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1.

by 전영웅

나는 팀의 네 번째 선수였다. 총 다섯 명의 팀에 부장 자격으로 출전했다. 중견으로 출전한 내 앞 선수의 시합을 보며 몸은 긴장하고 있었다. 얼굴을 감싼 호면 안은 내 긴장된 숨소리로 가득했다. 긴장을 풀려고 몸을 움직여보고 가볍게 제자리뜀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앞의 시합이 종료되었다. 나는 대기 위치에 서서 시합장을 나오는 앞 선수와 호완을 낀 손을 부딪히며 교체 인사를 하고 시합장으로 들어섰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한 발 두 발 세 발 나가며 죽도를 꺼내 드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긴장이 살짝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중단세를 하고 가만히 서서, 심판의 시작 소리를 기다렸다. 다시, 얼굴을 감싼 호면 안으로는 내 나직한 숨소리가 가득해졌다. 순간 심판의 시작 소리가 들렸고, 나는 기합소리 한 번 크게 지른 뒤에 몸을 움직였다.

대진표를 확인하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출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구나 하는 것과, 두 번째는 첫 상대부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상대는 선수 출신들이 모여 활동하는 검도 동호회였다. 나와 같이 뒤늦게 건강을 위하고 재미를 위해 검도하는 사람들의 실력과는 결부터 다른 상대들이었다. 게다가 우리 도장에서 출전하는 선수들은 나와 비슷한 이유로 검도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진표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흥미보다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만 가득해졌다. 팀전만 운영하는 도민체전이라 개인전도 없고 출전팀도 별로 없어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잠깐 출전하고 마는 일도 없을 테니 시합은 금방 마무리되겠구나 하는 예상이 나름의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시합을 마치면, 다시 집으로 달려가 해야 할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개인적 입장에서는 검도를 재미만으로 하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제대로 해 본 운동이 없으니, 뒤늦게 재미를 붙인 검도를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병원 일과 집안일과 이런저런 자잘한 일상 속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도장에 출석해서 수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 번 수련만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마흔이 넘은 육체에 점점 늘어나는 한계는 그에 비례하는 노력의 증량을 요구했다. 시간의 한계와 육체의 한계 속에서 내가 보탤 수 있는 것이라곤 짬짬이 나는 시간을 활용하여 운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병원 건물 맨 위층의 헬스장에 등록하여 운동을 했다. 예전엔 스트레칭과 근력운동 위주로 하다가 지난가을부터는 운동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검도를 잘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설정하고 나름의 운동을 진행했다. 중량을 얹은 스쿼트와 윗몸일으키기, 삼두근과 상완근 운동과 종아리근 운동을 주로 시행했다. 코어와 하체운동 위주에 가벼운 팔운동을 한 셈이었다. 석 달 정도를 이어나가다가 문제가 생겼다. 우측 어깨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삼두근 운동을 하다가 자세 문제로 생긴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지난겨울, 집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우측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발목보조기를 차고 한동안 운동을 쉬어야 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다행히 발목은 운동이 가능할 정도로 나았고, 검도는 우측 어깨를 크게 쓰는 운동은 아니어서 무리 없이 수련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몸은 이제 손상에 취약해져서 수련을 하면 할수록 우측 어깨와 발목은 다시 조금씩 아파오고 있었다. 주중에 수련과 운동을 하고 통증이 오르면 주말에 좀 쉬어서 나아지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시합 2주 전부터는 더는 통증이 악화되면 안 될 것 같아 근력운동을 상완근 운동으로 한정하고 나머지 시간을 러닝머신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며 체력관리에 집중했다. 사실, 점심시간 시간을 낸다는 것이 40분이면 많은 것이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상대는 처음 칼을 맞대는 선수였다. 검도라는 영역이 그리 넓지 않아서 도장 교류 몇 번, 시합 출전 몇 번이면 대략 누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이번에 상대하는 선수는 잘 모르는 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나름의 수련 결과를 이제 막 시작한 시합에서 4분 이내 쏟아부어야 했다. 내가 나를 가늠하는 객관적 잣대일 것인 데다, 나를 바라보는 수십 명의 관원들이 있기에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의 교감신경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몸을 움직였다.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일부러 고르며 상대에 조심스레 다가가며 거리를 가늠했다. 내가 상대의 머리를 먼저 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내가 어떻게 공격하고 방어하며 경기를 운영했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머리 치기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연습해도 가장 어려운 것이 머리 치기였다. 그 자격지심이 시합장에서도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련 때처럼 시험 삼아 머리를 치러 들어갈 수 없다는 것만 의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공격이 가능한 거리 가늠이 아직은 서투르다는 것 역시 의식되었다. 그러는 상황에서 내가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목이라도 치고 들어가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공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서로의 코등이를 맞대고 붙은 채 눈싸움과 어떻게 다시 공격 유효거리를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 그리고 순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것은 순간순간의 본능적 움직임으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서 나올 본능적 공격과 방어는 그간의 수련으로 쌓인 몸의 반응으로 가능해진다. 서로 간 몇 번의 공격과 코등이싸움이 오가다가 거리가 멀어졌고, 다시 나는 머리를 치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순간 상대가 내 머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찰나, 무의식적으로 받아 허리 치기로 대응했다. 순간 눈 앞의 심판이 청색 깃발을 높이 쳐들었다. 나는 청색 띠를 등에 메고 있었다. 아, 내가 허리 치기가 성공했구나..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고 다만 신기했다. 내 허리 치기는 수련할 때마다 내가 생각해도 어색했고, 이제껏 허리 치기로 점수를 따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무의식이자 반응적으로 대응한 허리 치기가 점수가 된 것이었다. 기쁘기보다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 판에서도 경기 운영은 별다르지 않았다. 거리 가늠의 고민과 코등이싸움의 반복, 휘두르는 죽도의 빗나감과 허공에서의 어설픈 움직임, 나아가지 않는 몸, 가빠지는 호흡과 그에 비례해서 급격하게 지쳐가는 체력.. 4분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극도의 흥분상태인 교감신경은 나의 시야를 한껏 좁혀서 안 그래도 호면에 좁은 시야를 상대방의 눈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치고받기를 몇 번 하다가 어느 순간 팔이 살짝 올라간 상태에서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잠깐 멈칫했던 것 같았다. 그 순간을 노리고 상대의 죽도는 나의 오른 손목에 내려와 꽂혔다. 동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승부판은 이겨야겠다는 욕심으로 더욱 긴장되었다. 긴장은 조급함이 되었고, 나는 여기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 했다. 거리 가늠, 머리 치기 등의 고민은 사라져서 이제 머리는 백지가 되었다. 공격에 공격, 순간의 방어.. 거리를 주지 말고 공격해야 한다는 강박.. 기억에 없는 수많은 몸의 움직임 안에서 한 번은 손목을 가격했던 것 같고, 한 번은 머리를 쳤던 것 같았다. 그러나 심판들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공격이 유효했다는 나의 주장이 담긴 기합만이 두어 번 울리다 말 뿐이었고, 공방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리가 생겼고 주변이 고요해졌다. 중단 상태로 칼을 맞댄 상대의 눈빛과 내 눈빛만이 마주했다. 다시, 머리 속에서는 ‘내가 상대의 머리를 치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에 고민이 얹혔다가 사라지자마자, 상대가 내 머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나 역시 무의식 상태의 본능적 반응으로 받아 허리 치기로 대응했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죽도가 부드럽게 밀려 나아갔다.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심판의 청색 기를 든 팔이 올라갔다. 어? 또 점수가 된 건가? 싶어 둘러보니 심판 셋 모두 청색 기를 든 팔을 높이 들고 있었다. 숨과 심장박동이 극도로 차오르는 상황에서 다는 또다시 당황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몸은 급격하게 긴장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긴 것이다.

나는 이겼지만, 팀전은 패했다. 예상대로이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내가 상대한 선수는 처음이라 알 수 없지만, 상대팀의 대부분은 선수 출신이었고, 우리 팀의 대부분은 선수 경험이 없는 일반팀이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결과에 대한 희비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기량을 위해 이제껏 노력했던 시간들이 적절하게 녹아들었고, 그간에 생긴 어깨와 발목의 통증은 시합 운영에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어리둥절할 뿐이다. 나로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허리 치기로 점수 두 번을 모두 얻어냈다는 점 때문이다. 어렵기도 하고, 점수도 잘 되지 않는 허리 치기가 어떤 이유로 점수가 된 건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그러나, 팀이 질 수밖에 없는 이유, 시합이 오전 안에 금방 마무리될 정도로 축소된 검도의 현실은 아쉽기만 하다. 선수 출신들이 일반 대회에 나오기까지는 몇 년 기간 동안 출전 제한을 둔다지만, 선수로서의 기량은 나름 평생의 자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인들이 상대하기엔 정말 버겁다. 문제는 선수 출신들의 대회 출전이 아니고, 그만큼 검도인구가 없기 때문에 대회들이 점점 선수 출신들만의 승부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도인구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 선수 출신과 일반 동호인이 적절하게 섞이며 재미있는 승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검도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실감하면서 대회에의 재미 역시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검도대회 자체도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데다, 단체전만 운영하는 도민체전 같은 경우는 오전의 잠깐으로 마무리되고 만다는 사실도 검도의 재미에 허탈함을 뿌리고 만다. 나는 그런 일련의 사실들이 아쉽다. 하루 종일 기다리다 단체전 개인전 잠깐 뛰고 마는 지루함이 있긴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출전해서 그만큼 다양한 칼을 보여주는 재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선수 출신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을 대진표 발표부터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으나, 더 큰 아쉬움을 피할 수 없는 시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발전해야 함을 느끼는 계기였고, 내가 속한 환경은 무언가 회복이 필요함을 느꼈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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