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생활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뛰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도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내와 나의 생각들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공간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마당의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어 일 년마다의 농사를 운영하고, 심고 싶은 나무들을 심으며, 적당히 너른 마당에는 반려견을 들여 키우는 충만한 삶의 시간이었다. 제주에 산다면 살아보고 싶었던 삶을 나는 지금 누리고 있다. 그것은 직업이나 다른 현실 여건 모두를 넘어선 최우선의 선택이었다. 합리적 선택에 현실성과 이상성이 있다면, 나는 이상성을 선택했다. 두 가지 모두를 아우를 능력은 없으니 현실에서는 조금 버겁고 뒤쳐진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주택생활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주택은 우선 춥고 더웠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대부분 위아래와 옆 사면이 다른 주거공간과 맞닿아 있어 냉난방에 유리하다. 그러나, 주택은 아담한 2층 건물이 외부 공기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있어서 겨울엔 난방을 해도 춥고, 여름엔 냉방을 해도 좀처럼 시원해지지가 않는다. 서울의 아파트에 사시는 장인 장모님은 제주에 내려올 때마다 서울보다 더 춥거나 더 덥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제주에 내려와서는 5년간 아파트 생활을 했으니 그 차이를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아늑함 면에서도 두 공간의 차이는 크다. 물론 아늑함은 공간의 구성과 규모에서 비롯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주택은 아파트보다는 공간 활용에 여유가 크기 때문에 아늑함은 덜한 특징이 있다. 한 마디로, 주택생활은 좀 더 거칠고 자연에 노출면이 많다.
주택은 관리의 문제가 생각보다 크고 중요하다. 따라서, 주인의 부지런함과 능력이 집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주택은 사람의 시간과 손을 필요로 한다. 시간이 지나며 여기저기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와 기술자를 불러 해결할 것인가의 차이는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는가와 수리비용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집주인이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면 기술자를 부르거나 건축업체에 수리 요청을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이런저런 자잘한 문제에까지 타인의 손에 의존한다면, 관리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고 때로는 수리 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집주인이 자잘한 문제들을 직접 해결할 수 있다면 부담은 줄어든다. 설령 수리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다시 작업하며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자잘한 집수리나 관리방법을 배운 적은 없었다. 집을 짓고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다 보니 창고에는 사들인 도구들이 하나하나 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들인 것이 목장갑이었고, 그다음은 전동 드라이버였다. 이후로 망치, 펜치, 스패너, 철사, 에폭시 접착제, 실리콘, 사다리 등등이 창고 안에 구비되었고, 넓을 줄 알았던 창고는 빼곡히 들어차서 사람이 드나들기 힘든 수준으로 장비가 쌓였다.
제주는 바람이 드세다. 바람에는 소금기가 실린다. 내가 사는 집은 제주시 외곽에서 일주도로 안쪽으로 많이 들어온 시골 동네에 위치한다. 그러나, 2층 데크에서 바다가 보이니 북풍이 불어오면 바람에는 어김없이 소금기가 실려온다. 소금기는 금속으로 된 자재라면 예외 없이 바람의 흔적을 남기며 손상시킨다. 2층 데크의 레일이 그러했다. 철로 만든 레일은 녹방지제를 두텁게 바르고 위로 페인트를 두텁게 발랐어도, 소금기를 머금은 북풍에 벌건 녹을 피어냈다. 레일의 위치에 따라 바람을 직접 맞은 곳과 바람을 덜 맞는 부분의 녹의 차이는 매우 선명했다. 2층 외부 바닥에 깔린 데크 목재도 마치 바람에 날려 부식되듯 칠이 벗겨지고 거칠어졌다. 3월이 시작되며, 나는 레일 도색작업과 데크목에 오일스테인을 바르는 일을 시작했다. 레일 도색작업은 녹이 오른 부분을 페인트와 녹을 제거하고 녹방지제와 페인트를 다시 바르는 작업이었다. 전동드라이버 끝에 장착이 가능한 빳빳한 금속 솔을 구입해서 레일의 녹과 페인트를 제거했다.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둥근 철심이 여러 층으로 이어진 레일의 구석구석을 보고 작업하는 일은 각도와 자세의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전동 드라이버를 힘 있게 잡아야 하니 손에 느껴지는 진동과 유지해야 하는 힘 때문에 팔과 어깨도 아팠다. 시간도 없었다. 내가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란 일찍 퇴근하는 날 해가 지기 전까지의 한 시간 남짓과 주말뿐이었다. 제주의 봄 날씨란 주체 못 하는 변덕 그 자체이다. 바람은 춥고 거세며, 해가 뜨다가도 구름이 지나간다 싶으면 눈발을 흩날렸다. 그런 상황에서 해가 있다고 해도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두세 시간을 작업하다 들어오면 몸에는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반 정도를 가능한 시간에 꾸준히 작업하니 레일 재도색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뿌듯했다. 그러나, 그런 만족도 잠시 뿐이었다. 마무리한 지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작업했던 부분에서 다시 벌건 녹이 점점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오일스테인 작업도 그렇게 가능한 잠깐의 시간을 활용하여 작업했다. 바람은 그다지 문제 되지 않았다. 오일스테인 작업은 비가 관건이었다. 작업을 하려면 비가 내렸고, 비가 내린 후에는 데크 목재가 마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바람은 목재를 말리는 데 도움은 되었다. 시간과 여건의 가늠 속에서 오일스테인 작업은 붓과 오일만 사두고 본격적인 작업은 시작도 못한 채로 봄을 보내고 있다. 주말만 되면 비가 내리거나 거센 바람이 부는 요즘은 그래서 답답함 반, 강제적인 여유 반으로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창고정리를 대대적으로 해서, 거의 쓰지 않는 물품들은 버리고 입식 테이블을 활용하여 공간 구성을 바꾸었다. 사다리, 잔디 깎는 기계, 자전거들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길고양이와 반려견 라이의 사료와 애견용품 등이 새로 위치할 자리도 만들었다. 창고 문의 손잡이는 북풍을 맞는 면으로 부식이 많이 진행되었다. 이것도 교체해야 한다. 집 주변의 잡초들은 때마다 뽑아주고 있는데, 장인 장모님이 계실 때 대대적으로 작업해주셔서 한결 수월하다. 반려견 라이 녀석은 6개월 사이 성견에 가까울 정도로 성장해서 장난과 애교에 실리는 힘이 커졌다. 마당을 뛰어다니라고 길게 설치해 준 밧줄을 이빨로 끊으려 해서 좀 더 두텁게 이중 밧줄로 교체해주었다. 마당의 잔디는 녀석의 발에 싹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잔디보호매트를 한 세트 구입해서 잔디 손상이 제일 심한 자리에 깔았다. 다행히, 잔디도 살고 라이 녀석도 매트 위에서의 불편감을 많이 덜어낸 듯 보였다. 작년에 이어 제비가 날아들었는데, 작년의 집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자리에 집을 새로 지었다. 배설물과 새끼들 안전을 위해서 집 아래 나무로 받침을 만들어 붙여주었다. 이번에 심은 3년생 포도나무에 지주대가 필요해서 각목과 노루망을 사서 지주대를 제작하여 설치해 주었다. 마을길에서 집까지 들어오는 입구의 잡초들도 무섭게 자라나서, 한 번 제거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내 손을 기다리고 있다. 집 주변 공터에 키높이만큼 자란 잡초들도 어느 정도 관리를 해 줘야 우리 집 마당 안으로 씨를 날리거나 싹을 내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 공간은 어느 한순간이라도 내 손을 요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예술가의 집에 정원이 넓을수록, 예술가의 영감은 시들어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딱 그런 꼴이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바다를 보며 드라이브를 하거나 오름에 올라 가벼운 산책을 하곤 했었다. 집을 짓고 살면서, 퇴근 후 해가 떠 있는 날이면 바로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뒤 호미를 잡거나 삽을 잡는 나날이 되었다. 주말의 여유에는 역시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채 잡초를 뽑거나 텃밭을 관리하고, 때로는 집에 필요한 작업들을 해 나가야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듣던 라디오는 핸드폰 앱으로 실행해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는 라디오로 바뀌었다. 운전에 술을 못 마시는 대신, 노동주로 땀 흘리며 맥주를 홀짝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전체적으로, 나는 전반적인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내가 사는 집을 관리하는 일일 뿐이지만, 5-6일 내내 진료실에 가만히 앉아있어 굳고 답답해진 몸을 다른 노동으로 풀 수 있다는 만족이 있다. 그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 국한된 활동이지만, 진료실에 가만히 앉아서 환자를 마주하며 느끼는 사람의 삶보다 좀 더 깊은 느낌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항상 한정된 시간에 부족함과 아쉬움이 생기지만, 주어진 시간에 작은 성취와 만족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실 내가 처한 직업적 환경적 여건에 집 관리는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면이 많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앞으로 배워나가야 할 것들이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가 원했던 삶을 지금 살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그 삶에 지치지 않고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는 주말 오전에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고 있다. 이 바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나 둘러보아야겠다. 일거리가 있다면 장갑을 끼고, 없다면 가벼이 맥주를 홀짝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