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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느림과 집중의 관계

메인통신 #20

“호, 잠깐 내가 뭐 하나 보여줄까?”
이곳 Center for Furniture Craftsmanship 갤러리에 아름다운 서랍장(사진 참조)을 만든 강사 마이크 코삭(Mike Korsak)이 옆에 앉았다. 내가 끌질하는 것을 보고는 시범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나보다. 

“나 역시 끌질하는 속도는 매우 느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결과에 만족한다는 거야. 속도? 중요하지 않다고 봐. 힘? 끌질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느리더라도 끌을 정확하게 콘트롤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의 끌질에서 느림의 힘을 보았다고나 할까? 그 날 이후로 나의 끌질은 한참 더뎌졌다. 조금 파내고, 입으로 나무가루를 불어내고, 직각자로 맞춰보고… 그렇게 더딘 끌질이 신기하게도 전혀 지겹지 않았고, 끌질의 결과는 이전보다 훨씬 개선이 되어갔다. 그렇게 천천히 끌질을 하다보면 어느새 수업이 종료되는 시간이 되었다(여기에서는 4시 30분이면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함께 청소를 한다). 

 

이제 4주간의 목공수업이 모두 끝나간다. 이 곳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집중의 중요성이다. 누가 따라오지도 않고, 방해도 하지 않으며, 그저 각자의 작업대 앞에서 앉아서 자기 작품을 만들면 된다. 몇 해 전 갔던 영국의 목공학교는 인구가 200여 명밖에 되지 않은 시골에 있었다. 이곳 메인의 록포트는 그보다는 인구가 많지만, 역시 해변가 조용한 마을이다. 목공소나 목공학교를 짓고 운영하는 비용도 큰 요소이겠지만, 목공학교들이 시골에 위치한 것은 속도가 빠른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나무결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깎아내고… 4주 동안 목공학교는 물론, 이 도시에서 조깅하는 사람을 빼고는 한 번도 뛰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저녁이 되면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마을. 저녁마다 침묵이 무엇이고, 정말 어두운 저녁이 무엇인지를 경험했다.


피터 콘은 <Why we make things and why it matters>에서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몰입>의 저자 미하일 칙센마이를 인용한다. 자기목적주의라는 뜻을 지닌 ‘autotelic’이란 단어는 몰입에서 핵심적인 조건이다.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가구를 만들기 위해 끌질을 하는데, 어느새 끌질 자체가 목적이 되는 행위는 몰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4주를 보내는 동안 한 두번 정도 시간을 완전히 잊고 몰입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세상일을 잊고 집중했던 경험… 목공학교 내부는 물론 외부 도시의 분위기도 몰입을 하기에 좋은 조건이었기에 그나마 한두 번이라도 이런 느낌을 경험했던 것 같다. 3천 명이 사는 이 작은 도시에서 1천만 명이 사는 서울로 돌아가면 집중은 가능할 것인가? 점점 더 집중하기 힘든 세상에 집중력은 정말 희귀한 경험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에 돌아가면 좋은 숯돌 하나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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