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살구나무에 살구가 많이 달렸다. 살구색이라는 특유의 색으로 거의 익어 갈 무렵, 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가 아침 바람에 휘청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언제쯤 따서 먹을까를 가늠했다. 아직 어린 직박구리 한 마리가 날아와 살구나무 가지 위에 앉아 살구가 다 익었나 살피다가 나를 보고서는 다시 날아가 버렸다.
오일장을 다녀온 아내는 3년생 살구나무 묘목을 사 왔다. 그것이 작년의 일이었고,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텃밭 돌담 옆으로 자리를 잡고 심었다. 내년에나 열리겠지 했던 살구는 심은 해에 꽃이 왕성하게 피고 지었다. 그 자리로 작은 몽우리들이 생기더니 여름이 시작되면서 살구 특유의 색으로 익었다. 살구는 맛있었다. 방제를 하지 않아 껍질에 상처가 생기거나 갈라 보면 씨앗 옆에서 꼬물거리는 애벌레가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방치를 했는데도 살구는 스스로 맛있게 익었다. 올해에도, 작년보다 더 많은 살구가 열렸다. 나무가 지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열렸다. 여전히 맛있었다. 우리 집에 심은 과실나무 중에서 가장 풍성하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였다. 나는 올해에도 맛있게 살구를 먹으며 여름을 시작했다.
나는 살구를 좋아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살구가 내 앞에 놓이면 맛있게 먹었다. 그렇다고 살구를 일부러 찾거나 하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으면 생각이 나지 않고, 보이면 자연스레 끌리는 그런 대상이었다. 여름을 시작하는 때에 살구가 보이면 나는 눈앞의 살구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먹었고, 먹고 나면 작은 만족으로 돌아섰다. 과일과 사람 간에 관계가 있다면, 살구와 나는 그저 자연스러우면서도 가장 쿨한 관계일 것이다. 식욕이 감정이라면, 살구를 대하는 나의 감정은 흐름이나 변화가 없었다. 서로 부드럽게 당기는 존재였다.
전공의 3년 차의 어느 날 오전, 전날의 밤샘으로 잠이 쏟아져 잠깐 눈을 붙이고 있을 때 행정실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며 연결해주었다. 어머니였다. 그리고, 거의 30년 만의 대화였다. 수화기를 마주 잡고 어머니는, 자신을 엄마라 이야기하지 못하고 본인의 이름을 말하며 나를 찾고 있었다 말했다. 피곤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도 잘 지내셨냐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감정의 기복이 생기지 않았다. 화가 나거나 기뻐서 눈물이 나거나 하지도 않았다. 마치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과 연결이 된 듯, 내 마음은 평온했다. 며칠이 지난 주말에 약속을 잡고 직접 만나 뵌 어머니는 많이 말라 있었다. 나와 내 여동생을 평생 잊고 살려고 다짐했었다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 검사를 받아보니 수술을 피할 수 없는 소견이 나왔다고 했다.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큰 수술을 받고 힘들게 회복을 하는 중에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다짐은 자연스럽게 깨지고, 수소문해서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전화를 하신 거라고 했다. 나 역시 소식이 궁금해서 군의관 전역 이후로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어릴 적 잠깐의 기억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깡마르고 노년의 경로에 들어선 예비 할머니로 변해 있었다. 길고 깡마른 손이 내 손을 잡을 때, 내 감정은 동요하지 않았다. 따뜻함을 느꼈고, 그저 부드럽게 살과 살이 맞대어짐을 느꼈다. 마주한 손에 힘을 살짝 쥐어드렸다.
살구 이야기가 나온 건 정말 우연이었다. 그 후 어머니와 나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이 있는 서울에서 몇 번 만났다. 몇 번의 만남 속에서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으셨다. 좋아하는 과일이라고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별생각 없이 ‘뭐.. 살구 정도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어머니의 표정은 놀란 듯 변했다. ‘너 정말 살구 좋아하니?’ 왜 그러시지? 하는 마음으로 ‘네.. 뭐 앞에 있으면 생각 없이 먹게 되더라고요.’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고 배가 적당히 불러오던 때, 갑자기 살구가 드시고 싶었단다.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살구가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퇴근길에 살구를 사 오셨다고 했다. 검은 비닐봉지에 열 개가 조금 넘는 살구를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맛있게 다 드셨다고 했다.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며, 아직도 그 살구 맛을 잊을 수 없는데, 어째서 본인이 살구를 먹고 싶어 한 건지는 모르겠다 했다. 나는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가는 털실 같은 것이 나와 어디론가 연결되는 것 같았다. 핏줄이란 것이 이런 걸까? 이유 없이 좋아하던 살구도 이젠 그냥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내 감정의 어떤 한 조각이 작고 둥글한 그 열매를 볼 때마다 녹아들기 시작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살구는 심은 해부터 2년 동안 풍년이다. 내년에는 열매를 맺지 말고 좀 쉬었으면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달리고 익어갔다. 바람에 떨어지는 것도 거의 없이, 지나가던 직박구리나 참새들이 탐을 내다가도 껍질에 작은 상처 남기는 정도에서 더 이상 건들지도 않았다. 가만히 두어도 잘 익은 살구는 오롯하게 우리 가족의 것이 되었다. 반으로 갈라 보면 가끔씩 단단한 씨앗 옆으로 꾸물거리는 애벌레가 발견되는 것도 있지만, 과육은 언제나 부드럽고 달고 맛있었다. 노랑과 주홍빛이 적절하게 섞인 투박하고 부드러운 열매를 따서 작은 바구니에 담아두면, 몇 년 전 어머니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가볍게, 미묘했던 그 감정이 따듯하고 보송한 무언가가 되어 살구들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잘 익은 살구 하나를 집어 들어 마당 수돗가에서 살짝 씻은 뒤 한 입에 반쪽을 배어 물었다. 살구색과 잘 어울리는 살구 특유의 달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잘 익은 다른 것들을 아내와 아이에게 주었다. 살구를 베어 물면서 나와 눈을 맞추는 아내는 내 생각에 살구 묘목을 사 왔던 것일까? 맛있다를 연발하며 살구를 베어 무는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겼던 어릴 적, 나와 할머니의 살구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까? 살구는 이제 가족을 품는 과일이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여전히 동요 없는 잔잔한 마음으로 여름의 시작에 살구를 마주한다. 점점 더워지는 그 시기에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살구의 따스함이 부담스럽지 않다. 당연하듯 모르고 살았던 흐름의 한 줄기를 마음속 어딘가에서 찾아낸 기분이다. 해마다 여름의 시작이면, 살구는 나를 조용히 흔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