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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23. 2019

세상에서 가장 먹기 귀찮은데 또 가장 맛있는 게요리

홍콩 ‘언더브리지 스파이시 크랩’

우리에겐 딤섬 체인점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태풍을 피하는 정박지인 ‘비펑탕(避風塘)’에는 나름의 문화와 풍습이 있고 자주 먹던 음식도 있었단다. 그중 하나가 ‘비펑탕 스파이시 크랩’. 얼마 전 세상을 뜬 안토니 부르댕의 ‘No Reservation’에도 등장했던 음식이다. 게를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호텔 근처에 ‘Under Bridge Spicy Crab(橋底辣蟹)’이 있다. 고가도로 아래에 있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데 20년 동안 장사가 잘되어서 근처에 매장이 세 곳이나 된다. 

우리가 간 곳은 본점 격으로 벽에는 안소니 부르댕, 전지현, 관지림의 방문 사진이 걸려 있다. 메뉴에는 온갖 해산물이 모두 등장하는데 조리법은 마늘로 볶거나 블랙빈 소스로 볶거나 거의 비슷하다. 역시 너댓명이 와야 게에 새우에 조개에 이것저것 시키는데… 이 집의 대표요리인 ‘비펑탕 스파이시 크랩’은 가격이 안써있고 ‘시가’로 나와있다. 음식점에서 젤 무서운 단어가 ‘시가’인데 작은 사이즈 게는 480홍콩달러, 중간 사이즈는 630홍콩달러. 역시 게는 어디나 항상 비싸군. ‘게는 큰 걸로, 일인 당 한 마리씩!’이 부모님의 가르침이었건만 가격이 너무 비싸 한 마리 시키는 걸로.  

게를 튀겨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마늘 플레이크, 고추, 파를 넣고 함께 볶아준다. 맵기가 5단계라 중간으로 했는데 좀더 맵게 할 걸 그랬다. 살짝 맵고 짭짤한 게요리에 찰기 없이 고슬고슬한 양주볶음밥을 함께 먹으며 칭따오 맥주를 들이키니, 역시 좋다. 공심채나 아스파라거스 대신 줄기콩 볶음을 시켰는데 이건 실수. 튀긴 게 요리에는 채소도 찜이나 무침처럼 상큼한 조리법이 나을 뻔했다. 어찌나 뜨거운지 손으로 잡지도 못하고 후후 불며 먹고 있었더니 H가 “말 좀 하며 먹으라…”고.

가격이나 먹는 노력에 비해 실제 입 안으로 들어오는 건 얼마 안되는 것이 게 요리다. 껍질을 부수고 이빨로 씹고 온갖 도구를 사용해 살을 파먹느라 기진맥진. 그렇기에 소프트셸 크랩처럼 통채로 먹는 것이 아닌,게장이나 꽂게무침, 꽂게찜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존재다. 적당히 품위를 지키려면 단단한 껍질 속은 물론 관절 사이사이 맛있는 살을 대체로 포기해야 한다. 제대로 먹자면 “진짜 우악스럽게 먹는다”는 혐오의 눈길을 견뎌야 한다. 부모나 형제, 아주 가까운 친구 서넛 정도? 결혼을 통해 이 리스트가 추가되기도 한다. 기본 욕구에 충실해 식탁에서 지저분하고 전투적으로 굴어도 뭐라 안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자신은 게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여수의 돌게집과 삿포로의 게 사시미 요리집, 홍콩의 스파이시크랩집에 기꺼이 함께 가준다면 진짜 사랑이라고 인정할 만할 것이다.


다 먹고 정신차려보니 테이블 위가 엉망진창이다. 게껍질과 게살이 여기저기 튀고 기름도 곳곳에 묻고 휴지까지 잔뜩 쌓여 민망할 정도다. 종이나 비닐이 아닌, 천으로 된 테이블 클로스가 난장판이 되어서 더 신경이 쓰였다. 다행이 주변의 다른 테이블 모두 비슷한 상태. 친절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종업원의 적당한 무관심이 오히려 고마웠다. 얼른 호텔로 돌아가 손 제대로 씻고 옷도 갈아 입어야 한다… 나는 왜 하필 게요리를 좋아해서 멀리까지 여행 와 이 난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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