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을 끼고 골갱이를 잡았다. 모자도 쓰고, 장화도 신고 긴 팔 옷과 바지도 필수이다. 하나 더 챙기자면 바지 입듯 바짓가랑이에 끈을 올리면 엉덩이로 둥그런 쿠션이 밀착되는 전천후 간이의자(?)도 있다. 일어서서 걸을 때엔 둥근 블럭같은 것이 엉덩이에 붙어 뒤뚱거리니 볼썽사납긴 하지만, 쭈그리고 앉아 검질을 맬 때엔 허리와 무릎이 편할 수 있어 아주 유용한 작업도구이다. 이른 퇴근을 한 주말 오후, 나는 간단한 점심을 마친 후 그렇게 텃밭으로 나왔다.
골갱이는 날이 가느다란 호미로, 돌이 많은 제주땅에서 흙을 파헤치기 아주 좋다. 볕은 따가울 정도로 많이 강해졌지만, 바람이 불어주니 어느 정도 견딜 만 하다. 텃밭으로 들어가서, 쭈그려 앉고 이랑과 고랑을 뒤덮은 잡초들을 뽑기 시작했다. 명아주나 망초류들은 장갑낀 손으로 줄기 아래를 잡고 잡아당기면 뿌리채 뽑히기도 하지만, 새포아풀 같이 흙을 거머쥐듯 뿌리가 발달한 녀석들은 골갱이로 흙을 잘 파서 뽑아내야 한다. 텃밭 농사 10년차를 넘긴 지금에는 모든 잡초들을 강박적으로 뿌리까지 제거하지는 않는다. 작물들의 생장에 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적당히 줄기를 꺾거나 잘라주거나, 뿌리흙을 적당히 파헤쳐두어 알아서 마르게 한다. 그러나 금방 자라거나 제 몸뚱아리로 삽시간에 땅을 뒤덮는 녀석들은 뿌리채 뽑아내어 버린다. 텃밭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 벌레들도 많아졌다. 고추에는 노린재가 서너마리 붙기 시작했고, 흙과 돌들 사이로는 지렁이, 땅거미와 장수지네, 굼벵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좋든 싫든, 해마다 같이 살아야 하는 녀석들이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검질을 매고 있으면, 주변 어디선가 나직하게 툭, 투둑하는 소리가 들린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저 작은 소음이겠거니 지나치지만, 검질을 매는 동안 그 소리는 내 주변을 서성이며 계속 귀를 건드렸다. 처음에는 그게 뭘까 궁금했는데 실체를 알 수 없어 그저 작은 이파리들 부딪히는 소리겠거니 넘겨짚었다. 그런데, 소리와 함께 얼굴에 따끔거리는 느낌이 생기고 자잘한 흙먼지같은 것이 팔과 얼굴에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털어내기 바빴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괭이밥의 씨앗이었다. 그리고, 나직한 소리는 괭이밥의 씨방이 터지는 소리였다. 작은 주머니같이 생긴 괭이밥의 씨방이 툭 소리와 함께 터지면서 씨앗이 멀리 날아가다가 땀에 범벅이 된 내 팔과 얼굴에 들러붙은 것이었다.
괭이밥은 내 텃밭에서 가장 많이 퍼진 잡초이다. 이 녀석들은 나직하게 흙을 뒤덮으며 퍼지기도 하고, 사방으로 씨앗을 퍼뜨려 여기저기에서 싹을 틔웠다. 게다가 월동까지 하니, 제초제를 쓰지 않는 이상 괭이밥을 완전하게 없애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강박적으로 괭이밥만 열심히 캐낸다 한들, 무섭게 퍼뜨리는 씨앗이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알 수도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어디선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고랑을 낮고 더디게 나아가는 나의 얼굴과 귀를 무섭도록 공격한다. 작은 소리로, 툭툭 튀어오르는 씨앗들이 따갑게 얼굴로 들러붙으며.. 때로는 눈으로 들어가 잠시 작업을 멈추게 만들기도 한다. 괭이밥의 확산은 광범위하다. 이미 마당 잔디 구석구석으로 작게 싹을 틔웠고, 비가 내린 뒤 물기가 어린 내 출퇴근용 경차의 옆면과 지붕에도 녀석들의 씨앗들이 마치 모래먼지 붙듯 수백개의 점으로 들러붙어 있었다. 열심히 검질을 매며 텃밭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괭이밥과의 싸움에서는 이미 백기를 든 지 오래다. 너무 퍼진 녀석들만 골갱이로 적당히 파내며 땅을 뒤덮지만 않게 관리하는 정도이다.
땅에서 괭이밥이 나를 정복했다면, 땅 위로는 풀모기떼가 나를 괴롭힌다. 이 녀석들은 밤낮이 없다. 한낮의 땡볕에도 텃밭 근처만 가면 사람냄새를 맡고 득달같이 날아온다. 해가 질 무렵이면 극성은 절정을 맞는다. 내 한몸 죽든말든 무조건 달려들어 피를 빨아야겠다는 강렬한 집착만이 그 작은 날개짓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녀석들이 그런 무모한 집착만 가진 것은 아닌듯 하다. 풀모기들은 사람이 가까웠을 때, 인간의 어느 부위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지 알고 있는 듯 행동한다. 노출된 목 뒤와 팔꿈치 뒤쪽은 그래서 항상 녀석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모자를 쓰더라도 뒷목을 가리는 모자나, 긴 팔 옷이 필요한 이유이다. 퇴근 후 그런 복장없이 간단한 작업을 위해 반팔과 모자없이 텃밭에 들어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팔꿈치가 가렵다. 긁으면서 살펴보면 풀모기 한두마리가 물고 달아난 흔적들이 보였다. 은밀하게 날아와 무섭게 주둥이를 박고 피를 뽑은 뒤 바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엉덩이 뒤쪽도 녀석들의 공격대상이 된다. 엉덩이는 우선 바지가 있으니 괜찮겠거니 하겠지만, 자세 특성상 옷이 피부에 밀착되고 옷이 당겨지니 풀모기가 주둥이를 박기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신기한 건, 무는 위치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팬티라인의 바깥쪽, 그러니까 옷감이 이중으로 겹치지 않는 바로 경계의 바깥을 줄지어 물어댄다. 풀모기들의 이런 습성은 녀석들이 꽤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기하다. 마치 녀석들의 대물림 유전자에 인간의 자세에 따른 부위별 공략 매뉴얼이 새겨져있는 것 같다. 풀모기들은 방제로도 쫓아낼 수 없다. 그저 날이 추워지면 모습을 감추는 습성에 만족해야 할 뿐이다. 날이 더워지면, 어디선가 날아와 마당과 텃밭에 있는 인간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한다. 방제를 해도 그때 뿐이다. 바람이 많은 이 곳에서 녀석들이 다시 몰려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너무 뻗은 가지를 쳐 주고, 너무 자란 줄기나 곁순을 잘라주는 일은 어렵지 않다. 명아주가 고추 옆에서 키높이 경쟁을 하고 있으면 그냥 뽑아주면 되고, 민들레가 뿌리를 깊게 박고 땅을 거머쥐고 있으면 조금 힘들더라도 골갱이로 캐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크기가 작은 잡초일 수록 거두거나 관리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일부러 연약한 줄기를 뻗어 그냥 뽑았다가는 뿌리가 남아 다시 싹이 올라온다거나, 무서운 속도로 씨앗을 맺고 퍼뜨려 통제불능의 속도로 번식을 한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블루베리나 살구를 노리는 직박구리나, 이제 막 자리를 잡은 깻잎을 노리는 참새를 쫓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디선가 은밀히 다가와 감각도 남기지 않고 주둥이를 꽂아 피를 빨고 날아가버리는 풀모기떼를 막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풀모기들은 모기기피제나 향이 강한 허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접근하기 좋은 인간의 신체부위로 맹렬하게 돌진한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 않다. 끈질기고 강하며, 무섭고 맹렬하다. 생존에의 본능에 처절함이 담겨있고, 집단의 생존법을 그들의 유전자에 섬세하고 깊게 새겨넣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손에 돌봄을 받는 작물들을 무섭게 따라잡으며 생존욕구 강렬함과 자연한 존재자체의 우월함을 증명해낸다. 그들에 의해 나의 작은 텃밭 안에서는 무질서의 질서가 펼쳐지며, 그들은 질서를 거스르는 연약한 작물들이 인간의 손에 보호받는 비질서를 질투하고 시기한다. 나의 얼굴에 따갑게 쏟아지는 괭이밥 씨앗의 포격과 내 팔꿈치와 엉덩이에 가렵게 부어오르는 풀모기들의 폭격은, 무질서의 질서를 주장하는 외침이자 비질서를 조장하는 인간에 대한 반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