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선 장들에서 책임감, 완벽주의, 미래를 앞질러 사는 습관, 그리고 ‘되어야 하는 삶’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탱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조용히 소진시켜 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흐름의 끝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마주하게 되는 하나의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에게만 유독 엄격해지는 태도입니다.
이 태도는 대개 이렇게 드러납니다. 타인의 실수에는 이해와 맥락을 붙여주면서, 자신의 실수 앞에서는 이유를 허락하지 않는 마음. 남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는 “그건 변명이야”라고 단정하는 내면의 목소리. 우리는 왜 이렇게 나에게만 차가울까요.
이 질문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방식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들은 대개 오랫동안 ‘잘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책임을 맡아왔고, 기준을 높게 세워왔고,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야 했던 사람들이지요. 그런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은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고려되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나를 돌보는 일은 나중의 문제였고, 나를 이해하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법부터 먼저 익혀왔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가혹해지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는 연민을 느끼지만, 자기 자신의 고통에는 도덕적 의무를 부여한다.”
이 말은 우리가 왜 스스로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의 신호로 듣기보다, 통과해야 할 과제처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힘들다는 감각조차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지요.
자기 엄격함은 처음에는 분명 미덕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기준을 세우고, 느슨해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우리를 성장시켰고, 많은 성취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점점 높아질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허용되는 범위를 점점 줄여갑니다. 실수할 권리, 쉬어갈 권리, 흔들릴 권리까지도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격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니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잔인한 감옥을 짓는 존재다.”
스스로에게만 엄격한 사람들의 내면에는 종종 이 문장이 떠오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어겼을 때 가장 가혹한 판결을 내립니다. 이 감옥의 문제는, 우리가 그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자주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로 그 엄격함을 성격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렇게 냉정해졌을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야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기억 때문입니다. 잘했을 때만 칭찬받았고, 참고 견뎠을 때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경험들. 그 경험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공식을 남겼습니다. 나는 나를 몰아붙일수록 안전하다는 공식입니다. 이 공식은 오랫동안 유효했기에, 우리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듯 하라. 그러나 자신을 대할 때만 예외를 두지 마라.”
이 문장은 자기 엄격함의 방향을 다시 묻게 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는 상황과 한계를 고려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만은 무한한 요구를 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기보다, 끝없이 관리해야 할 프로젝트처럼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스스로에게만 엄격해지는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반복된 선택의 결과이며, 삶을 무너지지 않게 지키려 했던 노력의 부산물입니다. 그러니 이 태도를 단번에 고쳐야 할 결함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태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나를 지켜주었는지를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이 장에서 우리가 시작하려는 것은, 그 엄격함이 더 이상 나를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소진시키는 순간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나를 몰아붙이는 목소리가 여전히 삶을 앞으로 밀어주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충분히 해온 나에게 또 다른 채찍을 들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이 장의 출발점입니다.
다음 꼭지에서는, 이 자기 엄격함이 언제 미덕에서 저주로 갈라지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자기엄격함이 품성과 저주로 갈라지는 지점, 그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따라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