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다시 복권한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무언가를 새로 욕심내라는 주문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더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더 큰 꿈을 세우고,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불태우라는 말처럼 오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욕망의 복권은 그런 방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지만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욕망을 다시 자리에 앉히는 일입니다.
앞선 꼭지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사실에 도달했습니다. 욕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할의 뒤편으로 밀려났다는 사실입니다. 욕망은 실패했기 때문에 침묵한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나중에’라는 말로 연기되었기 때문에 희미해졌습니다. 그래서 욕망을 다시 복권하는 첫 단계는, 욕망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가?” “이걸 해도 되는가?” 같은 질문은 욕망을 더 위축시킵니다. 욕망은 논증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인정으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인간의 본질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욕망은 인간 존재 그 자체다.”
이 말은 욕망을 충동이나 결핍으로 격하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욕망을, 인간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으로 위치시킵니다. 욕망을 억누른 삶은 도덕적으로는 단정해 보일 수 있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점점 말라갑니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는 바로 이 말라감의 신호입니다.
욕망을 복권한다는 것은, 삶의 판단 기준을 조금 옮기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삶을 이렇게 평가해왔습니다. 문제가 없는가, 안정적인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가. 이 기준들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만 여기에 하나의 기준을 더 얹어야 합니다. “이 선택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가.” 이 질문은 성과를 묻지 않고, 효율을 따지지 않으며,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와 삶의 접점을 묻습니다.
중요한 점은, 욕망이 반드시 대단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욕망은 종종 아주 사소한 감각으로 돌아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 어떤 공간에 있을 때 몸이 풀리는 감각,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가 달라지는 순간. 이런 신호들은 작고 조용해서 쉽게 지나치기 쉽지만, 욕망은 늘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알립니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의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다.”
욕망을 복권한다는 것은, 삶의 일부를 다시 나에게 돌려놓는 일입니다. 전부를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역할을 모두 내려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욕망이 설 자리를 하나라도 마련하는 것, 그 작은 자리가 삶의 결을 바꿉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욕망을 따라가면 삶이 무너질 것 같고, 책임을 놓치게 될 것 같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욕망을 복권하는 일은 파괴가 아니라 조정에 가깝습니다. 역할이 삶을 지탱한다면, 욕망은 삶의 방향을 조정합니다. 둘은 적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어야 할 두 힘입니다.
니체는 인간의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간에게 아직 가능한 것이 남아 있다고 가르친다.”
욕망은 바로 그 ‘아직 가능한 것’의 감각입니다. 지금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 다른 방식의 삶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예감. 이 예감이 돌아올 때,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욕망을 복권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먼저 언어로 복권해야 합니다. “나는 이걸 좋아했다.” “이건 나에게 중요했다.” 과거형으로라도 좋습니다. 욕망을 말로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욕망은 다시 현재형으로 돌아올 준비를 합니다.
이 꼭지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결론은 이것입니다. 욕망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조율해야 할 신호라는 사실. 욕망을 억누른 삶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욕망을 복권한 삶은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다음 꼭지에서는, 이 모든 내용을 아주 작은 실천으로 내려놓으려 합니다. 역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욕망을 얹을 수 있는 자리. 삶을 뒤엎지 않고도 가능한 작은 해독제. 그 마지막 장으로, 이제 넘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