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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대만 여행 1일 차

by 전영웅

좀 길게 쉬자는 원장님의 제안에 던져진 설날 명절의 긴 휴가였다. 기회가 닿는 대로 해외로 나가보자는 다짐은 이번에도 어디를 갈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제주에서 가능한 직항은 다 가 보자는 생각, 그래서 선택한 곳이 대만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만행을 결정하자마자, 아내는 도서관에서 대만 여행 관련 책들을 빌려다가 열심히 공부하며 일정과 교통 숙박 등등을 결정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평상시대로 출퇴근을 반복하고 일상을 이어나가면서, 여행지의 작은 뒷골목을 다니다 우연히 만날 매력, 즐거움, 위안 같은 것들을 상상하고 기대하고만 있었다. 무책임의 극치이자 근거 없는 이상에의 열망임을 잘 알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밖에 없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아내와 함께 반려견을 산책시키며 내가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은 차에도 관심이 많던데 나는 왜 그런 것들엔 관심이 없을까?’. 아내는 대답했다. ‘그래도 당신은 글 쓰는 일에 관심 있고 건담이나 낚시에도 관심 많잖아.’. 갑자기 어떤 명확한 결론에 이르렀다. ‘아! 나는 그저 돈 안되고 비현실적인 일에만 관심이 많구나!’

두 시간여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는데, 구름 속에서 한참을 날고 있었다. 그러다 창 밖으로 드러난 시야는 불과 몇십 미터 상공인 듯한 널따란 평지의 풍경이 펼쳐졌다. 타오위안 공항은 흐리고, 안개도 구름도 아닌 것이 나직이 깔려 있었다. 비행기 안의 좌석은 빼곡하게 차 있었고, 대화 속에는 한국어와 중국어가 반반 뒤섞여 있었다. 제주라는 작은 섬 안에서 여정을 같이 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될 사실과 중첩되며 대만을 익숙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적어도 내가 다닌 이 섬 안에서의 동선에는 항상 한국어가 함께 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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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서늘했지만 춥다거나 덥다거나 하는 느낌 없이 잔잔하고 어떤 차림으로도 견딜만했다. 공항에서 sim칩을 구입하고 환전을 마친 뒤에 바로 이어진 MRT 직행을 타고 타이베이 시내로 향했다. 타오위안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인천 정도이고 거기서 교통편으로 수도인 타이베이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라면 인천과 서울 사이, 그러니까 타오위안과 타이베이 사이에는 비교적 높고 거친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지상 노선을 달리는 전철 밖 풍경은 나직한 구름에 대부분이 뒤덮인 높고 푸른 산맥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식생도 제주와는 많이 달랐다. 우선 바나나 나무처럼 보이는 넓은 잎의 초목들과 우락부락한 덩치로 높게 자란 활엽 나무 군락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수풀 사이사이로 조금씩 개척한 듯 보인 텃밭들은 산자락에 조그맣게 만든 우리나라 시골 텃밭의 풍경과 별다를 게 없었다. 아기자기함이 살아있는 작은 크기의 텃밭들에서, 삶의 어떤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대만에 대한 인상의 일부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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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 역에서 내려 동문 역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90원이 기본요금, 대략 계산으로 40을 곱하면 우리나라 원화가치로 환산이 된다. 멀지 않은 길이라 부담을 가지지 않았지만, 대만은 신호체계는 곳곳마다 시간 설정이 달랐다. 파란불이나 빨간불이 30초간 유지되는 곳도 있었지만, 시내 중심에서는 1분 30초 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니까 기본요금이 비싸지는 않다고 택시를 탔다가 기다려도 바뀌지 않는 빨간불에 미터기 요금이 올라가는 신호가 잦아지면 마음도 살짝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도로는 살짝 좁으면서도 소형 바이크와 차들이 함께 달리고 있었고, 둘 사이에는 미묘한 경쟁과 견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흐린 하늘만큼 중심가의 풍경은 살짝 어둡고 검회색이 감돌았으며, 간판들에 박힌 한자들이 풍경과 어우러지며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서 택시요금은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는 않았고, 우리는 예약한 동문 역 부근 숙소에서 체크인을 했다. 그곳은 딤섬으로 유명한 딘타이펑의 본점 바로 맞은편 호텔이었다. 딘타이펑 딤섬은 맛보고 가겠구나 기대부터 했지만,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우리가 대만으로 넘어온 날이 설 명절이었고, 대만도 역시 같은 명절을 보내는 문화권이었다. 딘타이펑은 명절 당일 휴업이었고, 우리보다 더 긴 명절 연휴를 즐기는 대만 사람들은 여행자인 우리와 마찬가지로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길 건너 맞은편 번화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여기가 나름 즐기기 좋은 동네인 것은 알겠는데, 명절이라고 문을 닫은 집들이 많았다. 문을 열고 영업하는 식당이나 카페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줄 서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사람 많은 것도 싫어하는 나에게는 최악의 상황인 것이었다. 그래도, 늦은 점심은 해결해야 할 상황이어서 문을 연 집들 중에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캐주얼한 느낌이 나는 우육탕면 집에 들어가서 우육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래도 음식은 입에 맞아서, 그럭저럭 인 느낌으로 한 그릇을 비웠고, 소고기 국물에 토마토를 넣는 것도 꽤 괜찮은 조합임을 깨닫기도 하였다. 후식은 바로 맞은편에 있는 망고빙수로 결정했다. CNN에서도 다녀갔다는 유명한 망고빙수 집에서는 설 명절을 맞아 거리 주사위 놀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망고빙수 맛은 그럭저럭 이었고, 아내는 그 맞은편의 누가 크래커 집에서 역시 유명하다는 크래커를 사서 한 입 물려주었다. 맛있어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것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내 입맛엔 그저 그런지, 내가 문제인 건지 원래 그런 맛이 인기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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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매캐했다. 대도심 특유의 먼지와 매연이 나직하게 깔린 구름과 수분에 갇혀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코와 목이 벌써부터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공기는 마치 흐리고 쌀쌀한 봄날의 제주 같은데, 거기에 서울의 매연을 합쳐놓은 것 같았다. 코와 목이 헐겠구나.. 나름 신체의 반응을 예측하고 대비해야만 했다. 오기 전부터 감기에 걸린 아내는 조금 힘들어했다. 약을 미리 챙겨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시작이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왔으니 돌아봐야지 하는 생각에,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송산문창원구에 가 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 내려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 구간의 대로변 뒷골목에 이런저런 볼 것들이 많다고 해서였다. 역시 설 명절이라 문을 닫은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시간이 고스란히 배인듯한 어두운 색의 건물들에는, 평일의 저녁에 왔다면 참 재미있겠다 싶을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옷가게, 카페, 술집 등등..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간판에 태극기를 박아 넣고 제주와 하르방이라는 단어를 넣은 두유 집인지 두부집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식당이었다. 제주와 대만이 멀지 않구나 하는 인상의 두 번째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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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이 되는 아들 녀석은 벌써부터 발이 아프고 힘들다고 울상이었다. 우리의 여행이 그랬다. 렌트를 하지 않는 한,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는 여행이었다. 사실 나도 첫날부터 다리가 좀 버거웠다. 일상에서 나름 운동을 한다지만, 진료실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대부분인 생활에서 갑자기 많은 시간을 걷는 여행으로의 전환은 다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참고 걸었다. 아들 녀석에게는 길을 걷다가 보인 버블티 가게에서 버블티 하나를 입에 물린 뒤 걷게 했다. 어차피 택시나 어떤 교통수단도 타기 애매한 거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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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문창원구는 주차빌딩과 현대감각의 문화 쇼핑공간이 있는 신축 빌딩과, 젊은 작가들이 주를 이루는 모던한 스타일의 공방이 입주한 오래된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외 전시공간과 광장, 호수 산책로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입구로는 푸드트럭 몇 대가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송산문창원구 한 공간만으로도 넉넉한 구경거리와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 낸 생활친화적인 소품들을 쇼핑하며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객이었다. 이 곳에서 무얼 사거나 즐기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서점이 인상적이었으나 나는 한자로 구성된 중국어를 전혀 알지 못했다. 구경을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언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때로는 상대를 바라봄에 있어 커다란 장벽이었다. 그들의 현대문화에는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 많았지만, 유일한 장벽인 언어와 문자 때문에 나의 관심을 그들 사이로 밀어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많이 아쉬웠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호수공원을 산책하였다. 식생은 남쪽의 나라답게 덩굴이 늘어진 커다란 활엽수들이 산책로 옆으로 서 있었고, 호수 주변의 식생들은 우리와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차림은 나의 반팔 셔츠부터 해서 패딩까지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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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서 지하철역으로 가서 숙소인 동문 역에서 내렸다. 저녁을 해결해야 했는데 문을 연 식당들엔 하나같이 긴 줄이 서 있었다. 점심도 늦게 먹은 터라 저녁을 느지막이 먹으러 오면 줄도 별로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걸었다. 주변에 있다는 야시장 구경을 가기로 한 것이다. 대만은 야시장이라는 어떤 공식은 벌써부터 마음에 기대를 채우고 있었다. 지도 앱을 켜고 생각보다 멀리 있는 야시장을 조금 헤맨 뒤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한산했다. 해가 진지 이미 오래전이고 우리는 조금 북적이는 풍경과 다양한 먹거리들을 기대했는데, 먹거리는 한 두 개 정도가 보였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없었다. 설날이라 문을 닫은 집이 많았고, 야시장이라지만 이 곳은 규모가 너무 작은 탓이었다. 기대는 살짝 실망으로 바뀌어서 서너 블록이 전부인 야시장을 다시 돌아 나와 허탈한 마음으로 택시를 잡아 다시 동문 역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어디선가 총소리 비슷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무슨 일인가 둘러보다 문득 한족은 설날에 폭죽을 터뜨리는 게 풍습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치 총격 시가전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연발의 폭죽 소리는, 우리가 다른 문화권에서 설을 보내고 있음을 분명하게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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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타이펑과 까오지는 한 블록에 모퉁이를 돌면 바로 붙어있듯 위치한 딤섬집이다. 두 곳의 주인장은 한 스승 아래에서 딤섬을 배웠다고 했다. 딘타이펑은 문을 닫았고, 까오지는 문을 열었다.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집이라고도 해서 우리는 대기줄이 조금은 줄어든 까오지에 들어섰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5분 안에 자리가 났고, 우리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늦은 저녁을 시작했다. 까오지의 딤섬은 맛있었으나 피가 두껍고 밀가루 맛이 많이 났다. 거기서 처음 마셔본 타이완 골드메달 맥주는 조금 밍밍하면서도 입에 잘 들러붙는 듯한 맛이었다. 전체적으로 만족한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타이완 맥주와 생소한 현지의 군것질거리들을 샀고, 과일가게가 있어 타이완에서 맛볼 수 있다는 석과 라는 과일 하나를 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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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 하면 힘들다며 불만이 많은 아들 녀석은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침대에 주저앉았고, 아내는 참고 참았던 감기 증상이 쏟아지듯 발현되었다. 집에서 챙겨 온 감기약을 먹이고 눕게 한 뒤에, 나는 사온 맥주를 감초를 넣어 양념하였다는 수박씨와 함께 마셨다. 수박씨라는 게 호박씨 같이 생겼는데 양념 맛도 조금 생소하고 대체 이걸 어떻게 먹는 건가 싶을 만큼 속씨도 거의 없고 껍질만 엄청났다. 석과는 버석한 느낌이 있고 검은 씨앗을 품은 부드럽고 달달한 속살이 인상적이었다. 취기가 돌기 시작했고, 텔레비전 영화채널에서는 익숙한 할리우드 배우들이 나오고 있는데, 영어음성도 중국어 자막도 모두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보다 한 시간 늦게 시간이 흘렀고, 몸은 한 시간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대만 여행의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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