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한 갱년기

누가 내 인생 좀 매니지 해주세요.

by 달 산


로그아웃된 정신줄을 찾습니다


어제는 세탁실이 있는 지하에 내려가다가 마지막 계단 하나를 깜빡해서 발목을 다치고 늘 끼던 안경은 며칠째 사라져 다리 하나가 덜렁거리는 옛 안경을 끼고 외출을 했다.

주방에 올려놓은 냄비도 몇 번째 새까만 찌게누룽지를 만들고 오늘은 핸드폰을 손에 들고 핸드폰을 찾으며 온 집안을 헤맸다.

분명 방금 전까지 하려던 말이 있었는데, 입을 떼는 순간 단어들이 휘발되어 버린다.


내 뇌가 마치 '업데이트 중 오류 발생' 메시지를 띄운 구형 컴퓨터가 된 기분이다. 누가 내 일상의 스케줄과 기억력을 대신 관리해 줄 유능한 매니저 한 명만 붙여줬으면 좋겠다.


예고 없는 감정의 불꽃놀이


아이들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책임감 강하고 철저한 첫째,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막내,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까지. 평소라면 그들의 다름을 흐뭇하게 지켜봤겠지만, 요즘은 그 개성 강한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면 귀가 먹먹해진다.
갑자기 울컥 화가 치밀었다가도, 5분 뒤엔 세상 모든 슬픔을 짊어진 사람처럼 눈물이 난다. 이건 내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몸 안의 호르몬들이 벌이는 광란의 파티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어가 안 된다. 이 감정의 널뛰기를 대신 진정시켜 줄 '감정 조절 매니저'가 절실하다.


'나'라는 글자가 흐릿해지는 시간


가끔씩 남편의 손님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 뒷바라지를 하다 보면, 문득 거울 속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살짝 상기된 안면홍조 뒤에 가려진 진짜 내 표정은 무엇일까?

인생의 절반을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며 타인의 인생을 매니지먼트해 왔는데, 정작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건지.


뒤죽박죽이면 좀 어때서


생각해 보면 완벽하게 관리되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국에 맛술 대신 식초를 넣었어도, 약속 장소를 착각해 엉뚱한 곳에 서 있었어도 그것 또한 '갱년기'라는 터널을 지나는 나의 솔직한 모습이다. 매니저가 없으니 별수 있나. 조금 느리고 엉성하더라도 내가 나를 좀 더 너그럽게 봐주는 수밖에...


내일은 또 어떤 엉뚱한 사고를 칠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이 혼란을 즐겨보기로 한다. 어차피 이 또한 지나갈 '계절'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H의 독립선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