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낚싯배에 오른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날을 잡아 오르거나, 배를 가진 지인이 같이 낚시하러 가자고 가끔 연락을 주면 동네 앞바다로 아침나절 잠깐의 배낚시를 즐긴다. 그중 한 번은 내 생일이 들어있는 2월의 어느 날을 잡아, 하루 한 나절의 배낚시를 즐긴다. 일종의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 제주에 내려와 낚시에 빠져들던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선물을 해주자는 생각이 들면서 2월이 되면 나는 주말의 하루를 잡아 배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2월의 배낚시라는 것이 좀 힘들다. 추운 겨울바다를 상대해야 하기도 하지만, 바람 가득한 제주의 날들 중에서도 영등할망이 지나가며 가장 거센 바람을 만든다는 시기에 배를 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배에 오르는 이유는, 대물 크기의 참돔이 잘 잡히는 시기인 데다, 옥돔 등등의 고급어종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시기라서 기대감도 크기 때문이다.
북서풍이 거세게 부는 시기라서 낚시는 주로 산남의 바다에서 하게 된다. 아침 일찍, 방수 바지와 부력조끼 등으로 무장한 채 배에 오른다. 낚시 장비는 타이라바 장비이다. 일본어로 참돔을 뜻하는 타이와 rubber의 일본식 발음인 라바가 붙어 개발된 기법인데, 무거운 추에 하늘거리는 고무줄 줄기를 달고 그 사이로 바늘을 달아놓은 일종의 루어낚시이다. 추를 바다 밑바닥까지 내린 다음에 천천히 릴링을 하면 하늘거리며 바닥에서 오르는 채비가 마치 물고기들의 먹잇감처럼 보여 공격하게 된다. 이 채비를 공격하는 녀석들은 참돔뿐만이 아니다. 옥돔, 광어, 우럭, 능성어, 바리류의 다양한 어종들과, 심지어는 방어나 갑오징어도 심심치 않게 걸려 나온다. 굳이 참돔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타이라바 채비는 한겨울 낚시의 모든 고난들을 감내할 만한 사소한 것들로 덮어버릴 만큼 기대 넘치는 낚시 기법인 것이다.
맵싸한 겨울바다 위의 공기를 가르며 배는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인트 도착과 동시에 선장님의 낚시 시작 신호가 울렸다. 미리 채비를 준비해 둔 나는, 배 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릴을 풀어 채비를 내렸다. 릴은 하염없이 풀렸다. 수심 80미터에서 깊게는 100미터 이상까지 채비는 내려간다. 멈출 것 같지 않던 릴이 툭 하는 느낌과 함께 멈추면, 채비가 바닥에 닿았다는 의미이다. 바로 나는 릴을 천천히 감기 시작한다. 일렁이는 파도에 배가 앞뒤 좌우로 기울기를 반복하면 그것도 바닷속 채비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연출하는 수단이 된다. 내가 릴을 감는 속도와 가끔씩 부드럽게 대를 당기는 움직임, 그리고 배의 기울기가 채비의 모양을 더욱 매력 있게 연출한다.
한겨울 추위에도 바다는 여전히 하늘빛으로 푸르다. 제주바다는 검푸르다는 말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하늘빛으로 푸르다. 그럼에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의 두려움을 항상 품는다. 일렁이는 배 위에서 몸이 어쩔 수 없이 가지는 긴장만 없다면, 추위쯤은 무시하고 저 푸른빛으로 빠져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동시에, 저 빛 속으로 빠져들면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의 무한함에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버릴 것 같은 무서움이 든다. 낚시란, 제법 자주 지루할 정도로 잡히지 않는 때가 있어서, 릴을 감고 푸는 반복이 무의식으로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아래에서 햇살을 반사하며 푸르게 일렁이는 바다색에 넋을 놓아버린다.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저 푸르름에는 평생을 살면서 매번 유혹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릴링을 하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툭툭 건드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입질이다!라고 판단과 동시에 몸이 긴장 속으로 빠진다. 여기서 릴링을 멈추거나 대를 들거나 하면 안 된다.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녀석이 공격에 집중하도록 채비의 움직임에 변화를 주어선 안된다. 하던 속도 그대로 천천히 릴링을 유지한다. 녀석의 공격이 좀 더 잦아지는 것으로 보아 경계심도 많이 줄었다. 툭툭 치는 듯하던 공격에 갑자기 대에 힘이 실리며 대 끝이 휘었다.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챔질을 한 번 해서 바늘이 제대로 걸리게 했다. 놀란 녀석이 도망치려는 움직임에 릴의 드랙이 풀리기 시작했다. 흥분과 긴장이 몸을 압도하는 순간이다. 여기서부터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녀석이 줄을 당기며 도망갈 때엔 여유 있게 버티다가, 움직임이 멈추면 릴을 감아 녀석을 끌어올린다. 버티기와 감기의 반복 사이에서 녀석은 바닥 쪽으로 쿡쿡 머리 박듯 도망치려 한다. 그렇게 버티는 녀석들은 주로 참돔이다. 아, 참돔 같구나 하는 기대가 더 커진다. 여유롭게, 버티면서 릴링을 하지만, 수심 100여 미터 아래에서 강제로 녀석을 끌어올리는 일은 버거운 일이다. 대를 쥐고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엔 살짝 무리가 오고, 몸은 긴장만큼 피로가 쌓인다. 그럴 땐, 옆에서 전동릴을 사용하는 사람이 부러워진다. 십여 분이 넘게 버티며 녀석을 끌어올리다 보면, 저 아름답게 푸른 심연 어딘가에서 분홍빛으로 일렁이는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돔이다! 게다가 덩치도 만족스러울 만큼 크다! 드디어 나도 참돔을 잡았다! 기분은 최고조에 달하지만, 아직이다. 녀석은 아직 배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수면가까이에 닿은 녀석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심연 속으로 도망치려 하지만 바늘은 단단히 걸렸고 녀석의 힘은 거의 닳아버렸다. 선장님이 뜰채를 가져와 수면 가까이 누워버린 녀석을 건져 배 위로 올리면 녀석과의 싸움은 종료,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녀석의 주둥이에서 채비를 빼고, 양손으로 녀석을 들고는 사진 한 방 찍는다. 꼬리에 내 것이라는 표식을 달고 녀석을 물칸에 집어넣는다.
배낚시로 참돔을 처음 낚은 건 입도 후 3년이 지난 2월의 우도 앞바다에서였다. 50-60센티 되는 참돔을 세 마리 낚아 그날 저녁은 지인들을 불러 회와 매운탕으로 잔치를 했었다. 이후로 가끔의 배낚시에서 지깅낚시로 방어와 부시리를 낚기도 했고, 옥돔, 돌우럭, 농어, 참돔, 능성어와 황금바리를 잡아 올렸다. 그런 날 저녁은 항상 지인들과의 잔치였다. 낚시를 한다면, 회를 뜨는 방법 역시 알고 있어야 할 기술 중의 하나라서, 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닷물에 일차로 손질을 해서 집으로 가져온 뒤, 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였다. 그리고, 가볍게 소주 몇 잔으로 지인들과 저녁을 나누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배낚시는 단순한 낚시행위만을 즐기는 일이 아니다. 가끔 꽝도 있지만, 조과의 양에 상관없이 일단 무언가를 잡기는 하는 것이 배낚시이기도 해서 배를 타기로 한 날엔 지인들 몇에 미리 연락을 해 둔다. 낚시를 하는 행위의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속에 무언가를 낚는 흥분과 재미가 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잡아 온 조과를 가지고 직접 손질하고 준비해서 지인들과 나눈다는 즐거움까지가 내가 배낚시를 즐기는 이유의 총합이다.
올해엔 아직 배에 오르지 못했다. 유독 거센 한파에 유래 없는 폭설까지 제주에 몰아치며, 바다는 좀처럼 낚시를 허락하지 않았다. 배에 오를 하루를 가늠하며 날씨와 파도를 살펴보지만, 쉽지가 않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하루를 나 스스로 차려보는 잔치를 올해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꼭 2월의 버거운 날들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쉬는 날 어느 하루, 가볍게 배에 오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디서든 바다 가까운 제주에 살고 있으니, 배에 오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올해의 나에게 주는 선물은 그래서 천천히, 여유 있게 가늠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