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4.

by 전영웅

휴일 아침, 아들과 자전거를 탔다. 집에서 가까운 해안도로를 달려 작은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총 32킬로미터, 두 번째 장거리 라이딩을 경험한 아들은 조금 힘들어했고, 아들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간 나에게는 적당한 마실 수준의 라이딩이었다.

제주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도 내가 해 보고 싶은 경험 중의 하나였다. 바람 없는 맑은 날, 바다를 옆에 둔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멋졌다. 입도 후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해보며 배우고 적응하던 때, 자전거는 조금 늦게 시작한 취미였다. 시작은 검도 도장의 이전이었다. 도장이 집 가까운 곳에서 삼양으로 이전하자, 나는 운동하러 가는 길을 차가 아닌 자전거로 달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죽도를 휘두르는 운동을 하러 가는데, 이왕이면 오가는 길도 운동으로 채우면 좀 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소개받은 자전거 매장에 가서 알루미늄 휠의 가성비 괜찮은 로드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그 자전거로 아침마다 왕복 4킬로씩 집과 도장을 오가기 시작했다.

짧은 거리를 자전거로 다니다 보니, 좀 더 긴 거리를 달리고 싶어 졌다. 그래서,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오후 일찍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건입동에서 용담해안도로와 애월 해안도로, 귀덕 해안도로를 지나 협재 지인의 카페까지 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유랑 수준이었지만, 그땐 나름 힘들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지인의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 한 잔 하며 한 시간여를 앉아 있다가 다시 같은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등 바람과 맞바람에서의 라이딩이 어떻게 다른 지도 그때 깨달았다. 왕복 60여 킬로였다.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부터 오랜 시간 달려볼 만한 구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화로를 달려 상창을 찍고 돌아오기도 했고, 서일주도로를 달려 모슬포를 찍고 오기도 했다. 산록도로에 올라 애월까지 내달려 해안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는 제주에 놀러 온 친구가 숙소가 월정이라길래, 일요일 아침 일찍 보자 하고 자전거로 달려 월정으로 그 친구를 보러 가기도 했다. 자전거는 점점 중독 수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독증상은 멈추지 않고 욕심을 자극해서 도 일주와 성판악로, 1100 도로를 탐하게 만들었다.

어느 여름날에 나선 도 일주는 1박 2일의 일정으로 시작했다. 토요일 퇴근 후 이른 오후에 출발해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 대평리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계속 달려 저녁 즈음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취감이 대단했다. 몸은 힘들지만 가슴은 만족으로 뛰었으며,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지 않고 바다를 내 오른편에 두고 앞으로만 달리면 다시 집으로 올 수 있는 이 섬 공간이 너무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다시 욕심이 올라왔다. 그럼 이 섬을 하루 만에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 도전에는 새벽 4시에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할 때엔 가까운 편의점에서 이온음료와 에너지바를 사서 마시고 뜯으며 달렸고, 아침과 점심은 컵라면으로 때우고 오로지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반시계 방향으로 달리는 데만 집중했다. 그렇게 달리니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6시 반이었다. 달리면서 실행한 위치추적 앱을 보니 달리는 시간만 총 13시간 반이었고, 거리는 231킬로미터가 찍혀 있었다. 몸무게는 하루 새 딱 3킬로가 빠져 있었고, 격한 성취감과 가족들의 축하 속에 저녁을 술과 고기로 즐겼더니 몸무게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루 동안의 도 일주 라이딩은 종종의 이벤트로 즐기는 운동이자 취미가 되었다. 그렇게 네 번을 더 돌았고, 다섯 번째 라이딩에서는 무릎 통증이 심하게 와서 월정에서 아내에게 부탁해 자전거를 차에 싣고 돌아왔다.

성판악로와 1100도로 라이딩 역시 도전 대상이었다. 성판악 주차장은 해발 750미터였고 1100도로는 말 그대로 1100미터였다. 처음엔 성판악로에 도전했다. 로드로 경사를 오른다는 것은 자세와 요령을 잘 감안한 힘의 운영을 요했다. 바다에 가까운 건입동에서 황사평을 따라 올라 월평을 거쳐 첨단단지로 올라가 성판악로에 진입했다. 거기서부터는 끊임없는 오르막이었다. 제주마 방목지를 지나 사려니 숲 입구를 거쳐 꾸준한 오르막에 진입했다. 사려니 숲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까지는 정말 힘들었는데, 이후부터 성판악까지는 적당한 경사가 꾸준하게 이어져 오를만했다. 그렇게 성판악에 오르니 성취감은 있는데 두 시간을 조금 넘는 짧은 시간 동안의 라이딩이라 약간의 아쉬움도 생겼다. 내려가는 길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엔 1100 도로였다. 건입동에서 산천단으로 올라 산록도로를 타고 어승생으로 진입한 뒤에 1100 도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1100도로는 정말 가팔랐다. 중간에 예정 없이 쉬기를 반복했고, 준비한 이온음료가 부족해서 애를 먹었던 코스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가 1100도로 휴게소에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3시간 30여분이었다. 도 일주에 이어 라이딩의 양대 업힐 코스를 정복하고 나니까 모든 걸 이룬 것 같은 만족이 몰려왔다. 그래서, 그다음엔 동시에 두 코스를 달려보기로 했다. 우선 성판악로를 올라 성판악 주차장을 찍고, 그대로 서귀포 방향으로 내려가 제 2 산록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탐라대 사거리에서 1100 도로를 타고 오르기 시작해서 1100도로 주차장을 찍고 내려와 제 1 산록도로를 타고 산천단을 거쳐 집으로 오는 경로였다. 총 6시간 반이 걸렸고, 정말 힘들었던 코스로 기억하고 있다.

달려 볼 만한 곳들을 다 달리고 나니 이제는 로드 자체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당시의 로드는 알루미늄 휠에 꽤 괜찮은 기어가 달린 브랜드 제품이었다. 좀 더 좋은 로드로 달리면 기록도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치기가 생겨 가벼운 하얀색 카본 휠에 좀 더 나은 기어를 장착한 맞춤 로드로 바꾸었다. 그리고 신이 나서 해안도로를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여러 운동을 동시에 한 때문인지 내 우측 무릎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도 일주 기록을 경신하고 싶었지만, 가볍게 쭉쭉 나가는 새로운 자전거를 타고도 무릎 통증 때문에 결국 도 일주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아내의 구조를 받아야만 했다. 업힐은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볍게 금능해변을 찍고 돌아오던 어느 휴일 아침의 라이딩에서, 주차된 차량을 피한다고 도로와 갓길을 넘나들다가 갓길 분리 화단을 들이받고 공중회전한 채 바닥에 어깨와 팔이 짓눌려버렸다. 다행히 몸은 충격 외에 크게 다친 데는 없었으나, 앞바퀴 타이어가 응급처치도 불가능할 정도로 터져버렸고, 휠도 휘어져버렸다. 수리를 맡기고 잠시 라이딩을 쉬는데, 사고의 충격이 몸에 각인되었는지 그 뒤로 라이딩에 대한 작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트라우마를 극복해보겠다고 짧은 거리를 가끔 달려보고, 좀 더 적극적으로 타보겠다며 페달과 신발을 클릿셋으로 바꿨다. 하지만, 첫 시험 주행에서 클릿 분리를 깜빡한 채로 자전거에서 내리려다가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며 트라우마는 좀 더 커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에피소드를 겪은 지 일 년여가 지났다. 노력은 하고 있지만, 로드는 창고에서 좀처럼 햇볕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들 녀석의 한없이 부족한 운동시간을 내가 나서서 챙겨주고 싶었다. 턱이 두 개가 되고 배는 흘러내릴 것 같은 비만체형이 된 아들의 몸에 나 역시 책임을 느꼈던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기 시작할 즈음, 자전거 매장에 가서 아들 것과 내 것의 생활형 MTB를 구입했다. 성장기라 맞는 자전거를 찾기 어려운 아들에게는 잘 관리된 여성용 중고 MTB를 사 주었고, 나는 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MTB를 구입했다. 로드로는 아들과 속도를 맞추기 어려웠고, 이제 막 자전거를 타는 녀석과 달리는 데 내게는 굳이 좋은 자전거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 부근의 한적한 천변에서 반려견과 함께 시험 주행을 해 보았는데 아들은 꽤 잘 타고 있었다. 그래서, 4월의 어느 날에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귀덕 해안도로에 가서 해안도로 왕복 라이딩을 했다. 경사가 없는 적당한 거리에서 아들은 즐거워했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5월의 시작 어느 날에 아들과 나는 집에서 시작해서 하귀를 거쳐 애월 해안도로의 경사로를 지나 곽지와 귀덕까지 찍고 돌아오는 총 32킬로의 라이딩을 했다. 아들은 좀 힘들어하고 엉덩이도 아파했다. 하지만 성취감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뒤에서 따라가며 바라 본 안장을 거의 뒤덮는 저 펑퍼짐한 엉덩이를 없애주어야겠다 생각하니 힘들고 엉덩이 아픈 건 애써 무시해야 한다는 다짐이 생겼다. 다음번엔 60킬로 코스를 계획해서 길을 나서야겠다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좀 더 아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일들에 치어 자주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책임감이 더 커진다. 차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풍경과 느낌이 자전거에는 있다. 바다를 옆에 두고 페달을 밟는 일에의 성취감이 클수록 아들 녀석의 살도 빠질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나도, 로드를 타고 도 일주에 나서는 모습을 서서히 구체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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