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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r Kwak Dec 13. 2023

에필로그. 해고통지를 받았다.

해고통지를 받았다. 다행인 것은 독일은 한국과 달리 바로 짐을 싸서 나가게끔 잘리는 것이 아니라 Kündigungfrist라고 하는 해고통지 기간이 있다. 회사마다 상이하긴 하지만 일부에서는 1달, 혹은 일부에서는 3달의 기간을 준다. 다시 말해 해고통지를 받으면 그달까지만 고용계약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1달 혹은 3달의 기간을 가지는 것이다. 나도 해고통지를 받은 12월 초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2달 반이라는 기간을 받았다.


여느 날과 같이 출근을 하고 업무를 하는 내게 Büroleiter(사무실장)가 부른다. 오늘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캘린더를 확인하자고 한다. 그러고는 11시에 미팅을 하자고 이야기를 한다. 지난 4월부터 일을 시작한 나는 6개월의 수습기간 중이었다. 공식적으로는 6개월의 수습기간이라 9월 말에 수습기간은 끝났지만 그 이후 계약연장에 대한 미팅을 가지지 못했던 나는 계약연장에 대한 건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미팅을 들어간 사무실장의 표정이 썩 유쾌해 보이진 않았다. 그러고선 말을 이었다.


"아쉽지만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셰프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너를 어느 포지션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 현재 회사에 너에게 적합한 포지션이 남아있지 않아."

"아, 그런가요."

"아직 네가 독일어도 완숙하지 못하고 건설매니저로써도 혼자서 프로젝트를 끌어갈 수 없잖아. 그리고 지금 회사 상황이 어떤 프로젝트에서 너를 교육하면서 건설매니저 일을 할 수 있을만한 인원도 없어. 다들 자기 프로젝트로 바쁘거든."

"그렇군요..."

"지금 여기 사무실에서도 하고 있는 다가구주택 프로젝트 입찰문서 작업이 끝나면 그 이후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렇다고 일도 없이 사무실에 그냥 나와 있는 것도 회사 측에나 너한테나 좋지 않을 테고."


어쩌면 돌려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능력 부족이구나. 건설관리 디테일에 대한 지식도, 독일어 숙련도도 모든 게 부족하구나. 


"처음 작성한 서류에는 이달 말까지 일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기간을 이듬해 2월까지로 작성하려고 해. 그 사이에 너도 너에게 맞는 다른 자리를 찾아볼 수도 있을 거고..."


누가 처음 제안을 하고 누가 수정안을 제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셰프의 사인이 되어 있는 임시서류에는 12월 31일까지로 고용 종료가 쓰여있었지만, 2월 말까지로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공식 서류는 작성되면 1월 중순쯤에 주겠다고 한다. 내 능력부족이라는 걸 인지했지만 가슴이 너무 뛰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부터 독일에 와서까지 해고통지는 처음이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안일했을 수도 있다. 노력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통고를 받았을 때 마음은 너무 무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와이프는 임신 8개월 차. 곧 아기가 나오기에 둘이서 살 때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집이 필요해서 이사를 한 지 2달이 겨우 지난 상태였다. 새집, 와이프의 임신, 그리고 출산. 곧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딸이 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해고라니... 


마음을 추슬렀다. 아니, 추슬러야 했다. 남아있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일을 해나가야 했고, 그 기간 동안 새로운 직장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와이프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나...'


이것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출산 후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와이프의 수입도 70%로 줄어드는데... 가계 문제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를 듣고 낙담하거나 상심할 마음도 문제였다. 임신부에게 스트레스라니... 퇴근 후 함께 식자재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이 많았던 걸까. 장을 보는 내내 "오늘 이분이 왜 이럴까?", "오늘 일이 힘들었어?"라고 질문을 해온다. 아니라고 웃어넘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이야기를 해야 했다.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인 듯 전하는 말인 듯 중얼거렸다.


"이러나저러나 말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와이프가 들었나 보다.

"응?"

"... 이러나저러나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입이 잘 안 떼 진다... 있잖아... 나 회사에서 계약 연장을 못하게 되었어..."

"그래? 그래서 오늘 그렇게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구나."

"응... 오늘 사무실장이랑 미팅을 했는데..."


로 시작해서 사무실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얼마동안 기간이 있는지 등등을 다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와이프는 내게 먼저 이런 말을 해주었다.


"힘들었겠다. 그래도 괜찮아. 새 직장도 잘 구할 수 있을 거고 더 잘 맞는 자리를 찾으면 되지."


참으로 와이프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자리도 썩 유쾌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우울하지는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다짐과 희망, 그리고 위로와 격려가 이어진 밤이었다. 마냥 웃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하며 미소 짓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도 하는 저녁이었다. 


이렇게 급박하게 변화하는 2023년 연말. 지금까지 때론 진땀 나고 때론 그저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2016년 만 30이 되기 전 결혼과 함께 5년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독일로 유학을 나온 이야기부터 어학, 입학, 그리고 졸업. 이어진 10개월의 직장 이야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변해갈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지금부터 현실이다. 아니, 변해야만 한다. 이건 이런 나의 고군분투기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래의 이야기다. 미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고 묵묵하게 이번 1보 후퇴를 2보 전진을 위한 원동력으로 성장해 나갈 나를 만들어가자.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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