달았다. 나를 포함해서 관원 몇몇이 도장의 운영난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일 년치 관비를 미리 지불했다. 도장이 다시 활기를 되찼기를 바랐지만, 관장님은 별다른 말 없이 도장을 외면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건물주의 직접적인 경고를 받고 도장을 나갔다.

그 뒤로 약 3년간의 낭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같이 운동하던 관원들 서넛은 개점휴업상태인 다른 도장을 알아보고, 그 도장 관장님에 허락을 구한 뒤 자체적으로 운동을 이어나갔다. 관장도 사범도 없이 그저 우리끼리의 시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소속도 지도사범도 없으니 공식적인 검도 행사는 참석할 수도 없었다. 그냥 죽도를 꾸준히 잡는다는 마음으로 이어나갔다. 운동하는 마음으로 출근 전 새벽 한 시간 자전거를 타고 가서 운동하기도 했고, 저녁시간 일정을 맞추어 모여 운동하기도 했다. 운동을 하기는 했으나, 중심이 없는 수련은 체력이 늘지도 않았고 자세는 망가지기만 했다. 현재 다니는 도장 관원들이 내가 처음 도장에서 와서 대련하는 모습을 보고 까마득한 느낌이었다고 하는 걸 보면, 낭인 시절의 그 애매함이 자세를 얼마나 망쳐버렸는가 알 수 있었다. 외도에 집을 짓고 이사하면서 거리가 가까운 현재의 도장으로 적을 옮겼다. 수련하는 사람이 많고, 체계를 세우고 운동할 수 있어서 다시 마음을 잡고 만족스럽게 수련에 임했다. 그러다 2단 승단을 준비하라는 관장님의 제안에 뒤늦게 2단을 획득했다. 소속된 도장에서 꾸준하게 수련했다면 3단 승단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2단이 된 것이었다. 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많이 지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애매했던 과거의 수련과 낭인 생활은 제주에서 시작한 검도 생활의 작은 상처가 되었다.

검도도 결국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몸을 담았던 도장의 관장님은 검도인으로서 존경하지만, 수련받는 입장에서는 약간의 서운함을 어쩔 수 없었다. 관비를 받고는 조용히 문을 닫아버린 후임 관장님에게도 서운함과 연민의 복잡함 감정이 일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검도를 시작한 같은 나이의 검우는 현재 다른 도장의 소속이 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며 종종 만나 검도를 이야기한다. 그 시기에 함께 운동했던 몇몇의 검우들 역시 저마다의 삶에 분주하면서도, 기회가 닿는 순간마다 얼굴을 마주하며 운동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은 나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한 사람들이다. 현재 소속되어 수련 중인 도장 검우들도 고마움과 묵묵함과 교감과 긴장이 버무려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검도가 중심을 잡지만, 검도 이면의 사람 이야기 사는 이야기들이 혼재한다. 검도는 나로 하여금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겪는 일에 있어 새로운 시선과 경험을 안겨 주었다. 진료실에서의 진료가 다양한 인간군상을 바라보는 일이라면, 검도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경험하고 느끼는 일이었다.

검도 수련을 하면 할수록 어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몸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도복을 입고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잡고 자세를 취하며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심연처럼 다가오는 알 수 없는 본질 같은 것이다. 평생을 수련해도 알 수 없음의 어떤 것, 알 수 없음의 반만 따라가려 해도 수없는 수련의 시간이 필요한 운동.. 사실 인간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그러한 것들은 수없이 많다. 저마다의 가치에 몸을 담아 정진하는 사람들에 점점 존경과 존중의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각각의 가치는 어째서 경중을 비교당하며 사람의 먹고사는 일을 지배하는가 하는 고민이 생겼다. 공부의 가치가 운동의 가치보다 우월함은 합당한가, 올림픽 등의 국제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도는 다른 운동에 비해 덜 가치가 있는가.. 그런 일련의 역학들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가늠되는 일은 인간적이거나 합리적인가.. 나는 종종 고민스러워진다. 생각건대, 문제집을 펴고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는 일과, 팔뚝의 근육이 도드라질 정도로 죽도를 잡고 땀 흘리며 수련에 정진하는 일에 별다른 가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내 머리 속에서는 그러하나 내가 속한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아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치의 차이가 사람들로 하여금 서운함, 연민, 아쉽고 고마움 등등의 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한다. 세상은 합리적인가 하는 답이 없을 수도 알 수도 없는 막막한 고민을, 검도라는 운동 속에서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과 역학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하나 각자에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아닌 것이 없듯, 검도는 나에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우물이다. 깊이의 심연이 나에게 닿지 않을 거란 단 하나의 확신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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