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8.

by 전영웅

4년 전 사들인 지금의 집터 땅 값의 현재 시세를 알아보았다. 사들일 때보다 적어도 5배 이상은 올라 있었다. 건축비용도 4년 전과 비교하면 단위면적당 공사비가 대략 1.5배 정도 상승해 있었다. 저마다 설마 했던 가격은 단시간 내에 현실이 되었고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가격까지 쉽게 도달했다. 평당 천만 원은 제주시내 중심가에서도 불가능하다는 누군가의 판단은, 단시간만에 그리고 너무도 쉽게 틀린 판단이었음을 증명해 냈다. 부동산 가격과 건설비용이 상승한 만큼, 지난 약 4-5년간의 제주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고 들끓었다. 마치 자본의 흐름이 거쳐갈 수 있는 마지막 경유지인 양, 거대한 자본의 소용돌이 안에서 중심을 잃어버린 배와 같았다.

자본의 소용돌이는 풍경과 삶의 변화까지 초래했다. 땅값이 들썩이더니 집 주변의 조용하던 언덕과 보리밭은 하나둘 타운하우스와 4층 빌라로 채워지고 있었다. 좁다란 마을도로 곳곳은 배관을 연결하기 위한 공사로 여기저기 파헤쳐졌고, 주민들이 입주하기 시작하자 동네엔 차가 많아졌다. 내가 사는 곳에서 서귀포까지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길에는 대형 공사차량과 중장비 차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덤프트럭은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쉴 새 없이 흙이나 돌을 실어 나르고 있었고, 적재중량에 트럭이 거북이걸음을 하면 뒤따르는 나는 꼼짝없이 지각을 걱정해야만 했다. 평화로에 차가 많아지긴 했지만, 차가 많다고 해서 막힐 길은 아니다. 차가 막히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딘가에서 사고가 났을 때고, 두 번째는 거대한 중장비 차량이 특유의 느릿한 속도로 한쪽 차로를 차지하고 달리면서 병목현상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중장비 차량이 자주 보인다는 것은 이 섬 어딘가에서 건물 공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출퇴근길만 살펴도 곳곳에는 4층 빌라가 순식간에 세워진다거나, 작은 연립아파트 단지가 세워져 있거나, 넓은 땅에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타운하우스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붙어있는 현수막에는 ‘임대문의’라는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함께 검도를 하는 후배는 바다가 멀지 않게 보이는 언덕지형에 있는 작은 집을 구입했는데, 곧이어 집 앞에 공사가 시작되더니 기다란 모양의 4층 빌라가 바다를 가려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오래전, 고내포구의 오랜 돌집을 빌려 LP음반을 틀어주며 커피를 내리던 카페는 좁고 높은 4층 건물에 바다가 가리어져 더 이상의 정취를 만들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정취를 잃은 카페는 주인도 떠나버리고 한때 국숫집이 들어섰다가 그마저도 사라졌다. 스카이라인을 망가뜨린 대표적 건물이었던 구제주의 칼호텔 건물의 의아함은 몇 년 전 신제주에 들어선 롯데시티 호텔의 도드라지는 높이에 희석되어 버렸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선 산책길의 곳곳에는 크고 작은 공사들이 한창이었다. 그 길에는 이미 공사가 완료된 건물도 많았는데 그중에는 일주도로변에 바다를 충분히 가릴만한 높이의 주상복합건물들이 세 개 들어서 있었다. 내가 사는 마을로 내려오는 내리막 언덕길에 보이던 석양의 바다도 이제는 칼국수집과 카센터가 있는 4층 주상복합건물에 가려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던 주변의 많은 집들은 이제 바다를 볼 수 없게 되었고, 높은 층에 사는 사람들의 내리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어지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4층 정도의 빌라 건물들이었다. 아담하고 낮은 단독주택은 몇 없었다. 이러다가 시골마을까지 빌라촌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건물들은 도에서 제한한 고도를 딱딱 맞추어가며 높이를 올리고 있었다. 저렇게 지어서 각 호마다 사람들을 채울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 들 정도로 너무 많아 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 뉴스 기사를 접했다. 제주도내 미분양 호수가 1100호를 넘어섰다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내가 살며 움직이는 동선 안에서도 고도를 딱딱 맞춘 주거용 건물들이 열심히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본가치 상승의 미친 광풍이 이제 잠잠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부동산 거래가 많이 줄었고, 매물은 많으나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음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너무 급격하고 혼란스러운 변화를 겪은 데다, 자본은 규모를 달리하며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거품을 부풀려 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가끔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그때, 주택을 짓지 말고 4층 원룸 건물을 지어서 세를 주었어야 했다고.. 개인의 토지소유를 허용하고 그것을 재산증식의 목적으로 활용함을 인정하는 나라에서 자신의 땅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무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토지와 건물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를 훨씬 압도하며 가지지 못함이 극복하기 힘든 삶의 단점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노동보다 몇 배 더 가치를 지닌 부동산 자본을 활용하려는 소유주의 욕망이, 하나같이 단조롭고 높이를 채운 주거공간만을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육지 도심 변두리의 신시가지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제주는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하고 파괴적이다. 변화가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부동산과 물가만 상승하면서 임금상승률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생활수준이 형성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노동보다 부동산의 가치가 더 큰 사회에서 이 섬은 전국적으로도 임금 수준이 낮은 지역인데 말이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노동력 없이 벌어들인 가치로 부를 누리는 졸부들이 많아진다. 느리게 걷는 삶의 여유를 찾아 이 섬으로 들어오는 이주민들 역시, 이제는 현실적 준비와 고민 없이는 절대 안착할 수 없는 섬이 되어버렸다. 집과 땅을 가진 입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달갑지가 않다. 모든 것이 상승해버리고 이런저런 규제가 많아지면서, 집을 옮겨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예전보다도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제주의 변화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에 족쇄를 더 무겁게 매달고 있다. 변화를 반가워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규모 자본을 굴릴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운 좋게 편승하여 속칭 ‘치고 빠진’ 사람들뿐이다.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1100 도로를 넘어 도장으로 향한다. 1100 고지를 넘어 제주시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어둔 바다를 수놓은 배들의 불빛과, 밝은 점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 그리고 빛으로 넓게 펼쳐진 제주시내의 풍경이다. 좀 더 가까이 내려가면 시내 한복판에 5개의 빛기둥이 움직임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조형물인가 싶지만, 그것은 건설 크레인의 팔 기둥이었다. 다섯 개의 크레인에 전등을 달아 밤에는 그렇게 빛기둥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그 자리에는 제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여겨질 거대한 건물이 세워질 것이라 했다. 스카이라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높이에 바람마저도 거뜬히 이겨낼 거대한 빌딩이 들어설 것이다. 그런 건물이 정말 제주에 필요할 것인가, 그 건물이 세워지면 이 섬의 삶도 윤택해질 것인가의 고민은 이제 식상하다. 우리는 그런 건물이 어째서 세워져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도 알지 못한다. 그저 거대 자본의 계획 아래 도정의 승인이 있었으니 세워지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그 건물로 인해 내가,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이 겪게 될 직간접적 변화 따위는 신경 쓸 사안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수치나 설명으로 말할 수 없는 그런 직간접적 변화가 사실 우리에게 얼마나 깊고 직접적인 변화로 다가왔는지, 지난 5년간의 삶을 제주에서 보낸 사람들은 절감했다. 분명한 결론은 이렇다. 변화는 그다지 행복한 방향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에 경도된 사람들은 제주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관광가치가 이 섬의 중심인데, 이 섬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점점 아쉬워진다고 말한다. 이 섬을 살아가는 것과 여행하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이 섬의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이 공존하여 나는 차마 단호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과 화가 커지는 것은 분명하다. 육지의 수많은 곳들이 파헤쳐지며 망가졌던 모습을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좁다란 이 섬 제주에서 다시 보아야 하는 슬픈 데자뷔를 나는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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