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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를 읽고

by HER Report

이 책의 원제는 <성공과 운>, 부제는 “행운과 실력주의의 신화”이다. (Success and Luck: Good fortune and the myth of meritocracy)이다. 저자는 10년 넘게 뉴욕 타임즈에 ‘이코노믹뷰’ 칼럼을 써온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다. 평소 삶에서 운과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에 관심을 가져온 나로서는 단순히 운칠기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이론적 배경으로 사회의 개선방향에 대해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어서 좋았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1.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던 영화 <머니볼> <빅쇼트> <블라인드 사이드>의 원작을 쓴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 그는 2012년 프린스턴대 졸업 연설에서 자신이 어떻게 성공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20대에 우연히 한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아 월스트리트 거물급 인사의 부인 옆에 앉게 된다. 루이스를 좋게 본 부인은 남편에게 이 훌륭한 청년에게 좋은 자리를 주라고 거의 강요했다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한 루이스는 그렇게 덜컥 월가 대형투자은행에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 곳에서 2년도 채 일하지 않았을 때 월스트리트의 금융 전략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억대의 연봉을 뿌리치고 그곳을 떠난다. 그렇게 쓴 <거짓말쟁이의 포커(Liar’s Poker)>라는 책은 무려 100만부가 넘게 팔린다. 대학에서 지도교수로부터 글쓰는 것으로는 밥벌이 할 생각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는 28세에 “타고난 작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2.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릭 고프라는 남성은 다섯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마저 세 자녀를 버리고 떠난다. 고프는 머리가 좋았지만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 주의력 결핍장애를 발견하지 못했고,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제재소와 기계 조립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유능한 주문제작 자동차 도장공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고로 손을 심하게 다쳐 장애연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어렵게 살게 된다. 이 때 재정적으로 어려운 전부인을 돕겠다고 갖고 있던 600달러를 쓰고는 정작 자신은 중요한 약물 치료를 받을 여력이 되지 않아 2015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프랭크 교수는 사람의 행운을 결정하는 몇 가지 요소를 설명한다.


첫째, 선진국에서 태어나는지 아닌지와 국가 내부의 소득 분배만으로 사람의 행운은 거의 절반이 결정된다. 내가 한국이 아닌 내전이 심각하고, 경제적으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나라에 태어났다면 나의 삶은 어땠을까?


둘째, 어느 시점에 태어났는가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에는 본인만 원하면 취업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IMF시절에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과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한 시절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운이 삶에서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셋째, 부모의 형편이다. 보통 부모의 키가 크면 자녀들도 유전적으로 키가 크다. 미국의 경우 부모와 자녀의 소득 상관관계는 부모와 자녀 키의 상관 관계와 유사할 정도로 높다. 한국은 이보다 더하면 더할 것이다.


성공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전적으로’ (혹은 대부분) 실력과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행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자신이 실패했을 때에는 “운이 나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프랭크도 지적하듯 이러한 심리적 성향(귀인이론)이 반드시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운이 나빠서 실패했고,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기에 더 노력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연설이나 로버트 프랭크의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삶에서 성공(혹은 실패)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높으며, 반대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낮다는 것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에 익숙한 우리에게 여기까지의 내용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은 그 다음부터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졸업연설에서 ‘밑줄’을 그을 만한 내용은 이것이었다. “행운은 책임을 동반한다. (성공한=행운을 가진) 당신은 신에게만 빚을 진 것이 아니다. 운이 덜 좋은 사람에게도 빚이 있다 (…[W]ith luck comes obligation. You owe a debt, and not just to your Gods. You owe a debt to the unlucky).”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성공에 있어 행운의 역할을 축소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공공투자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지적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증세를 꺼리는 것은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면 자신만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도 세금을 더 내게 된다. 즉, 세금을 더 낸다고 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빈곤해지거나 삶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인 로버트 프랭크가 보다 골고루 행운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안하는 것은 ‘가파른 누진 소득세’이다. 예를 들어 연간 5천만원을 벌고, 1천만원을 저축한 가정은 연간 소비가 4천만원이다. 여기에서 기초 공제가 1천만원이라면 과세 대상 소비는 3천만원이 된다. 프랭크 교수는 세율을 낮게 시작해서 과세대상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꾸준히 세금을 올리는 것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경제정책이라고 제안한다.


이 책을 읽을 때 KTX 승무원들이 10년 넘게 어떤 고생을 했는지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아내와 함께 보게 되었다. 책에서 읽은 내용과 KTX 승무원들의 상황이 묘하게 겹쳐졌다. 저들이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살펴봐도 ‘불운’ 이외의 요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 역시 부푼 꿈을 갖고 KTX 승무원직에 지원했고, 회사의 무자비한 정책으로 10년 넘는 삶을 희생해야 했다(이번에 복직 결정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정의당에 후원금을 보냈다. KTX 승무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운을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는 정책을 펼치는 정당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비교적 좋은 운을 만나면서 살아온 우리 부부가 ‘가파른 누진 소득세’가 실현될 때까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원금을 보내고, 얼마 후 노회찬 의원의 소식을 접했다. 평생을 우리 사회에서 ‘운이 없어’ 고생하고 있는 약자를 위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정치인을 잃었다는 것은 ‘운이 나쁜’ 사람들은 물론이고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큰 손실이었다. ‘운이 나빠’ 고생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은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결국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로버트 프랭크 책에 나오는 ’30억이 넘는 페라리를 타고 여기 저기 움푹 패인 도로를 달리는’ 상황과 ‘1억 5천짜리 포르셰를 타고 매끈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의 비유를 참고하기 바란다.


행운을 나눈다고 해서 좋은 운을 가진 사람의 운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골고루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오는 워렌 버핏의 말을 인용한다: “오늘 누군가가 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오래전에 그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iQ_T5C3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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