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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22. 2019

한국계 셰프 코리 리의 독창성이 빛나는 레스토랑

샌프란시스코 모마의  ‘인사이투(In Situ)’

“독창성을 버림으로써, 인사이투는 미국내에서 가장 독창적인 새로운 레스토랑이 되었다”
2011년부터 <뉴욕 타임즈>의 레스토랑 비평가를 맡고 있는 피트 웰스(Pete Wells)는 2016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의 레스토랑인 인사이투에 대한 기사를 이렇게 멋진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실 이 문장은 인 사이투 레스토랑의 컨셉을 한 마디로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이 레스토랑은 2015년 Her Report를 통해서도 소개했었던 한국계 셰프 코리 리(Corey Lee)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미쉐린 별 세 개를 받은 레스토랑 베누(Benu)로도 유명하다.

‘독창성을 피한 독창적인 레스토랑’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인사이투의 컨셉은 ‘직접 만든 레시피가 없는 레스토랑’이다. 그래서 독창성을 버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세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레스토랑 셰프(그 리스트는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insitu.sfmoma.org/participants )의 레서피만으로 메뉴를 꾸민다. 다른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이 곳을 방문하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혹은 인사이투의 셰프가 다른 레스토랑을 직접 방문하여 배워오기도 한다.


피트 웰스가 방문했을 때 인사이투의 매니저는 이곳의 요리 컨셉을 설치 미술에 비유했다고 한다. 실제 식사 후 SF MOMA에 전시되어 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 ‘샘(Fountain)’을 보고나서, 이 두 가지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만들어 놓은 변기를 1917년 전시회에 내놓아 논란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결국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맥락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예술이라고 주장하면서 ‘Ready Made’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인사이투 역시 남이 만들어 놓은 요리법을 그대로 가져와 내 놓는 맥락을 바꾸어(레스토랑만 ‘인 사이투’로 바뀐)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인사이투란 단어는 라틴어로 ‘원래 그 자리에’라는 뜻이다. 레스토랑 이름의 원래 뜻과는 정 반대의 개념으로 이들은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의 메뉴는 소, 중, 대로 이루어져있다. 소(small)은 아뮤즈 부셰, 한입거리에 해당하고, 중(medium)은 애피타이저에 해당하며, 대(large)는 메인코스 정도에 해당한다. 오늘은 음료와 함께 소, 중에서 한 가지씩과 디저트를 먹었다. 음료(Daylight: tequila, Aperol, Lillet, lemon)를 마시고 나서 처음 먹은 것은 Caramelized Carrot Soup이다. 수프지만 에스프레소 정도의 양이 나온다. 양은 적지만 그야말로 카라멜과 당근을 진하게 압축하여 만든 수프인데, 입맛을 확실하게 돋구어 준다.

이 곳의 메뉴는 모두 다른 식당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레서피에 들어가는 주요 재료 뿐 아니라 이를 만든 사람과 소속, 만든 연도가 모두 적혀있다. 이 수프를 만든 사람은 Nathan Myhrvold인데, 경력을 살펴보니 놀랍다. 그는 <Modernist Cuisine: The Art and Science of Cooking>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저자이기도 하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이론과 수학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으로 건너가 스티븐 호킹과 연구를 했다. 그 후 소프트웨어 회사를 시작했다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회사가 인수되었고, 빌 게이츠의 Chief Technology Officer로 일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와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3살에 이미 추수감사절 요리를 했으며, 14살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요리책과 카메라 장비 구매하는 데 많은 돈을 썼단다. 1999년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은퇴한 뒤로는 사진과 음식을 연결한 많은 실험들을 해오고 있다. 그는 과학자답게 이 수프를 만드는 조건으로 재료의 양을 0.1 그램까지 모두 수치화하여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중(medium)에서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주저없이 웨이트리스가 추천한 것은 와사비 랍스터(Wasabi Lobster)이다. 랍스터 살을 튀겨 일본식 와사비 마요네즈를 곁들인 이 요리는 독일 베를린의 Tim Raue의 작품이다. 마지막 디저트로 먹은 것은 앞서 먹은 요리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Ame – Sound of Rain’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커다란 나무잎에 껍질을 깐 포도가 놓이고 웨이트리스가 얼린 사케 알갱이들을 따로 들고온다. 이것을 나무잎 위에 뿌리자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봐도 일본의 세심함이 보이는 메뉴인데, 오사카의 요네다 하지메 셰프가 2013년에 만든 레서피란다. 비에 대해서 사람들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요리를 통해서 비의 긍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고.

‘비평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반대로, 피트 웰스는 칭찬 일색의 리뷰 기사를 썼다. 기사 첫 문장에서 인 사이투의 개념을 제대로 잡아내어 좋았지만, 이 식당에서의 경험을 플레이리스트로 듣는 음악에 비유한 것에도 감탄했다. 최고로 좋은 음악을 따로 모아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라는 새로운 맥락으로 가져온 것은 딱 이 식당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이 레스토랑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아침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호텔에 짐을 풀고는 운동 삼아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갔다. 점심 시간이 지난 2시쯤 미술관 티켓을 사고는 미술관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하필 미술관에 있는 카페가 오후 2시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커피숍에서 간단히 빵을 먹거나 1층에 미셸린 1스타 식당이 있다는 것이다. 카페가 문을 일찍 닫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 인 사이투와의 만남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한가지 첨언하자면, 이 곳은 최종 금액에 무조건 20% 추가 요금이 붙어서 나온다. (샌프란시스코 레스토랑의 이런 ‘무조건 추가 요금’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세부적인 사항은 “SF restaurant bill surcharges still give some diners heartburn” by Jonathan Kauffman, San Francisco Chronicle, 2018. 9. 25을 참고). 직원에게 부탁하면 주방도 간단하게 투어할 수 있다.

참고: “This Is America’s Most Original New Restaurant” (by Pete Wells, New York Times, 2016. 7. 19)

http://insitu.sfmoma.org/particip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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