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으로 3월 1일이 되면, 몸보다는 마음부터 바빠진다. 집안 안팎으로 손 보아야 할 것들을 체크하고 한 해의 텃밭을 구상하기 때문이다. 한겨울 나름의 농한기를 보내며 텃밭은 방치상태로 있었다. 텃밭은 이제 다시 내 시야로 들어온다. 무엇을 어디에 얼마만큼 심고 기를 것인가, 즐겁고 아기자기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선 장갑을 끼고 한 해의 첫 작업을 시작한다. 겨우내 텃밭에 자리했던 월동작물들을 거두는 것이다. 보잘것없이 자라긴 했으나 먹기엔 충분한 것들, 배추 무 브로콜리 쪽파를 거두었다. 이 녀석들은 올해 유독 고생을 한 작물들이다. 제주 아랫동네에서는 겨울에도 물이 잘 얼지 않는데 올해는 종종 물이 얼 정도의 추위와 기록적인 폭설을 견뎌낸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텃밭에는 아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완두와 양파이다. 완두는 한 달 정도면 꽃을 피고 완두를 맺을 것이다. 양파는 지난 11월에 심어 겨울을 지나 5월에나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지난가을부터는 텃밭 운영방식에 조금 변화를 주었다. 이전에는 가을걷이를 하고 남은 월동작물을 3월에 모두 거둔 다음 텃밭을 전체적으로 뒤집는 작업을 했었다. 그러면, 한 번에 기본 작업을 할 수 있고 텃밭을 좀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한 가족 먹거리 기르기엔 너무 넓은 공간에서 몇 가지 작물만 너무 많이 나왔고, 작물들의 생육기간을 고려했을 때 기르는 작물의 종류가 너무 단순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더구나, 우리 텃밭에서는 잘 자라는 것과 신통치 않은 것들의 차이가 분명했다. 양분공급과 벌레들 관리에 게으른 텃밭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 텃밭에서는 배추류나 마늘, 감자 등등이 잘 되지 않는다. 대신 고추 가지 토마토 고구마 쪽파 등등은 너무 잘 된다. 잘 자라는 작물들만 골라 심기엔, 한 해 단위로 나누는 경작은 몇 종류의 작물에서 너무 많은 수확을 거둔다는 단점을 만들었다.
완두와 양파가 차지한 자리를 두고 땅을 뒤집을 생각이다. 그만큼 노동력에 여유가 생겼다. 완두 자리는 4월 말이나 5월에 땅을 뒤집고 그 사이 포트에 파종한 바질을 심으면 될 것이다. 양파도 5월 경에 거두고 나면 그만큼만 땅을 뒤집고 고구마를 심을 생각이다. 공간마다의 시간차가 생기니 노동력이 분할되어 덜 힘들고, 공간 활용에 따른 작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좀 더 많은 작물을 적절한 양으로 거두자는 것이 텃밭운영에 대한 생각인데 거기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텃밭에는 실험 차원에서 좀 더 고민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잘 안 되는 작물이 그저 토질의 문제로 잘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퇴비나 때마다 주어야 하는 양분이 적어서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또, 좀 더 다양한 작물을 심어보려 한다. 지난가을에는 양배추와 콜라비와 브로콜리를 처음으로 심었었다. 게으른 농법으로 방치 수준으로 두었더니 양배추와 콜라비는 실패했으나 브로콜리는 나름 잘 자라주었다. 그렇게, 우리 텃밭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작물들을 찾아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해충이라 불리는 곤충관리 문제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재미로 하는 텃밭인지라 농약이나 비료 안 쓰고 잡초만 관리해주며 거의 방치하는 수준으로 관리를 해 왔었다. 그러다 보니 곤충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어떨 때에는 곤충들 먹이 주려 내가 텃밭을 하나 싶을 정도였다. 주로 엽채류들이 곤충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늦봄에 심는 얼갈이배추는 싹이 나오자마자 줄기만 남기고 사라졌고, 늦여름에 심은 배추는 일일이 손으로 배추흰나비 애벌레들을 잡아내어도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가을배추에는 모종을 심은 뒤 두어 주 지나 저독성 농약을 묽게 한 번 뿌려주었다. 그것은 나름 만족할 만한 효과가 있어서, 배추가 그나마의 모양새를 갖추고 자라주었다. 따라서, 무농약에의 고집만 부릴 게 아니라 모종을 심고 난 직후에 한 번 정도는 저독성 농약을 묽게 타서 뿌려줄까 생각하고 있다.
거름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작년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뚜껑을 만들어 뒤뜰 땅에 박아두었다. 그리고, 거기에 채소류의 음식물쓰레기들을 넣고 흙과 EM 미생물을 같이 섞어 퇴비를 만들었다.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손질하면서 버려지는 생 야채들이나 상한 과일 채소 등등을 넣고 열심히 섞었지만, 부패되는 시간은 더뎠다. 게다가 구더기 등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어서 때마다 잘 섞어서 수분을 날려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 냄새가 나지 않아 언젠간 부패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 년을 보냈고, 지금은 덜 부패한 것들을 거두면 꽤 괜찮은 질과 양의 퇴비가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조만간 텃밭을 뒤집을 때, 흙에 섞어 줄 것이다.
올해는 먼저 텃밭 가장자리에서 무서울 정도로 자라던 로즈마리 덤불들을 먼저 걷어냈다. 이웃집이 없던 때에 일종의 경계수로 심어 둔 허브였는데, 이제는 이웃의 돌담이 확실한 경계를 만들어주었고, 로즈마리는 너무 커져 텃밭의 상당한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걷어낸 로즈마리 덤불은 엄청난 양이었고, 텃밭은 그만큼 넓어졌다. 로즈마리가 있던 돌담 아래는 호박과 물외 등을 심어 활용할 생각이다. 모종을 심기까지는 음력 3월 1일을 기준으로 잡자면 아직 여유가 있다. 천천히 텃밭 주변을 정리하면서 혹독했던 지난겨울을 이겨낸 작물들을 돌보고, 견디지 못한 것들을 거두어야 한다. 정리된 만큼 넓어진 주변에 무엇을 심을까도 찬찬히 고민 중이다. 유실수를 심을 것인가 아니면 보기 좋은 화단을 꾸며 볼 것인가.. 우선은 마당 한편에 포도나무를 심을까 생각하고 있다. 바질은 포트에 상토를 담아 씨앗을 심어 모종을 만들어야 하고, 고수는 적당한 시기에 파종을 하면 될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너무 많은 한두 가지 작물보다는 다양하게 시도해보기 위해 고추 모종의 양을 대폭 줄이고 다른 심을만한 작물을 고민한다. 좁은 땅덩어리에 일 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담을까 고민은 점점 많아지는데, 그게 참 즐겁다. 무슨 일이 있어도 텃밭만큼은 매년 이어나가자는 다짐은 즐거움이 얹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해마다의 일이 되었다. 즐겁게 쌓아가는 고민은 제주에서의 삶을 너무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틀이 되었다. 나에게 봄은, 따뜻함에의 반가움을 넘어서서 기대와 분주함이 만들어가는 어떤, 살아간다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활력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