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9.

by 전영웅

마당의 잔디는 이전의 모습이 아니다. 날이 더워진 지 한참 지났음에도 한가운데로는 마치 죽은 듯 누렇고 흙이 드러났다. 먼 쪽 구석진 자리로는 잔디가 웃자라 수풀을 이루었고, 중간중간으로는 작은 폭탄을 맞은 듯 누렇게 죽은 지점도 생겼다. 돌담 아래로는 흙이 파헤쳐졌고, 마당 중앙에도 두어 군데 깊게 구멍이 나 있다. 반려견 라이를 들인 후로 생겨난 잔디와 마당의 수난사이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밧줄에 고리와 목줄을 연결해서 활동성을 좋게 해 주었더니 녀석이 뛰어다니는 자리로는 잔디가 자라지 않았다. 싹을 피우다 녀석의 발톱에 쓸려버렸다. 잔디가 자라지 않으니 흙이 노출되었다. 게다가 녀석의 성정상 땅에 구멍을 파대니, 잔디는 예전의 여유로움을 잃어버렸다. 집에서 가장 먼 거리에 배변을 했다. 날마다 치워주지만 녀석의 변은 그대로 거름이 되는지, 주변의 잔디들은 짙푸르게 웃자라 수풀이 되었다. 한 편으로는 녀석의 배설물 때문인지 곳곳에 구멍같이 잔디가 누렇게 죽었다. 녀석의 활동반경에 닿지 않는 마당 주변 자리의 잔디들은, 작년까지 집 마당의 잔디가 어떻게 고요하고 평안하게 자라왔었는지를 말해주듯 고르고 푸르게 이파리를 내고 있었다.

고민이 되었다. 잔디를 포기할 것인가.. 포기하자니 마당은 흙먼지에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될 것이고, 바깥에서 키우니 어쩔 수 없이 꼬질꼬질한 라이의 몸털이 더더욱 지저분하고 꼬질꼬질해질 것이다. 잔디를 살리자니, 라이 녀석의 활동반경을 적극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다. 고민 끝에 잔디보호 매트를 깔아보았다. 육각형의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판을 이어 붙이듯 흙이 드러난 마당에 깔았다. 당연히 라이 녀석의 집 주변이 잔디 손상이 심해서 일차적으로 그곳에 넓게 깔았다. 처음엔 라이는 잔디보호매트를 불편해했다. 어떻게든 밟지 않고 피해 다니더니만, 조금씩 매트 위로 발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많이 적응을 했는지 매트 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니고 있었다. 격한 몸짓이나 뛰지만 못할 뿐이었다. 잔디도 예상외로 많이 회복되었다. 육각형의 구멍들로 잔디 이파리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매트의 두께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다. 두어 달 정도의 시간 동안 잔디는 아주 잘 회복되었다. 라이의 활동반경도 살리고 잔디도 살릴 수 있었다. 매트 아래의 잔디가 충분히 자라서, 나는 매트를 여전히 잔디가 심하게 손상된 마당의 중앙으로 옮겨 깔아 두었다.

라이의 활동력은 상당하다. 우리 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 6개월, 추정 연령으로는 8개월 정도 되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무한한 호기심과 활동력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5-6살 어린아이 같다. 덩치는 거의 자라서 하얀색의 중형견이 되었고, 얼굴에는 진도견을 바탕으로 알 수 없는 종들이 살짝 섞인 흔적이 보인다. 녀석의 집을 지어주고, 마당을 내어주면서 라이는 마음을 우리와 이 집에 온전히 두었다. 원래 친근한 성격인 것인지, 아니면 떠돌이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사람이 보이면 잠깐 짖다가도 관심을 보이면 이내 꼬리를 흔들며 몸부터 뒤집었다. 예방접종을 하러 들른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사람에게 경계하며 짖어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부터 뒤집는 게 사고도 덜 쳐서 좋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녀석이 집은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곤 했다.

그래도, 개 특유의 성정은 제대로 지녔다. 땅을 파는 것은 기본이고, 이빨로 물어뜯고 물고 늘어지며 던지면 달려가 물어오는 일반적인 행동성향은 딱 강아지였다. 겨울이 한창일 때, 추울 듯해서 버리려고 내놓았던 오리털 베개 속을 집에 깔아주었더니 그걸 이빨로 다 뜯어서 마당은 한 때 오리 깃털로 눈이 온 듯 하얗게 변했다. 담요도 두어 장 집에 넣어주었더니 그것은 그대로 녀석의 놀잇감이 되어서, 밖으로 물고 나와 뜯고 흔들고 늘어지는 장난감이 되었다. 녀석 앞에서 담요를 들고 흔들면 그대로 달려와 물고 머리를 흔들거나 늘어지곤 했다. 그러다 이빨이 빠지기도 했었다. 녀석의 집 옆에 있는 티트리 나무는 굵은 둥치가 4개 정도 나 있었는데, 그중 2개는 녀석이 이빨로 껍질을 다 벗겨버렸다. 마당의 귤나무를 전정하고 생긴 나뭇가지를 잔가지를 치고 적당한 길이로 잘라 던져주면 그것은 그대로 이빨을 가는 장난감이 되었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라이가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담요, 귤나무 가지, 낡은 공 등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느긋하고 평온한 녀석이다. 밤이면 표정이 밝고 눈이 빛나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듯 나뭇가지와 담요를 물고 늘어지다가 해가 나기 시작하면 잠에 빠져든다. 그런데 녀석의 자는 모습이 참 재밌다. 집 옆의 티트리 나무 그늘 아래서 너무 피곤하다는 듯 앞 발에 턱을 괴고 무한한 잠을 자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마당 한가운데 옆으로 길게 다리를 늘이고 누워 귀도 세우지 않고 죽은 듯 잠에 빠져있다. 오죽하면 내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숨은 쉬고 있는지 확인할 때가 종종 있을 정도이다. 바람이 부는 어떤 날엔 장난감으로 쓰는 담요를 마당에 깔고 그 위에 누워 등으로 바람을 즐기며 둥글게 몸을 말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턱을 땅에 대로 길게 누웠는데 뒷발을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벌리고 누워 배를 바람에 쏘이며 자는 것이었다. 경계심없이 온전한 자기의 잠을 즐기는 저 녀석의 낙천성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자신이 살려고 사람을 찾아갔듯, 녀석에게 우리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들인가 보다 싶어 고마움과 안도감이 들었다.

생후 4개월이 되어갈 즈음에 중성화 수술을 해 주었다. 중성화 수술을 해 주니 라이 주변으로 몰리던 떠돌이 개들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녀석의 추근댐도 사라졌다. 사람만 보면 놀자고 앞발로 하이파이브를 찍으며 달려드는 건 지금도 여전하지만, 본능에 못 이겨 몸통을 들이대는 행위는 사라진 것이다. 수술을 마친 직후 하루 이틀 기운을 차리지 못하던 녀석은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목에 둘러맨 깔때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상처를 건드려서 벌려놓았다. 상처가 벌어져 염증이 생기고 아프니까 자꾸 입을 대었다. 그런 녀석을 가족들을 시켜 잡게 하고, 나는 미리 준비해 온 국소마취제와 봉합용 실로 내가 직접 재봉합해 주었다. 외과의사라는 직업으로 개를 환자 삼아 치료한 것이 이것으로 두 번째의 일이었다. 녀석은 별문제 없이 잘 나았다.

녀석이 행복한 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라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반려견을 길러 본 사람들은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한다.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이다. 한 마디 더 붙이면 개가 살이 좀 찐 편이라는 것이다. 아직 철 모르고 호기심 많은 시기의 견생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의식하고 집 주변의 묶여 있는 다른 집 개들을 보고 있으면, 라이는 상대적으로 표정이 살아있고 활동적임은 알 수 있었다. 정말 녀석이 행복하다면, 반려견을 들이는 문제에 오랜 시간 고민을 했던 우리 가족 입장으로는 정말 다행이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나를 비롯해 가족들을 보면 미친 듯이 몸통과 꼬리를 흔들고, 뒷발로 서서 앞발을 치켜들며 반가워한다. 다가가면 뛰어올라 미친 듯이 혀로 핥고 긁어달라며 몸을 뒤집는다. 주인과 반려견과의 관계에서 훈련이 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반려견만의 반가움의 표현방식이라면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반겨하는 라이가 종종 고맙기도 하고 같이 즐겁기도 하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갈 곳도 없고 무리에서도 버림받아 살겠다고 인간을 찾아간 녀석이었다. 살고자 했던 본능이 자신을 거두어 준 사람에게 무한의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나는 굳이 그것에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았다. 녀석이 나를 다치게 하거나 심한 불편감을 주지 않는 한, 녀석도 나의 공간에서는 자유롭길 원한다.

마당에 깔린 잔디보호매트는 잔디도 살리고 라이의 활동도 보장했지만, 또 다른 활용방법도 생겼다. 토요일 밤이나 다음날 휴일이어서 출근의 부담이 없는 날이면, 나는 집안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늦은 밤 맥주 한 캔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 잔디보호매트 위에 주저앉는다. 딱딱하지만, 육각형의 매트 격자무늬는 하중을 골고루 받쳐주니 앉은 자세가 아프지 않았다. 손에는 내가 마실 맥주 한 캔, 그리고 라이의 닭고기 간식을 들고 있다. 매트 위에서는 달려들거나 뛰지 못하는 라이는 얌전해지며 내 손에 들린 자신의 간식에 집중한다. 라이와 마주하고 앉아 맥주 한 모금에 간식 한 조각 건네는 밤.. 봄에는 밤바람도 시원하고 모기도 거의 없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면서 서로 교감을 나눈다. 녀석과 가족이 되는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나 역시 녀석을 통해 행복한 기분이 좀 더 많아졌다. 잔디들은 원망할지 모르겠다. 어째서 진즉 반려견을 들이지 않았을까.. 아니, 라이 이 녀석을 만나려고 그리 오랜 고민을 했었나 싶다. 앉은자리에서 마신 맥주 한 캔이 다 비워지고 잠시 좀 더 앉아있다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라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제는 그게 순리임을 안다는 듯, 나직하게 잠시 낑낑대다가 담요를 물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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