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중반에 포도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1층 침실 앞 데크를 둘러싸서 은밀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기역자 돌담 안쪽에 심었다. 사방이 가려지고, 바람만 통하는 공간이라 햇볕이 조금 아쉬운 공간이다. 덩굴이 자라서 볕을 볼 정도로 높아지면, 큰 무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위치를 정했다. 평범한 품종보다는 와인 재배에 사용되는 품종을 생각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제주에서 포도가 잘 될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활용도가 적은 공간에 배치하여 공간을 채우면, 나름 아쉽지 않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있었다.
마당이 딸린 주택을 지으면서, 우리 부부는 유독 유실수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니, 유실수 생각은 아내가 더 많았다. 나는 조경에 잘 어울리는 나무라면 상관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조경에 잘 어울리는 나무를 알지 못했다. 그런 나무보다는 유실수가 고민도 덜 들고 선택도 쉬워서, 공사업체와 마당 조경을 논의할 때부터 우리는 유실수를 고집했다. 그렇게 마당에 처음 심어진 나무가 석류, 모과, 감나무, 블루베리 각 한 그루씩이었고, 제주의 상징적 유실수인 귤나무를 네 그루 심었다. 그에 더하여 심어진 유실수 아닌 나무는 단풍나무 두 그루와 은목서 한 그루였다.
조경용으로 심어진 나무 주변으로 마당의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니, 마당 곳곳에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는 자리들이 몇몇 보였다. 오일장의 나무 농장에서 나무를 사서 그 자리들을 나무들로 채웠다. 매화나무 두 그루, 홍매화 한 그루, 블루베리 6그루, 레몬나무와 하귤나무 한 그루가 마당의 식구로 자리 잡았다. 집 뒤편의 공터에는 배나무가 심어졌다. 실은 배나무를 심을 생각이 아니었다. 조경 목적으로 심은 감나무가 토종감이어서 떫고 맛이 별로일 거라는 이야기에, 대봉감을 심자고 아내가 제안했었다. 그래서 나무 농장에서 일 년생 대봉감 묘목을 사서 뒤뜰에 심은 것인데, 그게 자리를 잡고 줄기를 뻗더니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해서 나무를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감나무가 아니고 배나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이유로 우리 집엔 배나무가 자리 잡았다.
나무만 신경 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당을 허브로도 채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집을 지었지만, 구획 밖의 삼면은 공터였고 서쪽만 언덕진 보리밭이었다. 삼면의 경계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구획선에 우리만 임의로 담을 쌓을 수도 없어서 고민한 것이 허브로 경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허브농장을 하는 형님에게 부탁해서 허브 묘목들을 구했다. 동쪽과 남쪽 경계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로즈마리를 50센티 간격으로 심었고, 북쪽 경계로는 라벤다 묘목을 같은 간격으로 심었다. 침실 전면을 둘러싼 돌담 아래로는 타임을 심었고, 귤나무 아래로는 세 가지 종류의 민트를 섞어 심었다. 7년생 블루베리 나무 뒤편으로는 레몬밤과 캐모마일을 심었다. 천성이 잡초라서 그런지, 허브들은 무섭게 자랐다. 3월 중순에 심은 로즈마리는 8월을 넘기자 무릎 높이까지 자라 제법 경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북풍에 괜찮을까 싶었던 라벤다도 바람을 이겨내며 나직하고 무성하게, 봄이면 보랏빛 꽃을 피웠다. 민트를 심을 때엔 포트 채로 심으라는 형님의 조언을 무시하고 포트를 벗기고 심은 세 종류 민트는 땅속뿌리줄기를 엄청나게 뻗더니 마당 곳곳에서 싹을 올려댔다. 캐모마일은 어떠한가, 처음 심었을 때엔 오손도손 모여 아기자기한 꽃을 피우는데, 그것은 그대로 바람에 날리는 씨앗들이 되어 바람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싹을 내어 집터 아무데서나 줄기를 내고 꽃을 피워댔다. 레몬밤은 그대로 향기와 이파리 왕성한 수풀이 되어버렸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마당에 심을 나무를 고민했다. 한 해가 지나자 네 그루의 귤나무 중 두 그루가 죽었다. 태풍에 홍매화와 단풍나무는 뿌리째 넘어져 다시 세워 심었지만 결국 죽었다. 죽은 나무들을 거두고, 여기저기의 공간을 정리하자 나무를 심을 만한 자리들이 보였다. 죽은 귤나무 자리에는 대추나무와 자두나무를 심었다. 동쪽의 공터에 집이 지어지며 우리 집과 분명한 경계가 생기자, 그곳에도 나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앵두나무와 살구나무, 그리고 무화과를 심었다. 허브농장을 하던 형님은 이사를 하면서 키우던 허브나무들이 아깝다고 우리더러 적당한 가격에 가져가라 하셨다. 그렇게 티트리 나무와 레몬티트리나무, 유칼립투스 한 그루씩 우리 마당으로 옮겨졌다. 오일장이 열리면 종종 장 보러 다니던 아내는 유실수 생각이 많이 났는지, 사과나무 두 그루를 사 와서는 나더러 심어달라 했다. 두 나무는 남쪽 경계에 조금 붙여 심었다. 일본 여행 때 고베의 길거리를 다니는데 가로수들이 올리브나무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제주에 돌아오자마자 올리브나무를 알아보고 두 그루를 사서 마당에 들였다. 동쪽 공터에 집을 지은 가족의 입주선물은 배롱나무 묘목이었다. 그것은 침실 돌담 바깥쪽 타임 덤불 사이에 심었다. 우리 마당은 지금 거의 모두가 유실수인 나무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올해 겨울은 매우 혹독했다. 폭설과 추위가 마당에 자리한 것들을 혹독하게 휘몰아쳐 지나갔다. 그 결과, 잘 자라고 있던 블루베리 네 그루가 동사했다. 귤나무도 뿌리는 견뎌냈지만, 굵은 줄기 두어 개가 죽었다. 마당 한 켠의 귤나무 묘목 하나도 한 해를 넘겨 겨우 자리 잡다가 겨울을 이기지 못했다. 북쪽 경계의 라벤다들도 거의 모두가 말라버렸다. 봄이 되자마자 정리가 필요했다. 북쪽 경계의 라벤다들은 모두 걷어냈다. 돌담이 생긴 동쪽 경계의 로즈마리들도 걷어냈다. 로즈마리가 너무 많은 데다가 동쪽 경계의 로즈마리들은 텃밭 안에 위치해서 텃밭 공간을 넓히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죽은 블루베리들을 걷어내었는데, 그 자리들은 우선은 빈 공간으로 두기로 했다. 나무마다 무성해진 가지를 전정해주고, 텃밭을 정비하면서 마당의 공간을 전체적으로 정리했다. 더 이상 나무를 심을 공간은 없었지만, 침실 앞 돌담 안의 공간 활용이 아쉬워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포도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이미 심은 나무들 중 죽는 나무가 생기지 않는다면, 아마도 집 마당에 나무를 심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사실 나무를 심는 일은 공간적으로도 그렇지만 더 이상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간은 마당이라는 공간에 나무를 채울 생각만 했지, 나무를 가꾸거나 관리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으른 텃밭, 게으른 정원을 표방하며 내가 한 것이라고는 약간의 비료를 주고 가물 때면 종종 물을 주는 정도였다. 그렇게 게으르게 가꾸다 보면, 나름 유실수라고 거두게 되는 열매들이 생겼다. 석류에서는 석류 몇 개, 매화나무에서는 청매 조금, 블루베리에서는 블루베리 몇 알, 앵두 몇 개, 살구와 무화과 몇 개, 그리고 귤 조금과 감은 조금 많이.. 적당한 맛의 적당히 먹을 만한 양의 수확이 생겼던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수확을 손에 쥐어 보면, 생각이 조금 많아졌다. 그것은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고 신경 쓰면 좀 더 맛있고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아니었다. 왠지 모를 나무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이었다. 좀 더 가지를 쳐주고, 이른 봄에 거름 좀 더 주고, 가물면 물을 좀 더 자주 주었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병충해 방제를 해 주었다면 이렇게 괴롭고 힘들게 열매를 맺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나무들이 맺는 열매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드는 열매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내 집의 마당에서 거두는 열매들은 하나같이 험난한 전쟁터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것 같은 처절함이 느껴졌다. 물론 마트나 시장의 열매들도 맛과 모양을 위해 비정상적으로 다루어진 것들이지만, 허약한 비만과는 다른 처절한 깡 마름 같은 느낌이 우리 집 마당에서 거두어지는 열매들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들을 물에 살짝 씻어 입에 넣는 일은 작은 경건함을 요구하는 행위였다. 달지 않아도, 밀도 있는 맛이 입 안에 퍼지는 향연이었다.
3년생 포도는 내 키 조금 안 되는 덩굴 중간과 끝에서 브이자 모양으로 이파리와 어린 포도를 내고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 두 그루를 심고 옆으로 비료를 뿌려두었다. 이 녀석들에게는 단단한 지주대를 세워주어야 한다. 적당한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두 개의 기다란 지주대를 평행하게 걸쳐서 덩굴이 그늘을 만들게 할 생각이다. 그 아래로 매달리는 포도를 아들 녀석과 친구들이 따서 먹을 수 있게 하고 싶다. 비료는 넉넉히 준비해서 마당의 나무들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내가 여기서 더 게을러지면, 마당의 나무들은 그들의 번식 본능에 따른 열매들을 더욱 버겁게 맺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무 주변의 잡풀들을 정리해 주었고, 혹한을 견딘 나무들이 제대로 싹을 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폈다. 매화를 비롯해서 살구와 배와 사과나무는 이미 꽃을 피웠다. 음력 3월이 시작되었고, 나는 텃밭농사의 시작과 더불어 내 집의 나무들에 주어야 할 손길이 점점 많아짐을 느낀다. 봄은 단순히 따뜻하고 생기 있는 계절이 아니다. 인간의 공간에서는, 자연함의 순리에 사람의 손길을 더해야만 그 아름다움이 확연해진다. 마음에 즐거움과 기대가 생기는 노동이 시작되는 계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