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의 진짜 이름

by 꽉형 헤어곽
5장 일러스트.png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이 문장은 대개 지친 밤에, 혹은 아무 일도 없던 날 문득 떠오릅니다. 특별히 큰 실패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장 무너질 만큼의 불행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삶은 꽤 안정적입니다. 일은 돌아가고, 관계는 유지되고, 책임은 다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더 당황스럽습니다. 문제를 찾으려 해도 선명하지 않고, 바꾸려 해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장을 혼란의 표현으로 생각합니다. 방향을 잃었다는 신호, 삶의 의미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고백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목표를 세우거나, 더 분명한 계획을 세우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우리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이 문장을 바라보려 합니다. 이 말은 혼란의 언어가 아니라, 전환의 언어일지도 모릅니다.

이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 삶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분명하고, 해내는 능력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흐릿해져 있습니다. 삶은 멈추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설득하는 말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서?”라는 질문에 답이 잘 붙지 않는 상태. 바로 이 지점에서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절망이란,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상태다.”

이 말은 극적인 좌절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겉보기에는 잘 살아가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수행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리킵니다. 이 문장이 반복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선택은 여전히 이루어지지만, 그 선택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확신은 약해집니다.


중요한 점은, 이 문장이 게으름이나 도피의 신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아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더 자주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랫동안 질문을 미뤄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이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니까.” 그렇게 미뤄진 질문들이 어느 순간 한 문장으로 돌아옵니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니체는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상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적 없는 삶은 견딜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목적은 사회적 목표나 성취의 목록이 아닙니다. 삶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 나를 이 방향으로 걷게 만드는 내적인 끌림입니다. 이 목적이 사라질 때, 우리는 여전히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공허해집니다. 바로 이 공허가, 저 문장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문장의 진짜 이름은 욕망의 신호입니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욕망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을 때 내는 소리입니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 그러나 그 다른 방식이 무엇인지는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장은 모호한 상태로 남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이 네 영혼에 어울리는지 자주 점검하라.”

이 문장은 삶의 효율을 묻지 않습니다. 성과를 묻지도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삶이 나라는 존재와 어울리는지를 묻습니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은 바로 이 점검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삶의 언어가 바뀌려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없애려 들 필요는 없습니다. 더 바쁘게 살거나, 더 많은 책임을 떠안거나, 더 큰 목표를 세운다고 해서 이 문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들어야 할 목소리입니다. 아직 방향은 흐릿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방향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 꼭지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결론은 단순합니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삶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선택하고 싶다는 요청입니다. 그리고 이 요청에 응답하려면, 우리는 역할의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욕망의 언어를 다시 불러와야 합니다.

다음 꼭지에서는, 바로 그 일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사라진 욕망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방법이 아니라, 이미 남아 있는 욕망을 다시 복권하는 방법. 그 조용한 첫걸음으로, 이제 넘어가 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5-4. 성실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공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